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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큼대마왕 Jan 05. 2024

슬기로운 주재원 생활
-11. 문제는 본사야

 한국 기업들 대상으로 베트남에 대해 강연할 일이 많은데 빠지지 않는 질문 중에 하나가 ‘베트남에서 사업하는데 있어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것이다. 


질문자들은 ‘베트남의 부족한 인프라 환경’이나 ‘각종 까다로운 규제’를 예상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해외 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 본사’이다. 


  이 말을 듣은 사람 중에 깔깔 웃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하는 사람들은 현지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고 있거나 해 본 사람이고 당황하는 사람들은 임원들이나 인사 담당자들이다. ‘한국 본사가 해외 사업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아이러니한 답변을 처음 한 사람은 모 대기업에서 아세안 총괄로 15년 넘게 근무한 분인데 나 역시도 격하게 공감하며 항상 그분의 답변을 인용한다.



<해외법인이 식민지 총독부인가?>


한국 기업들이 아직 해외 사업에 대한 기본자세가 안되어 있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본사의 해외 사업장에 대한 인식이다. 규모가 크고 수 십 년 동안 해외 수출을 해온 업체들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아직도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해외 사업장을 바라본다. 


주재원들이 출퇴근은 제대로 하나?’

‘관리 감독할 사람이 없으니 현지 직원들에게 전횡을 휘두르지는 않나?’

‘회사 돈을 유용하거나 현지 업자에게 돈을 받아먹지는 않을까?’

.

.

등등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심정적으로 다소 이해되는 것이 본사 구성원 대부분은 해외 주재원 경험이 없고 임원들 중에는 요즘에는 흔한 해외 어학연수 경험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해외 사업장에 대해 본인의 제한된 정보만으로 왜곡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외로 파견 나간 직원들이 왜곡된 시각에서 평가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양한 산업군의 주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체적으로 비슷한 의견인데 본사는 해외 법인을 해외 식민지처럼 다루려고 한다는 것이다. 본사 담당자는 ‘검사’하고 ‘허락’을 해주는 ‘감독관’처럼 굴며 본사에서 요구하는 것을 현지 법인은 당연히 대응해주어야 한다고 인식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수평적 구조에서 업무 협조를 요청하기보다 상위 부서에서 하위 부서로 하달하는 느낌이랄까? 본사는 해외 사업장을 지원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 옥죄고 관리 감독하려 든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다소 과장되게 비유하면


본사 : 식민제국

현지 법인(주재원) : 총독부 / 동양척식주식회사 / 동인도회사

베트남 현지 직원 : 부족한 것 투성이의 식민지 국민


처럼 대하는 모습들을 자주 목격 경험하게 된다. 괴롭힌다거나 수탈한다는 것이 아니라 해외 현지에 법인 대한 본사의 인식이 이런 경향성을 띈다는 것이다.


모 대기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베트남 법인장이 회사 차량으로 도요타 캠리 2.0을 타고 다녔는데 베트남에 출장을 다녀온 본사 담당자부터 임원들이 한 마디씩 해댔다. ‘부장 직급 밖에 안 되는 법인장이 시건방지게 임원 놀이하며 캠리 세단을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 당시 한국에서 캠리 인기가 좋을 때였다’. 그 말을 전해 들은 해당 법인장은 즉시 ‘현대 산타페’로 차량을 바꾸었더니 더 이상 뒷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반전 스토리가 있다.




베트남에서 조립 생산하는 도요타 캠리는 우리 돈으로 3천만 원가량이지만 한국에서 수입해 와서 세금이 차량 가격의 1.5배인 산타페는 7천만 원이었다. 해당 법인장 입장에서는 베트남 현지 거래처나 공무원들을 자주 만나야 하는 한 회사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 위상에 맞고 적절한 예산의 도요타 캠리를 타고 다닌 것이었다. 그런데 현지 상황을 전혀 모르고 한국에서의 편협된 시각 때문에 회사 비용만 2배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왜 한국에서 처럼 안 하나고?>


 필자가 베트남에 진출하는 기업들에게 꼭 하나만 기억하라고 강조하는 것이 ‘한국에서 당연한 것이 베트남에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라는 점이다. 본사 각 부서 담당자들이 베트남 법인에 출장을 오면 법인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 있다고 판단하기 쉽다. 왜냐하면 본사에서 온 사람들은 ‘한국의 기준’을 잣대로 현지 법인을 평가하려 들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의 베이커리 업체 이야기이다. 베트남에서 운영되는 매장을 살피러 한국에서 출장 온 본사 담당자들이 상품 관리가 엉망이라며 부정적인 피드백을 해왔다. 그중 한 가지 피드백을 소개하면 ‘소보로빵의 울퉁불퉁한 윗부분 소보로가 최소 13개 ~ 15개 조각으로 나뉘어야 하는데 베트남에는 7~8조각 밖에 안되어 있다’라며 닦달하더란다. 한국에서야 경험 많고 실력 있는 제빵사들이 많기도 하고 제빵 기술 교육을 꾸준히 해주는 전담 부서도 있지만 베트남 법인에는 그럴만한 예산과 인력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소보로 빵의 소보로 조각이 13개나 7개나 매출 발생에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물건을 구매하는 베트남 소비자들이 소보로 조각을 구매 결정 요소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보로빵이 회사가 전면에 내세우는 메인 상품도 아니고 말이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단맛의 빵들이 주를 이루는데 베트남에서는 짭조름한 빵들을 선호하니 한국에 없는 베트남 만의 메뉴 개발에 집중해야 했는데 지엽적인 것에 몰두한 것이다.

파견 나온 한국인 주재원이라고는 법인장과 영업 관리 팀장 1명밖에 없는 법인에 별도 한국인 제빵 기술자가 있는 것도 아닌 데다 사업에 큰 지장을 주는 요소가 아닌 것은 현지 사정을 배려해서 평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충분한 지원 없이 단순하게 한국의 기준 잣대로 현지 법인을 검사하려 들면 주재원들은 견뎌내기 어렵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아세안 사업 초창기에 가장 어렵게 하는 본사 담당자들은 중국에서 주재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해외 경험이 전혀 없는 본사 담당자 대신 중국 사업 경험자들이 해외 사업 지원을 해주면 좀 더 원활하게 운영될까 싶어 도입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국가는 전혀 다른 시장이기 때문에 중국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사드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제품이면 날개 돋친 듯 팔렸던 절정의 시점에 중국 주재원 생활을 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능력을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 사업 경험이 있거나 주재원 생활을 하던 분들이 처음에는 베트남과 과거 중국의 환경과 비슷하다고 오판하고 사업을 하다 크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한결 같이 '베트남은 중국과 달라요. 어려워요’라고 토로한다.


이처럼 중국 주재 경험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잣대로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시장시장을 판단하려들면 아무것도 모르는 본사 담당자들보다 더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물론 중국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 사업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능력 출중한 주재원들도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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