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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블리 Apr 06. 2018

나의 애착치료기

아주 오래된 문제를 내려놓으면서.

20대의 나는 지독한 회피애착이었다. 혼자 잘 있는 것, 독립적인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이별에 울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가까워지면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사람들을 밀어냈다. 버림받기 싫어서 이별을 택했다. 단 한달도 연애를 쉬지 않았지만 늘 외롭고 공허했다.


회피적인 태도는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패하기 싫었고, 실패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싫었다. 실패하기 싫어서 원하지 않는 척을 했다. 실패하기 싫어서 모든걸 던져 도전하지 못했다. 단 한 순간도 실패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타인, 세상, 나를 제외한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하면서 살았다.


회피적인 태도에 문제를 느낀 것인 20대 중반을 지나면서였다. 사랑했지만 이별 후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인생의 어느 시점, 가장 아름다운 인연을 스스로 망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열심히 살았지만 제대로된 실패도, 제대로된 성공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공허했다. 무엇보다 이대로 살다간 누구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무렵, 가을을 지나며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실패하기 두려워 도망가지 않겠다고',

‘이별에 슬퍼할지라도 타인에게 벽을 세우지 않겠다고'




회피애착은 스스로가 회피애착임을 깨닫는 순간 삶이 빠르게 변화한다.


회피애착은 깨닫는 순간 삶이 변화한다. 나도 회피애착을 깨닫는 순간부터 삶이 빠르게 변화했다. 연인을 만날 때, 그 사람을 진심으로 믿었다. 먼저 떠나려고 그의 단점부터 찾았던 일을 그만두었다. 장점을 보고, 사랑을 표현하려고 했다. 타인을 믿기 시작하자 다시 없을 달콤한 순간들이 찾아왔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아는지 알게 되었다.


삶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실패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늦었지만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시작했다. 때론 실패하고, 때론 뒤쳐지는 것 같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원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하니까 방황하지 않았다.회피적인 태도를 버림으로써,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시작되었다.




물론 회피애착치료가 늘 순탄하지는 않았다. 회피애착치료의 가장 큰 난관은 '불안애착의 발현'이었다. 성인애착은 크게 3종류로 나눌 수 있다. 나와 타인을 긍정하고 관계를 안정적으로 풀어가는 안정애착, 나는 긍정하지만 타인을 부정하고 먼저 도망가는 회피애착, 나는 부정하고 타인을 긍정하며 관계에 집착하는 불안애착이 그것이다. 회피애착을 치료하면서 타인을 긍정하기 시작하자, 타인을 긍정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불안애착이 시작되었다.


불안애착발현은 회피애착치료만큼 힘들었다. 관계를 쉽게 단절하지 않으려고 애쓰자 끊어내어야 할 관계를 끊어내지 못했다. 진심을 전달하기 시작했지만, 진심이 제대로 상대방에게 전달되었을까 전전긍긍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그가 나의 인연인지 아닌지 의심했다. 또한 회피애착일때보다 극심한 애착상실의 고통을 겪어내야 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몇 번의 이별을 거친 후, 진정한 안정애착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Where am I?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가끔 나는 스스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어디있는지를 살펴보곤 한다. 


극심한 회피애착의 시기, 극심한 불안애착의 시기를 거쳤고, 안정애착으로 가는 길 위에 머무르고 있다. 회피애착과 불안애착을 모두 겪고 난 후에야 애착을 진정으로 이해했다. 애착을 진정으로 이해하자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의심하고 집착하고, 나와의 이별에 괴로워했던 인연들을 이해한다. 가까워질수록 벗어나려고 하고 벽을 치고, 떠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후회하는 인연들도 이해한다. 관계를 안정적으로 풀어내기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안정애착의 진가를 알아본다. 또한 스스로 안정애착으로 행동하면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법을 알고 있다. 애착치료라는 긴 여행이 이제야 아름다운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프레임에 갇히곤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단념하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대로 변화한다. '나'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하더라도, 내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 등은 바꿀 수 있다. 어렸을 때 부끄럽고 수줍었던 인격이 사춘기를 겪으며 활동적인 성격으로 변하는 것처럼, 밝았던 아이가 인생의 어려움을 겪으며 의기소침하고 어두운 자아가 발현되듯이, 나의 인식,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나와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 사람은 변화한다. 애착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원한 회피애착과 영원한 불안애착은 없다. 안정애착으로 변하고자 한다면, 안정애착으로 살 수 있다.


불안애착과 회피애착인 지난 날과 안정애착으로 사는 지금을 비교해 볼 때, 이 곳은 천국과 같다. 나는 더 이상 관계 안에서 집착하지도 외롭지도 않다. 내 주변에는 나를 믿어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진심을 진심으로, 호의를 호의로 돌려주는 법들을 알고 있다. 관계의 평안함은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나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관계 안에서 고통받고 있다면, 애착치료를 시도해보길 추천한다. 내가 무슨 애착이든 나는 변할 것이고, 변화는 나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by.쏘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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