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사회로 성큼 다가선 베트남
필자가 베트남에 처음 왔던 2011년에만 해도 전자제품 전문 판매점에는 현금 뭉치를 들고 와서 TV나 냉장고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느라 계산대에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전자제품이라 금액이 100만 넘는 것들도 많은데 한국돈으로 5천원가량하는 VND 100,000짜리 지폐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돈 세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계산대 옆에는 은행에서나 볼 법한 돈 세는 기계가 여러 대 놓여 있어서 참 낯설고 당혹스러운 광경이었다. 수 천 만원 하는 자동차를 구매할 때에는 현금 상자 몇 개를 들고 온다는 말을 들었는데 신용카드가 보편화되지 않은 베트남 경제의 웃픈 현실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베트남 전체 인구 중 은행 계좌를 소유한 사람이 20%가 채 안되었고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모바일 뱅킹은커녕 타 은행 간의 계좌 이체는 1~2일이 지나야 상대방 계좌에 입금이 되었다. 그나마 계좌 이체 기간 중 주말이나 공휴일이 끼어 있으면 입금 확인은 3~4일 더 늦어지던 상황이었다.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그러던 베트남이 천지개벽해서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를 천명하고 전체 결제 금액에서 현금 사용률을 2025년까지 8%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시작된 ‘현금 없는 결제를 위한 개발 계획’을 국가 정책으로 수립하고 슈퍼마켓, 쇼핑몰 같은 유통 채널에는 100% 신용 카드 결제가 가능하게 POS 설치를 독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의 등록금, 병원비를 카드 리더기, QR 코드 스캐너, 전자결제 모바일 앱 같은 비현금 결제 수단으로 납부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외에도 전기, 수도, 통신 서비스 업체 등의 70%는 신용카드, 온라인 뱅킹, 전자지갑 결제와 같은 현금이 아닌 결제 수단으로 지불할 수 있게 했다.
비현금 결제를 하려면 은행 계좌 보유가 필수인데 베트남 국민들의 은행 계좌 보유율도 높아지고 있다. 2014년 15세 이상 국민 30.8%만이 보유하던 은행 계좌가 2020년 70%까지 높아졌다. 베트남 정부는 계좌 보유율을 2025년 80%, 2030년 9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각 은행들은 지방 마을 단위까지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ATM기기를 늘리고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지점을 개설하게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고 오래전부터 시행되던 것이지만 베트남은 몇 년 사이에 급박하게 도입 시행되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 못지않게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어 베트남의 현금 없는 사회는 혼란 없이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베트남 정부가 이렇게 급박하게 변화를 주도하며 밀어붙이는 자신감에는 97%에 (15세 ~ 64세) 달하는 스마트 폰 보급률이 뒷받침하고 있다. 통신 기반 시설이 발달해 스마트 폰 사용하기가 좋은 베트남은 높은 스마트 폰 사용 환경을 바탕으로 전자 결제 산업이 급팽창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 업체는 베트남 두 번째 유니콘 기업으로 선정된 VN Pay이다. 이 회사는 2019년 손정희 회장의 비전 펀드와 싱가포르 국부 펀드인 GIC로부터 3억 달러를 유치했다. 베트남 주요 40개 은행의 계좌만 있으면 별도 가입 없이 QR코드 기반 결제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VN Pay는 2만 개 이상의 기업들을 파트너로 하고 있다. VN Pay 앱으로 결제, 이체, 송금, 공과금 납부, 버스표 구입 등을 이용할 수 있고 월평균 1,500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다.
VN Pay처럼 자신이 소유한 은행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과 달리 필요한 금액만큼 충전해서 사용하는 전자지갑 Momo가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2,3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해 전자 결제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Momo 사용자의 전화번호만 알면 수수료 없이 간편하게 송금할 수 있어 식사를 같이하고 더치 페이 하는 것이 당연한 MZ세대들에게 인기이다. Momo는 골드만삭스, 스탠다드 차티드 은행으로부터 3,380만 달러를 투자받았고 2019년에는 미국 사모펀드로부터 1억 달러를 유치하고 올해 1월 실리콘 벨리 펀드로부터 추가 1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시장조사 기관의 보고서들을 종합해보면 베트남 전자 결제 시장은 2017년 44억 달러, 2019년 85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2021년 150억 달러, 2025년에는 250억 달러로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베트남 전자 결제 시장의 급팽창에는 베트남 정부의 적극이고 주도적인 지원에 있다. 베트남 정부는 6월 16일을 ‘No Cash Day’로 설정하고 비현금 결제 수단에 추가 할인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의 주도적인 현금 없는 사회 정책 목적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지하 경제를 양성화하고 세수 확보를 위해서이다. 베트남 온오프라인 전체 소매시장에서 현금 결제 비율은 80%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베트남 전자상거래 협회가 2019년에 발간한 E-Business Index report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몰에서 조차 결제 금액의 70%가 Cash On Delivery, 물건 배송 기사에게 물건을 인도받으면서 현금으로 결제하고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고 세금이 걷히지 않는 현금 거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베트남 정부가 의욕적으로 전자결제 사업을 지원할 수밖에 없다.
베트남 전자 결제 시장에 현재 38개 업체가 뛰어들었고 한국 기업도 베트남 우체국 산하 기업의 결제 회사를 인수해서 사업 전개 중이다. 아직까지 현금 사용률이 높고 젊은 층 들일 수록 전자 결제 사용률이 높아가는 데다 베트남 정부가 국가 정책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라 향후 전망은 좋다. 다만 아직까지는 누구도 웃지 못하고 큰 적자만 기록하고 있다. 아무래도 고객 확보를 위해 전자 결제 시 추가 할인과 같은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전개하고 있어 누가 더 많은 자본으로 오래 버틸 수 있느냐 하는 치킨 게임 중이다. 업계 1위인 MoMo는 2019년 매출이 4조 2,300억 동으로 (한화 약 2,100억 원)으로 2018년 대비 2배 성장했지만 손실 역시 2배 증가한 8,500억 동 (한화 430억 원)을 기록했다. 1위 싸움을 하고 있는 VNPay도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 전자결제 시장은 당분간 할인 프로모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만 즐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전자결제 업체들 간의 인수 합병은 더욱 잦아질 것이고 치열한 경쟁 속에 베트남 정부가 원하는 현금 없는 사회는 성큼 더 빠르게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