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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JI Aug 26. 2024

나 같은 딸은 안 부럽거든요.

6년 차 엄마와 담쌓고 사는 외동딸.

왜 우리는 수없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또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나누고자 하는 것일까?
 왜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바로 관계 안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인정과 사랑을 확인하며 위로와 용기를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말그릇> 중




그렇다.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지도 않고, 

인정과 사랑을 확인할 필요성도 못 느끼는 사람인 거다. 

위로와 용기를 그와의 대화에서 찾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유다. 

엄마가 쏟아내는 속내를 

전화통화로 받아내고 나면 진이 다 빠졌다. 

진만 빠진 거라 생각했는데 스트레스가 됐나 보다. 

내 안의 화를 내 아이들에게 짜증과 화로 똑같이 배설하고 있었다.

 끔찍하고 처참했다. 



그가 말하는 "다른 집 착한 딸들"처럼 

내가 얌전히 들어주고 호응해 준 것도 아니었는데도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때때로 솔루션을 제시해도 무시당하고

2시간 내내 기계적인 공감을 하다가

딱 한번.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하면

2시간의 노고는 물거품이 되고야 만다.



이년, 저년 거리거나

너도 너 같은 거 낳아 키워보라던가

흔히들 짐작할 욕지거리를 듣다가

끝이 나곤 했다.


며칠 뒤 또 히죽히죽 웃으며 "딸~" 하고 걸려오는 전화.

수년을 반복한 뒤에야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음을 

늦게나마 깨닫고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에는 회피라고만 생각했다.


나란 사람은 곤란에 처하면 

회피기재가 강하게 작용하는 사람이라

제 딴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회피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이미 안정과 소속감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가족이 생겼고

위로와 용기를 주는 남편과 친구들이 있다.

해서 엄마의 부재가 더는 치명적이지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천륜을 끊고 살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다시 예전처럼 격의 없다 못해

무례한 관계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사람들은 종종 아들만 가진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한다.


"딸이 하나 있어야 엄마가 안 외롭지"


딸은 엄마가 안 외로우라고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나 같은 딸은 하나도 안 부럽거든요.






다시 관계를 이어간다 해도

약간 서먹하고 어려운 사이였으면 좋겠다.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고,

불쾌하게 뜨겁지도 않은.



그런 모녀 관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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