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미국 뉴욕커들의 인기 점심 메뉴 바게트 샌드위치 Banh Mi (반 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할 때 먹어 유명해진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 완자와 함께 시큼한 소스에 적셔 먹는 쌀국수 Bun cha (분 짜) 등 먹음직스러운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단연코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베트남 음식은 우리가 흔히 ‘베트남 쌀국수’라 부르는 Pho (퍼어). 젓가락질 잘 해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임에도 젓가락질 서툰 유럽과 북미인들 사이에서 쏘울 푸드로 자리 잡은 뜨끈한 베트남 쌀국수 Pho. 전 세계에서 베트남을 대표하는 쌀국수 Pho에는 베트남의 현대사가 한가득 담겨있다.
쌀국수 Pho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려 진 것은 없으나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던 1898년 북부 Nam Dinh (남딘)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남딘 지역에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큰 섬유 공장 건설이 시작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온 전국의 수 만 명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음식 장사가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남딘 지역에서 먹던 쌀국수에는 각종 채소와 논에서 잡은 민물 게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섬유 공장 건설을 위해 파견 온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소고기를 넣은 쌀국수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농경 국가인 베트남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인 소는 함부로 도축할 수 없었는데 프랑스인들이 먹는 방식을 따라 먹게 된 베트남 사람들은 소 살코기를 고명으로 얹어 먹게 되니 새로운 세상의 맛이었던 것이다. 지금 전세계인이 즐기는 소고기 쌀국수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받아들인다.
베트남 쌀국수 이름인 Pho도 프랑스인들이 늘 먹던 소고기 야채 수프인 Pot au feu (뽀 토오 푀)라는 음식이 있는데 지금의 베트남 쌀국수가 Pot au Feu에서 파생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편, 베트남 북부지역에 살고 있던 중국 광둥 지역 출신 화교들이 먹는 넓적한 쌀국수 ‘河粉’ (허펀, 중국 광둥 지역 발음으로)에서 파생되어 Pho라고 표기했다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 실제로 베트남에 살고 있는 화교들이 운영하는 쌀국수 집에는 한자로 ‘河粉’이라고 표기되어 있기는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Pho 명칭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식민지 시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든 뼛속 깊은 불신 국가 중국에서 유래되었든 상관 없이 전국민이 즐겨 먹는 음식이면 그것 역시 또 하나의 베트남이기 때문이다. 실용적이고 개방된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는 베트남 사람들의 자세가 여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현존하는 기록물 중 ‘pho’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06년 Nguyen Van Vinh (응웬 반 빈)이라는 사람이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이다. ‘파리에서 물건을 파는 소리를 들을 때면 아침마다 Pho를 팔던 소리가 생생하다’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의 매개체로 쌀국수을 언급한 것이다. 마치 향수에 젖은 한국인이 해외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Pho가 이미 베트남 북부 사람들에게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쏘울 푸드였던 모양이다.
1913년 프랑스인 화가 Mairice salge이 하노이 길거리에서 쌀국수를 판매하는 행상의 모습을 그린 모습도 이채롭다. 쌀국수 식재료와 숯불이 담긴 통을 긴 막대에 연결해 어깨에 메고 다니는 행상들이 1920년대까지 활동을 하다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전문 쌀국수 식당들이 하나 둘 열기 시작하면서 Pho는 말 그대로 베트남 국민 음식으로 등극하게 된다.
남북분단, Pho의 남부 대유행
1954년 베트남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했지만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 베트남과 남 베트남으로 분단된다. 공산 정권을 피해 수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난을 가면서 북부의 국민 음식 Pho가 본격적으로 남부에 대유행하는 계기가 된다. 남부에서 Pho의 인기는 북부에 비해 뜨뜻미지근했는데 아이러니하게 국토 분단이 Pho를 남부 곳곳으로 유행 시키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마치 한국의 남북 분단으로 피난민을 통해 평양 냉면이 남한 곳곳에 퍼지게 된 것과 꼭 같은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1,650km의 남북이 길게 늘어진 나라인 베트남이다 보니 겨울이 있고 대륙의 기질이 있는 북부와 1년 내내 덥고 동남아 특유의 개방성이 있는 남부는 식생활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래서 남부로 내려온 쌀국수는 남쪽의 특성에 맞게 바뀌게 된다.
북부의 쌀국수는 맑은 고기 국물에 간단하게 파와 고기를 얹어 내오는 반면 식재료가 풍부한 남부는 뼈를 잔뜩 우려낸 기름진 국물에 숙주와 향이 진한 고수, 어성초 등 다양한 향채를 넣어서 먹는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라면을 끓일 때 라면 스프만 넣고 끓이는 전통파와 치즈와 계란 등 다양한 식재료 넣어 먹는 개혁파의 논쟁처럼 북부 사람과 남부 사람들은 서로의 방식이 더 맛있다고 자존심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베트남 사람들은 각 지역의 다양성을 널리 수용한다.
1975년 미국이 전쟁에서 패하고 베트남이 통일되자 보트 피플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베트남을 도망 나왔다. 약 100만여명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호주로, 프랑스로 작은 보트나 뗏목을 타고 피난민이 되었다. 이들이 세계 곳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시작한 일이 쌀국수 식당이었다. 워낙 부지런하고 성실한 베트남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을 했고 북미, 유럽 곳곳에 쌀국수 집은 늘어났고 현지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베트남 남부에서 다양한 식재료를 개방적으로 사용하던 사람들답게 미국, 프랑스 환경에 맡게 다양한 식재료를 추가하며 현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지역 언론에는 자신의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쌀국수 집은 어디인지 특집 기사를 해마다 내고는 한다.
Pho는 베트남 현대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음식이다. 프랑스 식민지 영향으로 탄생하고,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만 유행하던 음식이 전쟁으로 인해 남부 지역까지 대확산되었다가, 전쟁이 끝나자 전세계로 확산되기까지. 그리고 이제는 전세계 곳곳에서 인기 메뉴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세계 곳곳에서 맹활약하는 베트남인들의 머지 않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기대 된다.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와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