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차 엄마와 담쌓고 사는 외동딸.
왜 우리는 수없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또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나누고자 하는 것일까?
왜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바로 관계 안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인정과 사랑을 확인하며 위로와 용기를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말그릇> 중
그렇다.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지도 않고,
인정과 사랑을 확인할 필요성도 못 느끼는 사람인 거다.
위로와 용기를 그와의 대화에서 찾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유다.
엄마가 쏟아내는 속내를
전화통화로 받아내고 나면 진이 다 빠졌다.
진만 빠진 거라 생각했는데 스트레스가 됐나 보다.
내 안의 화를 내 아이들에게 짜증과 화로 똑같이 배설하고 있었다.
끔찍하고 처참했다.
그가 말하는 "다른 집 착한 딸들"처럼
내가 얌전히 들어주고 호응해 준 것도 아니었는데도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때때로 솔루션을 제시해도 무시당하고
2시간 내내 기계적인 공감을 하다가
딱 한번.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하면
2시간의 노고는 물거품이 되고야 만다.
이년, 저년 거리거나
너도 너 같은 거 낳아 키워보라던가
흔히들 짐작할 욕지거리를 듣다가
끝이 나곤 했다.
며칠 뒤 또 히죽히죽 웃으며 "딸~" 하고 걸려오는 전화.
수년을 반복한 뒤에야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음을
늦게나마 깨닫고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에는 회피라고만 생각했다.
나란 사람은 곤란에 처하면
회피기재가 강하게 작용하는 사람이라
제 딴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회피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이미 안정과 소속감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가족이 생겼고
위로와 용기를 주는 남편과 친구들이 있다.
해서 엄마의 부재가 더는 치명적이지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천륜을 끊고 살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다시 예전처럼 격의 없다 못해
무례한 관계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사람들은 종종 아들만 가진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한다.
"딸이 하나 있어야 엄마가 안 외롭지"
딸은 엄마가 안 외로우라고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나 같은 딸은 하나도 안 부럽거든요.
다시 관계를 이어간다 해도
약간 서먹하고 어려운 사이였으면 좋겠다.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고,
불쾌하게 뜨겁지도 않은.
그런 모녀 관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