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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JI Jul 11. 2024

내면 아이에게 보내는 그림책 <4998 친구>

그 많은 팔로워가 다 내 편은 아냐. 같은 반이라고 다 친구가 아냐.

다비드 칼리 글 / 고치미 그림 / 나선희 옮김 / 

요즘 우리 아이를 보면 방학 중에 반이 발표가 난다. 예전엔 안 그랬다. 우리 학교만 안 그랬나? 그건 모르겠다. 예전에는 e알리미 같은 시스템이 없어서일까? 봄방학에 들어가기 전에 반이 발표가 났다. 반 발표가 나면 우리 반에서 내년에도 나와 같은 반으로 올라가는 내 친구 무리가 있을지 수소문해 보고, 옆반에서 그래도 작년에 나랑 같은 반을 했거나 건너 건너 아는 애들 중에 좀 괜찮은 친구가 있나 물어보러 다니곤 했다.


반 발표가 나기 전부터 제발 누구랑 같은 반 되게 해 주세요. 아니면 다 필요 없고 꼭 걔랑은 다른 반이 되게 해 주세요. 하고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요즘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가 누가 되게 해 주세요도 빌어야 하고, 내 팔로워가 많아지기도 바라고, 관리해야 하니 그때의 우리보다 훨씬 바쁘지 않을까? <4998 친구>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반이 달라지면 팔로를 끊는 친구가 생기려나. 친구 누구보다 팔로워 숫자가 적으면 괜히 마음이 위축되기도 하겠구나.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누가 인기가 많다. 아니다 누가 더 인기가 많다. 옥신각신 할 거리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객관적 수치로 명확하게 보이니 옥신각신 할 필요가 없겠다. 몇천, 몇만 팔로워만 확인하면 끝나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정사각형 네모 사진 수백여 장, 1시간도 안 되는 동영상 수십 개로 판단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을 눈에 보이는 숫자에 매달리게 만드니 이 얼마나 배려 없는 미련한 시스템인가.


책 속 주인공은 4998 팔로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모두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어떨까? 그게 진짜 다 내 친구고, 내 편일까?


사실 같은 반이 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반이 된 25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24명이 모두 내 친구 일까? 내가 곤란에 처했을 때 같은 반 아이들 중에 내 편임을 자처해 주는 아이가 몇 명이나 될까? 1명이라도 나와 같은 쪽에 서 준다면 굉장히 성공했다. 또 반대로, 나는 24명의 아이들 중 몇 명이나 강경하게 그들의 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내가 후드려 맞고 있을 때 우리 반에서 만류해 준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때린 아이부터 같은 반이었으니까. 친구라고 생각하고 지냈는데 친구가 아니었다. 친구라 생각했던 아이가 나서서 시궁창으로 밀어 넣고 있다. 그러니 '같은 반이 되었을 뿐'인 아이들 중 누구 하나 '나를 도와주면 좋았을 텐데.', '누가 그 아이를 말려줬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바랄 수 없다. 


한참 얻어맞은 후에야 다른 반에 있던 내 친구가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말렸다. 나를 부축해 일으켜줬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땐 살려고, 그 친구의 호의만 기억해야 했다. 이젠 진심으로 그 친구의 호의만 기억에 남아있다.



일이 있고 초반 몇 년은 위와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누구 하나 내 편을 들어주었다면. 나를 도와줬다면. 아니 구해줬다면 하고 말이다. 애당초 바보 같은 생각이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남을 탓하고, 도와주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원망은 나를 더욱 깊은 심연으로 끌고 갔다. 내 편이 되어준 단 한 사람의 울먹임. 진심. 걱정. 그것들만 품에 안았다면 조금 덜 괴롭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나를 탓하지 않았어야 했다. '나도 한 대 때려볼걸.' 아무것도 하지 못 한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나'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득 차 나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제대로 된 친구가 하나 없는 것은 내 탓도, 내 주변의 탓도 아니다. 아직 좋은 친구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10대 때뿐만 아니라, 20대, 30대, 40대가 되어서도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때론 우리는 좋은 친구에 목말라 있기도 한다. 좋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선 내가 물론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겠다. 하지만 그 이전에 최우선으로 선행되어야 할 일은 '나' 스스로가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거다. 온전한 내 편이 되어 나를 돌보는 게 중요하다.


물만 겨우 삼키며 내 방에 갇혀 지낸 열일곱. 학교도 포기했다. 남에게 내 보이고 싶지 않은 그 어두운 시간 속에서도 덜 어두운 부분은 분명 존재했고 그 시간들 속에서 남들보다 빠르게 마음을 가지치기하며 단단해져가고 있었다.




같은 반에 친구가 없어? 괜찮아. 걔들은 그냥 같은 반이지 친구 아니야.

팔로워가 또래보다 적어? 괜찮아. 그건 그냥 숫자 일 뿐이야.

나와 통하는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어? 괜찮아. 스스로와 먼저 친해지면 돼.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 같은 날들이 지속된다는 건 곧 봄이 온다는 신호야. 

겨울에 멈춰서 있지 마. 그냥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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