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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안 Aug 10. 2020

자기 인식과 절제, 균형 | Aesop

세대를 거쳐 지속 가능한 브랜드에 대해 탐구하고 기록합니다.

에이솝에 대한 관심은 2013년쯤 각종 매거진에서 브랜드에 대한 소개를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제라늄 리프 바디밤에 대한 매거진 추천글을 캡쳐해두었다가 면세점에서 처음으로 에이솝을 구매했었다. 여행 첫날 밤, 샤워를 마치고 튜브 끝부분을 조심스럽게 짜내어 펴 바른 뒤, 잠옷을 걸쳤다. 코끝을 산뜻하게 자극하는 시트러스 특유의 향 위로, 편안히 펼쳐진 숲 향. 평온함을 되찾고 싶거나 깊이 숙면이 필요한 밤이면 언제나 찾게되는 제라늄은 에이솝을 가장 처음 접하게 된 향이며, 여전히 에이솝에서 가장 사랑하는 제품 라인이다.



내가 뷰티 브랜드를 시작한 이유는
철학자가 되기엔 인내심이 부족하고,
 건축가가 되기엔 재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 Dennis Paphitis


호주의 작은 미용실을 운영했던 에이솝의 창립자 데니스 파피티스는 마케팅을 담당하는 수전 샌터스의 제안으로 처음으로 헤어 제품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방부제를 덜 쓰고 유기농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윤리적 기준을 오랜 시간 고집했던 덕분에 에이솝은 자연주의 이미지가 강하다. 정작 파피티스는 에이솝이 오가닉 제품이 아니라고 한다. '잘 선별한 인공 성분과 특별한 식물 성분을 조합해 만든 효과적 제품'이 그의 설명하는 에이솝이다.


제품 하나를 개발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3~4년. 어떤 제품은 무려 10년이 걸렸다고도 한다. 계절이 지나기도 전에 미리 준비해야하는 시즌 기획 형식이 익숙한 내게 이러한 에이솝의 속도는 꿈만 같은 일이다. '시즌이 바뀔 때마다 리뉴얼한 제품을 내놓아야 할 이유도 없는' 제품을 만든 그가 철학자가 되기에 인내심이 부족했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겸손의 농담이 아닐까. 세대를 거쳐 지속 가능한 브랜드의 제품을 만들어 가는 것이 소망인 내게는 더욱 그렇게 다가온다. 자기 인식과 절제. 균형. 에이솝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자연주의 뷰티 브랜드 속에서도 견고한 이미지를 잃지 않는 이유이다.  (* 파피티스 인터뷰 내용은 매거진 B 16호 에이솝편을 참고하였습니다.)



Do : 절제, 최소한의 브랜딩, 진정성과 우아함
Don't : 타협(시류의 영합), 보여주기식 혁신, 자신의 천재성을 맹신하는 것

 

브랜드 네이밍 Aesop's Fables


에이솝 이름은 <이솝 우화>의 작가, 이솝의 이름이 맞았다. 단순한 구조 속에서 풍부한 은유가 담긴 <이솝 우화>를 좋아해 작가 이름을 가져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문학적 맥락에서 영감을 얻고 해석하는 브랜드들을 깊이 사랑하며 지향한다. 에이솝을 좋아하며, 다른 브랜드로 대체될 수 없는 이유이다. 에이솝은 브랜드 네이밍에 담긴 문학적 감성을 다양한 콘텐츠로 확산시킨다. 제품 외에도 일상적으로 브랜드 경험이 가능한 콘텐츠가 매력적인 브랜드다. 특히 가장 재미있었던 프로모션은 2012년 창립 25주년 기념 행사로 선보인 북 리스트다. 25권의 책과 각국의 25곳의 서점을 선정해 발표한 것이다. 창립 기념 프로모션이라고 하기에는 정말로 최소한의 브랜딩 작업의 결과물이며 담백하고도 절제되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이솝의 추천도서를 읽는 북클럽이 생기기도 했다는데,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무의식적 연대'가 아닐까. 크.



ⓒ Lushgazine   |   https://bit.ly/3dzvqr7


25 Years of Reading at Aesop 소개글

Literature has always inspired and informed us. Over morning coffee and around our lunch tables, the enjoyment and sharing of great writing is a source if our collective intellectual nourishment(자양분). We've had the privilege of hosting readings by David Malouf and Joyce scholar Frances Devlin-Glass. We've also watched the development of a handful of Melbourne writers who once divided their labours between the written word and Aesop's first stores. This list contains the works that have, for us, most meaningfully marked the last quarter-century. Since we also care very much for a public culture of reading and writing, we've added twenty-five of our favourite bookshops.


