베트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라면을 소비하는 국가 Top3에 올라섰다. 세계 인스턴트 라면협회 WINA의 21년 5월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여년간 중국 – 인도네시아 – 인도 – 일본에 이어 세계 5위의 라면 소비국이었던 베트남이 2020년 70억 3천만개의 라면을 소비하면서 1위 중국 (463억 5천만개), 2위 인도네시아 (126억 4천만개)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3.1% 성장을 하던 베트남 라면 시장이 2020년 29.5%로 급등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각 가정에서 비상 식량으로 라면을 비축하면서 소비량이 이례적으로 급등한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도 기회가 생기는 산업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코로나 펜데믹은 전세계 모든 국가에 해당하기 때문에 베트남만 눈에 띄게 라면 소비량이 급등한 것은 특이한데 그만큼 베트남 사람들의 라면 사랑이 유별나기 때문이다. 국민 1인당 라면 소비량 기준으로 순위를 보면 2020년 기준 한국 (80개), 베트남 (72개), 일본(47개), 인도네시아(46개)로 베트남이 세계 2위이다. 베트남은 인구 1억에 가까운데다 다양한 종류의 쌀국수를 하루에 한 번씩은 먹는데도 불구하고 절대적 소비 수량과 1인당 소비 수량 모두 높아서 진정한 라면 애호국 사람들이라 부를 만하다.
베트남에는 2020년 현재 50여개의 라면 제조 업체들이 500개 이상의 라면을 제조 판매하고 있다. 이틀에 한 개 꼴로 신제품이 나올 정도로 베트남 라면 시장은 치열한데 4개 업체가 전체 시장의 87.6%를 장악하고 있다. 베트남 라면 업계 1위는 시장 점유율 35.44%를 차지하고 있는 Acecook이다. 1993년 일본의 유명 종합상사인 마루베니가 베트남 업체와 합작 형태로 설립을 했는데 실질적으로 100% 일본 자본으로 설립된 기업이다. 베트남에 여행 다녀온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라면인 Hao Hao가 바로 이 Acecook의 대표 라면이다.
시장 점유율 2위의 마산 컨슈머는 SK그룹과 국민연금이 5,300억원을 투자해 국내 투자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그 Masan group (마산 그룹)의 대표 식품 자회사이다. 마산이 라면 시장에 뛰어들면서 1위 에이스쿡의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줄어 들고 있는데 2019년 마산이 베트남 최대 기업 빈 그룹의 할인점과 편의점 2,300여개를 운영하는 빈 커머스를 인수하면서 두 업체 간의 점유율 격차는 더욱 줄어 들게 되었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SK그룹이 등장하는데 마산이 인수한 빈커머스에 SK가 21년 4월 4,600억원을 투자해 지분 16.26%를 확보했다. 베트남 라면 시장에 간접적으로 한국의 SK가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라면회사들도 베트남 시장에서 분주하게 활동 중이다. 베트남 시장에 가장 먼저 직접 뛰어든 업체는 ‘팔도’. 2006년 법인을 설립하고 2012년에는 베트남 현지 라면들과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베트남 현지에 공장을 설립했다. 개당 우리 돈으로 300원 ~ 400원 내외인 베트남 현지 라면 가격에 맞추어 ‘Koreno’라는 베트남 시장 특화 브랜드를 만들어 400원 가량에 제조 판매 유통하고 있다. 팔도는 처음부터 한국 교민 시장은 외면 철저하게 베트남 현지 고객에만 집중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팔도는 2019년 7,300억동 우리 돈으로 365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베트남 라면 업체 Top10에 진입했다.
오뚜기는 2007년 법인 설립 후 케첩, 마요네즈와 같은 소스 중심으로 현지 영업을 하다가 2018년 베트남 북부 지역에 라면 공장을 설립했다. 오뚜기는 한국에서 판매하던 라면을 베트남 현지 제조로 비용을 낮추어 판매가를 500원까지 낮추었다. 또한 베트남 현지 소비자들의 먹는 양이 적어 현지 라면의 중량이 75g~80g에 착안해 80g 중량의 ‘진라면 미니’를 출시해 현지화 전략에 적극적이다.
한국 1위 라면 업체인 농심은 2018년 베트남 법인을 설립해 영업을 시작했고 삼양라면은 아직법인 설립은 하지 않았고 2019년 베트남 현지 공장 설립 타당성 조사를 진행했으나 코로나 펜데믹으로 진전된 계획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 현지 라면 가격이 지나치게 저렴하다 보니 가격 경쟁력 싸움에서 열세인 한국 업체들이 베트남에 직접 진출하는 것을 꺼려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수출하는 물량이면 별다른 비용 발생이 없다보니 베트남 거주 20만명의 한국인 시장에 안주하는 아쉬운 모습도 보인다. 한 편으로는 베트남에 진출했더라도 한국에서 파견 나온 1~2명 적은 주재원들이 하루라도 빨리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본사에서 채근하고 조급증을 보여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할 수 밖에 없게 만들기도 한다.
음식에는 역사, 사회, 문화, 날씨, 기후, 사람들의 습성까지 한 나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보니 다른 나라 식음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라면 업체들은 베트남 음식 문화에 근본적인 접근을 고민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비슷해 보이지만 한국과 베트남 라면을 조리하고 먹는 문화가 다른 점 몇 가지를 보면 한국 사람들은 얼큰한 국물을 선호하지만 수돗물이 석회수인 베트남에서는 라면 면발만 먹고 국물을 마시지 않는다. 베트남 라면은 우리처럼 냄비에 끓여서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접에 라면과 스프를 붓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조리해 먹는다.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베트남 라면 스프에는 고수풀이 들어있기도 하고 시큼한 국물 맛이 난다.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먹는 라면 방식 중에 하나가 볶은 라면이다. 일반 식당에서도 해산물과 고기를 함께 넣고 메뉴에 올려 놓고 판매할 만큼 일반적이다. 요즘은 학교 앞 편의점에서 학생들의 한 끼 식사로 가장 많이 팔리는데 뜨거운 물에 데친 라면을 소스에 볶아 계란 프라이에 얹어 먹는데 우리 돈으로 750원 ~ 1천원이다. 베트남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는 이 볶은 라면을 흔히들 먹는다. 이처럼 라면을 먹는 방식도 맛 자체도 확연히 다르다.
무조건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라면을 현지 공장에서 제조해서 가격을 낮추어 판매한다고 해서 팔리는 것은 아니다. 향후 긍정적인 것은 베트남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의 유행으로 한국 맛의 얼큰한 라면이 인기를 끌고 있다지만 아직 전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큰 라면 시장인만큼 진입하려는 업체들도 많고 탄탄하게 자리 잡은 현지 업체들도 많다. 베트남은 쉬워 보여 웃으면서 들어오지만 대다수가 울면서 나가는 어려운 시장이다. 현지에서 시장을 개척하는 직원들에게 충분한 시간과 지원을 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