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작 "어제보다 더 나답게 일하고 싶다"를 지금 다시 쓴다면
"어제보다 더 나답게 일하고 싶다"라는 책으로 내가 개인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무조건 열심히만 하지 말아라.
2. 많이 놀면서 나다움을 먼저 찾아라. (놀면서 = '나는 어떤 목적과 방식에 끌리는지 탐색하면서')
3. '나답게 X 열심히'가 지름길이다.
한국은 너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다.
무조건 달린다. 업무도 달리고, 술자리도 달린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이겨야 한다 > 강해져야 한다 > 한눈팔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라는 논리가 보편화되어 있다. 지금의 한국을 만든 힘이 되기도 했지만, 두 가지 부작용이 있었다.
1. 당장의 성과와 승리에 최적화된 근시안적인 시야 (빨리빨리)
2. 열심히, 오래, 많이 하기만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란 믿음 (달려달려)
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초중고를 다니다 보니 한국 고등학교에서 한 학기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 삼당사락(三當四落)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세 시간 자면 입시성공, 네 시간 자면 입시탈락이라는 말이다 (원래 버전은 사당오락이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다 보니, 기업에서도 그동안 자연스레 열심히 하는 사람, 야근하는 사람, 빨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 제안서나 보고서를 쓸 때도 질보다는 양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사람을 높이 샀던 것 같다.
이렇게 사람을 갈아 넣어서 결과가 어느 정도 나면 이 방법이 역시 옳았다고 착각한다. 기업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열심히’를 최상위 가치로 추구한 결과, 그 부작용은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빠르게 감소하는 인구로 현실화되었다.
우리보다 더 일찍 퇴근하고, 휴가도 오래 쓰고, ‘덜 열심히 사는’ 국가들도 잘 먹고살고, 덜 불행하게 사는데 말이다.
난 열심히보다 중요한 것은 fit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런 fit을 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공은 운이 따라 가능하다. Being at the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 - 적시적소에, 시대와 시장의 흐름이 밀려올 때 그 자리에 있어야 파도를 탈 수 있다.
이런 운을 만드는 것이 안목이자 능력이고, 이는 다양한 탐색과 시도를 하면서 우리가 어떤 파도를 가장 잘 탈 수 있는 사람/조직인지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PMF(Product to Market Fit)을 찾을 때에도 마켓만 바라봐서는 궁합을 찾을 수 없다. 모든 궁합이 그렇듯, 상대에 대한 이해만큼 나/우리/제품에 대한 이해도 깊어야 한다. 맘에 든다고 무조건 고백부터 하는 짝사랑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목이 긴 기린은 아프리카 대륙의 사막화로 키 큰 나무만 남았을 때, 상대적으로 목이 짧은 기린에 비해 이파리를 더 많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 연구에 의하면 긴 목이 머리를 부딪치거나 휘둘러 싸울 때도 더 유리했다고 함).
목이 짧은 기린은 3시간만 자면서 열심히 목 운동을 하면 목을 늘릴 수 있을까? 열심히 뛰어오르면 언젠가는 이파리를 먹을 수 있을까? 목이 긴 기린들과 전쟁을 치르고 전멸시켰으면 지금 남아 있는 기린들은 목이 짧은 기린이었을까?
목이 짧은 기린도 키 작은 나무가 많은 초원을 향해 끊임없이 이동했다면 생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경쟁자를 제치거나 제거하는 것에만 매몰되어 정작 자신의 성과, 효율, 생존확률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차별성과 자산은 무엇인지, 개척하거나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블루오션과 새로운 pie는 어디에 있는지 정의하는 것은 소홀히 하는 조직들이 있다 (오로지 가격경쟁만 하던 온라인 커머스 회사들, 지금은 다 어디 갔나?).
한정된 파이를 갖고 열심히 싸우는 제로섬 게임, 혹은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열심히 밀어붙이는 치킨 게임만 하는 것이다.
진화에서의 적자는 마침 그 환경에 가장 유용한 특징을 갖고 태어난 운이 좋은 개체였다. 비즈니스에서의 적자는 우리가 어떤 고객과 마켓에 강점을 갖고 있는 집단인지 능동적으로 탐색하고 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지 않을까?
2024년 3월 23일
박앤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