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포레스트>를 보고
택배 8박스.
8년 동안의 서울생활 끝에 남겨진 전부였다.
공부도 하고 사랑도 하고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졸업과 동시에 백수’
그것이 서울생활 8년 성적표였다.
그 해 겨울, 나는 택배 8박스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 계획 없이.
내려온 후에는 그저 쉬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그저 엄마가 해준 밥을 먹었다.
그저 엄마랑 노닥거리며 산책을 했다.
밥먹고 TV보고 자는 일, 그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두 달쯤 놀았을까, 무언가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반 년쯤 지났을까,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어졌다.
십개월쯤 지나자,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나를 봤다.
그리고 정확히 일 년 후,
공부와 취업, 두 가지 모두에서 성공했다.
지금 그 때를 돌이켜보면, 실패했던 시절의 나와 성공했던 시절의 나를 구분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던 것 같다.
안전기지 존재
서울 생활의 나는 혼자였다.
모든 결정과 책임을 내가 짊어졌다.
성공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성공하고 싶었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슬럼프와 불안감을 피할 곳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나는 함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함께였다.
밥만 먹고 잠만 자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때론 실패해도, 때론 쉬어가도, 변함 없이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완벽한 내 편을 가지자 사람이 변했다.
실패가 두렵지 않았고 점점 더 도전적인 일들을 했다.
사랑받지 못할까 두렵지 않았고, 많은 것을 나눴다.
나만의 안전기지 속에서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얼마 전 개봉한 <리틀포레스트>라는 영화에서는
그 시절의 나와 똑닮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혜원은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연애도 맘 같지 않았던 서울생활에서 도망친다. 아무 계획 없이 내려와 그저 밥을 먹고, 농사를 짓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공간,
그 완벽한 피난처에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다시 나아간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영화 말미에 혜원이 말한 작은 숲은,
아마 그 시절 내가 느꼈던 안전기지와 같을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실패해도 나를 비난하지 않을 사람들,
내가 누구여도 날 받아줄 따뜻한 공간,
우리에게는 누구나 안전기지가 필요하다.
다친 영혼을 치유하고 미래를 꿈꾸는 공간,
우리만의 피난처가 있어야 다시 살아갈 수 있다.
by.쏘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