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기획자의 삶 <waitwalkwork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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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 <waitwalkwork project>
프리랜서 기획자의 삶
지난 3월부터 포트폴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디자이너가 아닌 이상 포트폴리오 요청은 필수가 아닌 편이다. 하지만 포트폴리오 작업만큼 내가 해왔던 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형태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을 한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아무래도 진행 프로젝트에 맞게 내용이 추가되거나 변경되는 작업이 계속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수정과 보완 작업에 몰두했다.
여러 번에 포트폴리오 작업을 거치며, 때마다 든 생각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아주 주관적일 거다. (ㅎ)
1. 이 친구(나)는 현상을 리뷰하는 일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심지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작업 자체를 리뷰하고 있지 않은가..)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그와 관련된 배경, 현황, 예측 가능한 내용들을 정리해두는 습관이 있다. 학교를 다닐 때 글을 연재하거나 연수원에서 조교로 일하며 누적된 습관들은 기획자가 되어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포트폴리오 작업은 내 지난 일들을 훑어보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고르고 골라, 읽는 이가 그 프로세스를 짐작해볼 수 있는 자료가 되길 원했다. 그러다 보니 입사를 한 순간부터 퇴사하는 그 날까지를 살펴보는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2년 정도밖에 다니지 않은 전 직장의 할당량이 상당했다. 어느 순간 내가 이 리뷰 작업을 엄청 피곤해하면서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포트폴리오 작업을 마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확신이 들었다. 함축된 글을 써 내려가는 자기소개서보다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성과를 내었고, 이런 점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완을 해보았어.'의 구조를 짜는 일, 적절한 시각화 작업과 글을 섞는 일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구직을 위한 서류를 만든다기보다는 정말로 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하나의 책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2. 한 업무에 집중을 한 편인데도 정말 다양한 일을 해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이전 직장에서 주로 담당했던 일은 시즌 전략과 상품을 기획하는 일이었다. 부서 이동과 조직 개편이 잦은 회사였지만 내 경우 입사 전과 후의 업무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상품 기획이라는 업무를 중심으로 정말 다양한 가지의 일들을 담당했다. 지금 와서 보면 입사 후 (박)실장님과의 첫 면담에서 해주셨던 말, 그 말 그대로 성장했구나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상품 기획자가 아니라 브랜드 매니저로서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시에는 그 둘의 온도 차이를 크게 실감하지 못했는데 다양한 선배들과 동료를 만나면서 브랜드를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의 폭이 넓어질 수 있었다. (나의 브랜딩 선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브랜드 리뉴얼 전략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누적할 수 있었고 기획자로서 사고의 큰 전환기를 맞을 수 있었던 시절이다. 상품 기획자를 넘어 브랜드 매니저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이전 직장에서 가장 고생스러웠지만 그만큼 만족이 큰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포트폴리오에 상품 기획자로서의 성과만을 정리한다는 것이 나의 일부분만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이 구조를 어떻게 스무스하게 보여줄 것인가가 내 포트폴리오 작업 중 가장 깊이 있는 고민의 시간을 보낸 부분이었다.
3.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사랑하는지 새삼 또 깨닫게 되었다.
사용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데이터를 살펴보고, 구상하고 고민하여, 구조를 그려내고, 실제의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일. 이 모든 과정들을 사랑하고 있는 내 자신을 새삼 또 발견하게 된다. 내가 일하는 방식인 동시에 내가 지향하는 삶이다. 특히 그 결과물들이 내가 좋아하는 톤 앤 매너를 갖췄을 때, 그것이 사용자와 깊이 맞닿아 있음을 느꼈을 때 찾아오는 성취감. 이 일을 사랑하고 계속해 나갈 수 밖에 없는 착실한 이유를 만들어준다. 감사하게도 일했던 회사에서 그런 순간들을 자주 맞이할 수 있었다. 포트폴리오 작업은 그런 순간들을 다시 한번 정갈하게 다듬어보고 어루어 만지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줄다리기를 하기도 했다.
4. 양을 늘리는 일보다 줄이는 일이 훠-얼-씬 어렵다. 좋아했던 일에는 아무래도 넣고 싶은 자료들이 많아진다.
초반 포트폴리오 작업을 했을 때는 과정들을 돌아보며 프로세스와 실제 성과를 정리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내가 했던 일 거의 전부를 아카이빙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 곳에서 핵심 성과의 기준을 잡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았다. 결국 함께 일했던 동료 기획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초안을 보내 주었더니 한참 후에 전화가 왔다.
"다 읽고 바로 전화하는 거야. 아니 이전 회사 IR자료 새로 만들어주는거야?"
"초안이야.. 초안이라고.." (머쓱)
자료를 만들다 보면 '그 일'의 전기를 구성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커진다. 좋아하는 일의 역사라는 건 특히 더 그럴 수 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걸 '장악력이 있다.', '몰입도가 높다.'라고 좋은 평가를 해주기도 했지만, 때때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아 또 너무 깊이 빠져 들어가서는 혼자 놀이를 했구나.' 싶어진다. 모든 순간이 그렇지는 않지만 일에 효능감이 우선일 때는 중간에 잠시 빠져나와야만 한다. 그럴 땐 동료들의 조언이 필요하다.
동료 기획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기획자로서 내 색채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추려야만 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팽팽한 줄다리기 싸움이 시작된다.
'아 이런 건 보여줘도 괜찮지 않을까? 아 이거 안 보여주기에는 좀 아쉬운데.'
콘텐츠를 만든다는 건, 아니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건 이 싸움의 연속인 것 같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포기 말고 일단 킵해두는 성격은 그게 쉽지 않다. 오늘도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며 내가 가장 보여주고 싶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장 먼저 정리해봤다. 포트폴리오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늘어나는 장수에 다시 메모장으로 돌아가 아까 썼던 문장을 다시 읽고 작업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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