브랜드 리뉴얼 전략을 수립하고 시즌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브랜드만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말끔히 정리하고 담백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우리가 꿈꿔왔던 브랜드들이 결코 누군가를 흉내내는 법이 없었던 것처럼. 에이솝의 기념 행사와 공간이 앞으로도 주욱 기대되는 것처럼. 브랜드만의 에센셜한 요소를 찾아 과장되지 않고 간결하게 구성하는 일은 이제 업이자, 가장 사랑하는 행위가 되어버린 듯 하다.



브랜드 정서 The Ledger


2019년 10월호 '고요를 지지하며'


더 렛저는 에이솝 홈페이지를 주기적으로 방문하게 되는 이유다. 렛저는 '장부'의 뜻으로 해석되는데 에이솝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하나의 주제로 그와 관련된 음악, 영화, 독서,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아티클을 소개해준다. 예를 들어 2019년 10월호에는 '고요를 지지하며'라는 주제로 레스토랑, 카페 등의 소음 데시벨을 측정해주는 '사운드프린트'라는 앱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조용한 장소를 찾는 이들에게 조용한 레스토랑 리스트를 제공해주거나 혹은 공간을 선택하게 되는 기준을 마련해주는 서비스를 소개하며, 브랜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해주는 것이다.


더 렛저는 매거진 혹은 뉴스레터라는 형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 콘텐츠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리한 소비자들은 더이상 제품 편익 중심의 광고 콘텐츠를 보며 구매를 결정하지 않는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 제품을 인지하게 되는 미디어 커머스가 새로운 소비의 유형이 되는 것처럼 브랜드만의 정서를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로 공유하는 태도가 오히려 신선한 브랜드 경험이 될 수 있다. 제품뿐만 아니라 Aesop The Book과 같은 브랜드 아카이빙 북을 구매하게 되는 이유처럼 지속해서 브랜드의 세계관을 촘촘하게 쌓아가는 것이 Aesop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를 만들어준다.



브랜드 공간 Taxonomy of Design



이솝의 존재감보다는 지역과의 조화가 중요하다.
- Denise Neri (이솝 리테일 건축 매니저)



에이솝의 매장은 매 도시마다 유명한 건축가나 디자이너와의 협업 작업을 통해 지역의 색감을 구현하는 일에 집중한다. 때문에 내겐 제품을 만나기도 전에 공간이라는 이미지에 명확한 값을 내어주었던 신기한 브랜드였다.특유의 감도로 차오른 공간 '속' 제품이 떠오른다. 에이솝 매장 중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 작업은 <콜 미 바이 유어네임>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작업한 로마 매장이다. 넓지 않은 공간에 스며든 햇볕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표현한 사랑의 장면들과 닮아 있다. 주로 낮은 조도의 이솝 매장을 경험해서일까. 이솝 매장 중에서 유난히 밝은 공간으로 느껴진다.



왼편 :  I am Love, 2009   /   중앙, 오른편 : Call me by your name , 2017
Aesop San Lorenzo in Lucina



에이솝의 로마 매장은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인 산 로렌초 교회(the church of San Lorenzo in Lucina, the fifth-century)에서 받은 지역적 영감을 표현하고자 한 듯하다. 기독교 박해가 가해졌던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신자들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예배 공간을 도무스 에클레시애(domus ecclesiae, 가정교회)라고 하는데, 산 로렌초 교회가 바로 그런 공간이었다고 한다. (갑분 역사 공부) 이 공간에 대한 경의, 'in subtle homage to the interior of the church of San Lorenzo in Lucina'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실제로 매장과 산 로렌초 교회 바닥의 블럭 형태가 동일하고 매장에서는 색감과 그 배치를 다르게 구성한 듯 하다. (*그 외 초가지붕 같은 매장 천장 등에 매장에 대한 설명은 이 링크에서 읽어볼 수 있다.)



왼편, 중앙 :  Aesop San Lorenzo in Lucina   /   오른편 : the church of San Lorenzo in Lucina



#이솝 #에이솝 #브랜드 #브랜딩

#aesop #branding  #life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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