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찾는 수 많은 한국인들이 ‘이런 저런 제품을 한국에서 가져다 베트남에서도 팔면 잘 될 것 같다’라는 사업 아이디어를 한 번씩은 내놓는다. 하지만 20만명의 한국 교민과 9000여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한 베트남에서 분명 누군가는 같은 생각을 했을 터. 누군가가 이미 시도했는데 어떠한 이유에서 베트남 시장에 맞지 않아 판매가 부진했을 가능성이 크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의외로 베트남에서 잘 안 팔리는 제품’들을 소개하고 그 이유를 분석해 드린다.
1. 선크림
무더운 나라 베트남이기 때문에 공항을 나서는 순간부터 ‘베트남은 선크림이 잘 팔리겠다’라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베트남에서 선크림은 잘 팔리지 않는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 마켓라인(MarketLine)의 <2022년 선케어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선케어 시장 규모는 1억 2412만 달러(1660억원)로 한국의 5억 8490만달러 (7826억원)의 20% 수준 밖에 안된다. 베트남은 1년 내내 뜨거운 햇볕이 내리 쬐는데다 인구가 한국의 2배인 1억명인 것을 감안하면 베트남 사람들의 선크림 소비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한참 낮은 수준이다. 이런 내용을 들은 한국인들 대체로 ‘베트남이 못 살아서’ 또는 ‘피부가 까매서’ 선크림을 사용하지 않나 보다’라는 인종 차별적인 반응까지 내놓는다. 하지만 베트남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하얀 피부를 미인의 필수 조건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따가운 햇살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감싸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는 물론 팔다리까지 햇볕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일명 ‘닌자’ 복잡을 하고 다닌다. 점심 식사하러 이동할 때면 잠깐 몇 분이라도 햇볕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우산을 쓰거나 겉옷을 천막치듯 펼쳐 다닌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선크림에 대한 수요가 매우 강해 보이는데도 시장이 크지 않은 것은 역시 ‘소득 수준’ 때문이라는 생각이 앞서기 쉽다. 베트남 시장을 분석할 때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 ‘소득이 낮아서’라는 편견이다.
19년째 화장품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는 베트남 선크림 시장이 성장하지 못한 주요 요인은 바로 ‘부족한 대중교통 시설로 인해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야 하는 사회적 환경’ 때문이라 생각한다. 베트남은 인구 1억에 등록된 오토바이 대수만 7천만대인 나라로 국민 대다수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이런 환경에서 끈적끈적한 선크림을 얼굴에 바르면 먼지와 대기오염 물질이 고스란히 얼굴에 달라붙는다. 게다가 무더운 날씨로 인한 흘러내리는 땀과 수시로 내리는 빗물에 선크림이 씻겨 불편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배경을 바탕으로 상황을 인지하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선크림을 바르는 것이 기본이라지만 전세계에서 한국인만큼 선크림을 열심히 바르는 나라 사람들도 없다. 해외 시장을 파악할 때 한국을 기준으로 삼고 접근하면 낭패를 당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다소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베트남의 대중교통 인프라가 문제라면 결국 ‘돈이 문제’ 라고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 소비자들이 돈이 없어 선크림을 구매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2. 콘택트렌즈
필자가 14년 전 베트남 생활 초창기 때 안경을 쓴 베트남 여성들이 많아서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안경에서 콘택트렌즈로 전환되고 시장 규모가 커지겠다고 추측했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나도 베트남 콘택트렌즈 시장은 더디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 스태티스타 (Statista)의 <베트남 콘택트렌즈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2018년 4434만달러(592억원) 규모였던 베트남 콘택트 렌즈 시장은 2023년 5277만 달러 (705억원)으로 5년간 연평균 3.8% 밖에 성장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베트남 인구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한국 콘택트렌즈 시장은 베트남의 6배가 넘는다. 중국 리서치 회사 Dauxue컨설팅이 24년 2월에 내놓은 <한국의 안경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콘택트렌즈 시장은 3억 4000만 달러(4542억원)이다. 당시 필자 역시 단순히 ‘소득 수준’으로 시장을 전망한 오류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게 되자 베트남 여성들이 콘택트렌즈를 선호하지 않은 이유는 ‘베트남 사회가 여성이 안경을 착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부분은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2018년 4월 MBC 문화방송의 임현주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한 것을 두고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남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는 것은 괜찮은데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면 안된다는 황당한 인식을 대한민국 사회 전반적으로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경 쓴 여자를 첫 손님으로 태우면 재수 없다’는 일부 택시 기사들의 심각한 여성차별적인 인식도 한국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일본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2019년 11월 NHK는 일본의 한 식당에서 여성 직원을 채용하면서 안경 착용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SNS 논란을 다루었다. 수 많은 일본 여성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안경 착용을 금하고 있다는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서 NHK 내부적으로 안경을 착용한 여성 아나운서 한 명도 없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안경 쓴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에서는 콘택트렌즈를 사용하거나 라식, 라섹과 같은 시력 교정 수술을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월 개최된 한국근시학회 심포지엄에 따르면 한국의 근시유병률이 80~90%인데 안경 쓴 여성들을 보기 쉽지 않다. 이에 반해 베트남 여성 아나운서들은 자연스럽게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한다. 베트남에서는 안경 쓴 여성에 대해 비하하거나 부정적인 기색을 내비치지도 않지만 그랬다가는 국가 사회 전체적인 비난을 받을 일이다. 베트남에서 콘택트 렌즈 시장이 더욱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역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오토바이 운전 중 렌즈 안으로 먼지가 들어가는 경우도 많고 바람을 맞으면 눈이 급히 건조해져 렌즈가 떨어져 나가고 비를 맞아야 하다보니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선크림, 콘택트렌즈 이외에도 오토바이 문화 때문에 베트남에서 판매가 잘 안되는 제품은 머리 스타일링을 연출하는 헤어 왁스, 젤, 스프레이가 있다. 오토바이를 타면서 헬멧을 써야 하니 아무리 머리를 멋지게 연출해도 소용 없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시장을 들여다 볼 때에는 숫자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 사회환경까지 들여다 봐야만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