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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Sep 18. 2023

죽음을 응시하기로 하자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읽은 책 : 이반 일리치의 죽음

저자 : 톨스토이

출판사 : 현대지성 (2023)

작성 일시 : 2023년 9월 16일




죽음을 응시해보자.


이 존재는 낯설고 강력하다. 인간은 그 앞에 전적으로 무력하다. 죽음을 처음 경험한 날 부터 인간은 물어왔을 것이다.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고작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 정도이다.

우리는 너무 무서워서, 고통스러워서 죽음을 회피하기 바쁘다. ‘사흘 밤낮 동안 끔찍한 고통과 죽음. 그것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어. 바로 지금, 언제라도.’ (18) 장례식장에서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속여가며 삶과 죽음을 기만(88)하는 태도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가끔은 죽음에 대해 질문하기도 한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경구를 기억해 내기도 한다. 그런데 단지 그것뿐. 삶의 과업들이 우리를 압박해 오면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죽음을 외면한다. 혹은 죽음에 대한 언어들 뒤에 숨어버리곤 한다.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선은 죽음을 응시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바야흐로 “이반 일리치의 삶”이 아닌 “죽음”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된다. 그는 잘 살았는가? 그런 질문은 무의미하다. 그의 삶에 대해 여러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 “공적으로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때로는 인생을 즐기기도 했다. 가족들을 깊이 사랑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평가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나 의미있는 것이지, 이미 죽음의 왕국에 들어간 그의 입장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살아돌아와서 삶을 이어갈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죽음 앞에서 인생은 혼자다. 내 죽음은 내가 겪는다. 나는 죽으면 끝이다. 죽음은 삶을 빨아들이곤 가버린다. 단절시키고,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자들에게는 잔인하게도 뭔가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무엇일까? 그 본질은 무엇일까? 그 원인은? 그 결과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몇천년을 고민해도 속시원한 정답은 없다. 아마 죽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겠지 싶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죽음에 관심을 끄고 살까?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을거라는 절망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죽음을 두 눈 부릅뜨고 응시해야 한다.


죽음을 응시해보자. 그 원인과 결과 말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말고, 결국 죽음이 들이닥칠테니 삶을 충실히 살고 겸손하자라는 식의 결론에 성급하게 도달하지 말고. 우선 지긋이 죽음을 응시하자. 그것이 바로 삶의 기만을 극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죽음을 피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편하고, 즐겁고, 고상하게(37) 사는 삶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삶이 분명 삶에 더욱 충실한 것이라 믿는다.

허둥지둥 하는 사이에 죽음은 닥쳐올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 까지 죽음을 응시하는 것. 그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지라도 그렇게 하자. 그렇게 응시하다보면 낯선게 좀 덜할지도 모른다. 막상 당해보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죽음을 끝까지 응시하자.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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