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도 주린이 ‘F0’ 열풍, 86년 개혁개방의 산물
전 세계 주식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지수를 끌어 올리는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폭락한 주식 시장에 신규 개인 투자자들이 재미난 애칭을 달고 진입하면서 각 국가 별로 경이로운 주식 지수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코로나 폭락장 속에서 반등의 기회를 노리고 외국인과 기관의 대량 매도세에 반발 매수하는 개인투자자들의 모습이 동학농민 운동 같다하여 ‘동학개미’라 부른다. 미국에서는 2008년 모기지 사태로 몰락한 중산층 출신의 젊은 개인 투자자들이 무료 증권 거래 앱을 통해 거대 자본에 맞서 투자를 한다고 해서 ‘로빈후드’라 칭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잘라내면 금방 자라나는 부추처럼 반복적으로 매입하며 주식 시장에 끊임 없이 투자를 하는 90년생 주링허우 세대를 일컬어 ‘청년부추’, 일본에서는 대형 매도 세력에 대항에 잽싸르게 움직이는 닌자처럼 대응한다고 해서 20~30대 젊은 투자자들을 ‘닌자 개미’라 부르고 있다.
베트남 증시에서도 연일 최고치 주가 지수, 최대 신규 증권 계좌 개설 수 갱신, 증권사 매출 및 영업 이익 최고치 기록 등을 이끌고 있는 초보 투자자들이 있는데 베트남에서는 이들을 ‘F0(F+ 숫자 0)’라 부른다. 베트남에서는 코로나 최초 확진자를 생물학 용어를 사용해서 'F0'라고 지칭 하는데 1차 접촉자를 F1, 2차 접촉자를 F2라 분류해 인터넷과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이들의 동선을 전국민에게 통보하고 방역을 하고 있어 베트남인들에게는 ‘첫 시작한 사람’ 이라는 의미에서 최근 유행하는 단어이다.
베트남에서 주식 계좌를 개설하려면 증권사와 연계된 은행에서만 계좌를 개설해야 하고 작성해하는 신청 서류도 4~5가지나 되어서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데도 젊은 베트남인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베트남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1년 3월 한 달 신규 거래 계좌수가 113,875개로 월 기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21년 1월 ~ 4월까지 누적 개설 수 393,659개는 2020년 한 해 개설 수 전체의 93% 해당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이다. 뜨거운 열기는 계속해서 이어져 11월과 12월에는 사상 최고 계좌수의 2배를 기록하며 뜨거운 2021년 베트남 증시를 마감했다.
베트남 1위 증권가인 사이공증권은 21년 1분기 1조 4,700억동(한화 735억원) 매출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했고 세 후 이익은 4,260억동(213억원)으로 8배나 늘었다. 그 외 VN 다이렉트 증권도 8배 늘어난 4,825억동 (241억원), 비엣캐피털증권은 2.5배 늘어난 2,920억동 (146억원), VPS 증권은 2배 늘어난 2,020억동(101억원)의 영업 이익을 달성해 업계가 다들 싱글벙글이다.
베트남 증시는 MSCI 지수 중 (모건 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셜널) ‘프런티어 마켓’에 속해 있는데 20년 12월 쿠웨이트가 ‘이머징 마켓’으로 승격 확정되면서 프런티어 마켓에서 베트남의 비중이 기존 17.5%에서 25.2%으로 늘어 나게 되었다. 베트남 증시가 상승하게 된 호재가 발생한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이 기세를 몰아 베트남 증시도 ‘이머징 마켓’으로 승급되려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편의를 배려한 다양한 법개정을 진행하고 있다.
베트남 증시가 급격히 상승한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는데 무엇보다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에 따른 경제 성장이다. 베트남은 코로나 펜데믹 상황 속에서도 2020년 2.91% 성장하며 1인당 GDP 2,777 달러를 기록해 전세계에서 몇 안되는 플러스 성장국가가 되었으며 올 해 2021년에도 6.5% ~ 7.0% 성장이 기대 되고 있다. 베트남 국민들 스스로가 국가 경제 성장에 대한 강한 확신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급격한 금리 인하이다. 코로나 펜데믹 충격으로 경기 부양을 위해 베트남 중앙은행이 4차례 걸쳐 기존 5%였던 금리를 4% 대폭 내렸기 때문이다. 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던 부동산 임대업이 어려움을 겪는데다 낮아진 예금 금리 대신 20~30% 수익을 거두는 주식 시장에 학생, 주부부터 공장 노동자, 사무 직원까지 모두들 뛰어들고 있다.
베트남에서도 어려워진 경제 상황이 역설적으로 베트남 증시를 활황으로 만든 것도 또다른 이유이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 충격으로 2020년 101,700개의 사업장이 폐쇄 또는 휴업 중인데 이로 인해 직장을 잃어 소득을 벌기 위한 생계형부터 보유한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대안 투자처로 주식 시장에 관심을 갖거나 새로운 사업을 진행할 수 없어 투자금으로 주식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 편에서는 베트남 주린이 F0 탄생을 베트남 개혁개방 정책이었던 도이머이에서 찾기도 한다. 도이머이 정책으로 개방 개혁이 시작된 1986년 자유 시장 체제를 도입해 민간 기업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35년이 지난 지금 해당 사업체를 설립한 부모 세대들이 이제 30~40대가 된 자녀들에게 사업권을 물려주면서 자본력을 갖춘 젊은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증시 참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개혁 개방 시대에 자란 1980년대생들은 인터넷과 스마트 폰 사용이 당연해 어플을 다운 받아 손 쉽게 주식 거래를 하게 된 것도 베트남 증시 성장의 한 원인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 증시가 더욱 성장하기에는 부족한 것들도 많다. 2020년 기준 베트남 증시 시가 총액은 USD 2,100억 달러로 한국 증시의 10% 수준이며 아세안 주요 6개국 중에서도 가장 작아 외국 자본의 대량 매도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난 주식 거래로 서버가 견디질 못해 여러 차례 매매 중단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베트남 증시에 직접적으로 뛰어든 한국인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데 베트남 기업에 대한 과장되고 제한적인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에서 막연하게 알고 있는 기업 이미지와 실상은 많이 다르다. 일례로 2019년 세계 3대 신용평가 회사인 피치는 베트남 시총 1위 기업이자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그룹에 대해 기업 평가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는데 한국에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람은 그리 많지 않다. 베트남 기업들 중에는 성장 가능성이 높고 베트남 현지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며 영업 이익을 내고 있는 우수한 기업들도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말 뿐인 사업계획 공시도 많다.
투자 관련해서는 진부하고 평이한 표현이지만 ‘투자자들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