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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Sep 18. 2023

조너선에게 당하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읽은 책 : 걸리버 여행기

저자 : 조너선 스위프트

출판사 : 현대지성 (2019)

작성 일시 : 2023년 9월 15일 새벽 2시 50분


* 스포일러 주의 / 분노주의 *




아 당했다. 나는 똥에 맞았다. 조너선은 똥을 던졌고, 나는 그것에 확 맞아븐 것이었다.


조너선의 똥이라는 건 딴 게 아니고 풍자다. 1, 2부 때 조너선은 아주 가벼운 풍자로 사람을 피식피식 웃게 만든다. 그러다 3부가 되니 뭔가 뉘앙스가 바뀐다. 내가 아는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좀 뭔가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래도 3부까지는 명랑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4부가 되면서 야후가 똥을 던지기 시작하자 찝찝함과 짜증이 빠른 속도로 올라오기 시작했던 거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영국의 역사적 사건과 사람들을 향해 풍자의 칼을 댄다면, 4부에 와서는 인간 그 자체가 풍자의 대상이다. 야후는 이성적 기능이 없는 짐승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존재를 통해 모든 인간을 다 풍자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걸리버는 가족들을 야후라고 지칭하면서 냄새를 못 견뎌 코를 막는다(360). 나는 그때서야 걸리버 또한 풍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도 야후면서 야후의 냄새를 못 견딘다니, 우습지 않은가?


그때 문득, 저자도 야후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에어컨 바람 아래서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도 미친다. 그렇게 나도 똥을 맞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저자의 의도였다(406)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의 감정은 순식간에 분노로 타올랐다. 순도 높은 분노의 덩어리가 내면의 한 지점에 응집되는 신비로운 경험. 어쩌면 내가 세계를 파괴할 수도 있겠다는 신선한 감각이 일순간에 샘솟는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과장이다.) 내가 야후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애써 감추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화가 나는 거겠지. 그러니까 나는 천천히 까발려지기를 원했나 보다, 이렇게 한 번에 확 드러나고 싶지 않았던 거다.


여튼 그래서 나는 화가 많이 났으니, 이 책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내리지 않겠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미성숙함으로 저자의 저작을 깎아내림으로써 얄팍한 복수를 단행하려 한다.


이 책은 걸리버가 항해할 때마다 매번 위험을 당하고, 그 결과 매번 특별한 곳을 방문하며, 매번 탈출해서, 매번 어떻게 집으로 잘 돌아가는데, 또 매번 여행을 떠나는 그런 이야기다. 그는 소인국, 대인국, 하늘을 나는 섬, 마법사들의 섬, 일본, 말의 나라 등을 여행한다. 각 나라나 여행에 대한 묘사는 상상해 보면 신이 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국 저자는 인간을 풍자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기 때문에 묘사하는 부분은 빌드업에 불과하다고 본다.


풍자는 잘하는 것 같다. 만약 내가 그 시대 때 이 책을 읽었다면 기립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른바 ‘망한 풍자’가 많다고 본다. 왜 그렇지 않은가? 개그를 설명해야 하면 망한 개그이듯이, 풍자를 이해하기 위해 누군가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면 - 참고로 역자의 해설은 좋았다. - 그 풍자는 나에겐 1차적인 기능을 잃은 것이다. 게다가 내가 영국의 역사적 상황에 관심이 별로 없다면, 그것을 풍자하더라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게 되지 뭔가 적극적인 반응은 하기 힘든 것이 아닌가? 풍자를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유튜브에 능력자들이 많으니 그들의 영상을 보는 게 더 와닿지 않을까 생각된다.


게다가 우리 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면, 왕정이라든지, 신분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는 부분을 말할 수 있다. 또 여성주의자 분들 중에 이 텍스트를 읽으시면 발끈하실 분들이 꼭 있을 거라 본다. 여성 신체 묘사도 많이 등장하기도 하니까.


가끔씩 설정 오류도 보인다. 예를 하나만 들자. 거인국이 있다는 것은 판타지니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거인들은 바다에 풍랑이 거칠게 일고, 그들의 배는 작기 때문에 난바다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135) 거인들이 못 견딜 풍랑이라면 파고가 2-3m 수준이 아니라 몇십 미터는 되지 않을까? 걸리버 같은 인간은 그걸 어떻게 견디는가? 유독 그곳 풍랑만 지독한가? 소인국의 풍랑은 상대적으로 잔잔한가? 뭔가 자연법칙이 지역별로 달라지는가? 뭐 이런 것까지 생각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아니 근데 걸리버 얘는 왜 자꾸 바다로 나가는 걸까? 가족은 내팽개치고 몇 년이고 항해를 떠난다. 어떤 때는 가족이고 뭐고 그냥 그 나라에 머물고 싶다는 말까지 한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과몰입해가지고 매번 사람들 만날 때마다 자기가 사람 아닌 줄 안다. 그러니까 매번 걸리버가 고난에 처할 때, 뭔가 당해도 싸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 것이다.


이만하면 복수는 성공했다고 생각되니 글을 마치…. 려는데… 내 양심에 “그래도 깨달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 않나?”하는 질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에 한 가지 정도 좋았던 부분을 말해보자. 158페이지에 거인국 황제와 걸리버의 대화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거인국 황제는 엄청 많은 질문을 퍼붓는다. 그 내용은 당연히 풍자적인 내용이다. 


질문은 훌륭한 풍자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외계인이 지구에 내려와서 그렇게 질문한다고 생각해 보는 거다. “너희 우두머리는 하는 일이 뭐냐?” 이때 외계인의 순수한 의도와는 다르게 우리는 풍자적인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거다. (흐흐) 풍자의 여러 가지 방식을 알게 되는 것이 이 책의 묘미라면 묘미라고 하겠다.


자 어쨌든, 글을 마치며 나는 이 책을 그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않겠다. 차라리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기를 강추하겠다. 죄와 벌도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지만, 이 책처럼 똥을 던지지는 않으니까.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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