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 반도체 산업 현황과 성장 기회 및 인력 양성에 대한 글로벌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베트남 반도체 서밋’을 개최했다. 존 뉴퍼 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장, 무선통신 반도체 전문기업인 퀄컴의 시타이 리우 부사장, 반도체 설계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시놉시스의 로버트 리 부사장과 반도체 설계 자동화 기업인 케이던스의 마이클 신 부사장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 아시아 총괄 임원을 초대해 공개 대담을 나누었다. 이와 아울러 베트남 정부는 이 자리에서 ‘베트남 반도체 혁신 네트워크를(Vietnam Semiconductor Innovation Network) 출범하고 북부 하노이 – 중부 다낭 – 남부 호치민 등 지역별로 각각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혁신센터와 반도체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는 공단인 하이테크 파크를(High-Tech Park) 설립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2030년까지 5만명의 반도체 인재 육성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국립대학교, 호치민국립대학교, 다낭대학교, 하노이과학기술대학교, 우정통신기술연구소 등 5곳에 반도체 전문 교육 시설과 연구 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2012년 베트남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핵심 국가 사업으로 선정하고 반도체 산업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베트남은 그간 베트남 경제 성장을 이끌어왔던 노동집약 산업에서 발전하지 못하면 중진국 함정에 빠진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첨단기술산업 발전에 베트남 미래가 걸려 있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베트남 정부의 기조와 국가주석, 총리 등 국가 지도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삼성전자에 반도체 사업 투자를 끈질기게 요청했다. 2021년 이에 화답한 삼성은 고부가가치 반도체 기판인 FC-BGA을 2024년 양산을 목표로 8억 5천만달러를 (한화 1조억원) 베트남에 투자했다. FC-BGA는 최근 가장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산업인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전기자동차 시장에 꼭 필요한 반도체 부품이다.
사실 그간 베트남의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 오던 곳은 미국의 인텔이다. 2010년 첫 반도체 조립 테스트 공장을 가동한 이래 인텔은 누적 15억 달러를 (한화 2조원) 투자해 반도체 패키징-테스트를 해왔다. 패키징-테스트는 반도체 산업의 가장 기본적인 공정으로 지난 10월 이 분야의 세계 2위 기업인 앰코테크놀로지가 5억 2천만달러(한화 7000억원)를 투자해 베트남에 공장을 완공했다. 이 기업은 추가로 10억 7500만달러를 (1조 4000억원)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9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가 간의 외교 관계를 최고 등급으로 격상하면서 베트남은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산업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지난 7월 베트남을 방문했던 재닛 옐런 미재무장관은 연설을 통해 ‘미국반도체지원법 예산 중 5억 달러는 아시아 지역에 쓰여야 한다’며 베트남에 투자한 앰코테크놀로지를 언급하며 베트남에 지원할 것임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보다 수준 높은 반도체 공정 유치를 원하고 있다.
지난 9월 11일 블링컨 미국무장관과 베트남 기획투자부 장관이 함께한 ‘미국-베트남 혁신 및 투자 서밋’에서 미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인 마벨 테크놀로지가 2024년까지 베트남에 투자 할 것을 확인하고 베트남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해 호치민시에 디자인 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또한 이미 베트남에 진출한 미국 반도체 기업 시놉시스는 중국에서 베트남 호치민으로 엔지니어 교육센터를 이전하고 집적회로 설계 및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양성할 계획이다. 또한 이미 호치민과 다낭 2곳에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시놉시스는 기존 인력을 400명에서 800명으로 2배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로이터 통신이 10월 31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베트남은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건립을 위해 미국의 ‘글로벌 파운드리스’와 대만의 ‘PSMC’측과 접촉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미-아세안 기업협의회 베트남 대표 부투탄 (Vu Tu Thanh)과의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 정부는 팹 운영사 및 6개의 미국 반도체 기업들과 만남을 가졌으며 ‘10년 안에 첫 베트남 반도체 공장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했다.
베트남의 거침 없는 반도체에 대한 애정 공세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베트남 정부가 주최한 ‘베트남 반도체 서밋’에서 미국반도체협회장 존 노이퍼는 ‘베트남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패키징-테스트에 집중할 것’을 권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시놉시스의 로버트 리 부사장은 ‘베트남 정부가 원하는 펩 건설 비용이 500억 달러 (65조억원) 이상 소요 된다며 1000억 달러~1500억 달러를 쏟아 붓는 미국, 유럽연합, 한국, 중국과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중국에 집중되었던 공급망에 대한 리스크가 부각되고 미중 갈등으로 중국의 발전을 적극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중국 진출한 반도체 기업들의 해외로 이전을 압박하는 상황이 베트남으로서는 반도체 산업을 유치하기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베트남에게만 기회가 아니다. 13년 동안 투자해 온 인텔이 추가 10억 달러 투자 계획을 최종 취소한 것에 대해 곱씹어 봐야 한다. 인텔은 그간 말레이시아에 70억달러를 투자해왔는데 최근 고급 3D 반도체 패키징 허브 조성을 위해 추가 7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인텔은 독일에 반도체 제조 공장 2곳 건립하기 위해 300억 유로(한화 42조 4000억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독일 정부는 100억유로 (14조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EU는 코로나 펜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에 어려움이 생기자 유럽 내에 반도체 공급망 확장을 위해 적극적인 인센티브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독일 이외에도 인텔은 폴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에 최대 800억 유로 (113조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베트남은 이제 베트남만의 매력으로 기업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각종 세금 감면과 토지 임대료 지원은 다른 경쟁 국가들도 비슷하거나 더 많은 조건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에 베트남만의 경쟁력이 없다. 반도체 업계 경력 27년의 싱가포르 국립 전자연구소의 유재옥 선임 연구원은 ‘합법적인 틀 내에서 과감한 인센티브를 내걸라’고 조언했다. ‘기본적으로 글로벌 반도체 전문가들을 적극 끌어 들어 오기 위해 노동비자와 가족들의 거주증 발급을 간소화’부터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태양광, 풍력 재생에너지 발전에 적극 투자 해온 베트남이 탄소세 장벽에 유리한 입장을 점유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정부가 또 하나 증명해내야 할 것은 베트남 정부가 중국 정부와 얼마나 다른 가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여전히 베트남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중국과 같은 공산당 1당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과 같은 행보를 보이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다. 베트남이 보여주어야 할 것은 과감한 혁신과 유연한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