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있고 육아가 시작돼서 내가 너무 다행이다
2020년 6월 19일 작성완료
요 며칠 사이 MBTI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20년 6월). 나도 요즘 아주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는 <놀면 뭐하니> 프로그램 때문인 듯하다. 나는 INFJ형인데, 뭐 다른 건 몰라도 내향적인 성향이 강한 것만큼은 확실하다. 작년 10월경 책 <콰이어트 Quiet>를 숨도 안 쉬고 읽어 내려가면서 나의 ‘내향성’에 대해 보다 더 잘 알게 됐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었다(*이 책에 대한 리뷰도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올해 2월 사랑스러운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아이를 품고 있는 동안 그리고 태어나 돌보는 동안 나 자신에 대해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 책 읽는 것이 거의 유일한 취미인 나는 아이를 돌보는 틈틈이 여러 책을 읽고 있는데 육아서도 여러 권 포함되어 있다.
읽다 보니 어떤 대목들에서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혹은 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 꽤 눈에 띄었다(물론 기꺼이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았지만). 엄마는 아이의 잘 양육하기 위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내용들. 뭐 하고 안 하고야 결국 내 선택의 문제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걸까?'라며 조금씩 피어오르는 불안한 마음. 그 기저에는 ‘내향성’이라는 나의 성향이 자리해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고 좋다는 걸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내 성향을 기반으로 나의 방식대로 해도 될 문제인지 판단이 쉽지 않았다. 나도 육아는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거라서.
그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부서질듯한 육신을 달래 가며 하루를 보내던 4월 초쯤 <내향 육아>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는데, ‘육아서’에 붙은 ‘내향’이라니, 뭐랄까 숨통이 트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이 책 당장 읽어봐야겠다, 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펼쳐 든 책에는 ‘아니 이거 내가 쓴 건가?’ 싶을 정도로 비슷한 문제의식과 무척이나 공감되는 상황, 감정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속에 나는 없었다.
육아서 속 엄마들은 모두 에너지 넘치고 빠릿빠릿해 보였다. 그네들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소문난 육아계 인플루언서들 역시 대개 활동가 타입이라는 것을.
그제야 생각이 났다.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엄마도 다르구나.
모두가 타고난 영역과 살아온 세월, 체력과 환경 등이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아이의 다름은 인정받지만, 엄마의 다름은 쉽게 간과된다. 아이의 기질은 세심하게 분류되지만, 엄마의 기질은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 육아서 맘들처럼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는 스타일도 아니요, 보노보노처럼 느긋하고 무던하지도 못한 사람은 도대체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엄마들은 어쩌면 저렇게 강하고, 당차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걸까. 아이를 키움과 동시에 능력과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는 게 숨 쉬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다들 육아의 지루함과 외로움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아이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외출을 하라고.
쇼핑과 여행을 다니며 즐기라고. 그렇게 밖으로 등을 떠밀며 용기를 한 사발씩 부어줬다. 그렇지 않으면 무기력증이나 육아 우울증에 빠질 거란 조언도 잊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혼자서 침잠하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 정체된 공간과 자극 없는 일상은 내게 장애물이 아니었다. (..) 문제는, 끊임없이 감지되고 감응해야 하는 너무 많은 ‘외부’였다.
나는 이제 안다. 그들과 내가 달랐음을.
나에겐 주류의 그것이 정답이 아니었음을.
저자가 맞닥뜨리는 상황들, 거기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은 정말로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내향적인 엄마의 육아 방식, 대세에서 다소 벗어난 육아 방식에 대한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느낌이라는 게 정확할 것 같다. 특히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엄마가 다르다’라는 문장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엄마라고 꼭 개방적이고 털털해야만 하는 걸까.
어떤 엄마에게는 무리 지어서 하는 육아가 괴로울 수 있고 오픈도어가 감옥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폐쇄적인 건 아니다.
소수의 친밀한 이웃과 나누는 정담은 즐겁다.
아이 손님이건 내 손님이건 기대되는 손님을 맞는 일은 늘 설레는 일이다. 다만 엄마가 되었다고 별안간 대문을 열어젖히는 '위대한 개츠비’가 되지는 않는 것뿐이다. '함께’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활기를 얻기 위해 혼자이고픈’ 욕구가 큰 것일 뿐이다.
이렇듯 시행착오를 통해 한 발 먼저 나가 있는 (비슷한) 사람이 전해 주는, 치열했을 고민을 통해 얻은 지혜가 담겨 있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게 귀했다. 마치 아이 키우면서 이런저런 상황들로 이런저런 마음이 들어 힘들거든, 요런 방식과 마음가짐으로 지내볼 수도 있어요~해주는 느낌이랄까. 그 위로에는 내 안에 정당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단단한 논리도 뒷받침되어 있어 더욱 든든했다.
더는 아무 때고, 아무것에나 열심을 내지는 않으려 한다.
대신 지금 내 안에 고이는 시간의 선한 힘을 믿으며, 수굿한 마음으로
나의 소임을 해나갈 작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무언가를
정말 열심히 해야 할 때가 오면
그때 힘을 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엄마인 나 자신과 그 삶의 아름다움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다.
결국 자신만의 깊이와 속도,
빛과 어둠을 알아가는 것이 최고의 자기 계발(개발) 아닐까? 모든 노력이 그렇듯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려는 노력 또한 가치 있다. 그렇게 믿는다.
이런 단단한 마음만큼이나 따스한 글솜씨도 글 자체를 읽는 즐거움을 더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가까이 두고 마음이 힘들 때 다시 펼쳐 들고 싶은 책이다. ‘육아’라는 프로젝트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엉덩이가 무거운 내향적 특성 덕분이라는 저자의 목소리는, 지난겨울 육아라는 프로젝트에 몰입하기로 선택한 결정을, ‘겪어 본’ 누군가 응원해 주는 것 같아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 이면에 한편으로 약간의 불안감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인데, '엄마로서의 나의 현재,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에 오롯이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기에 적으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그래서 ‘지금 내 안에 고이는 시간의 선한 힘을 믿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소임을 해나갈 작정'이라는 문장이 얼마나 반갑고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훗날 다른 무언가를 정말 열심히 해야 할 때가 또 올 수도 있고, 그때는 그 일에 필요한 힘을 그때 가서 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지금은 오직 한 번뿐인 지금, 엄마가 된 이 순간, 그리고 아이의 모든 첫 순간들을 마음 편히 함께하며 나만의 속도로 깊이를 더해가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
‘애나 키우느라고’ 내가 다른 것을 하지 못하고 지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아이가 함께 자라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내 아이’가 함께하는 육아는 세상에 처음 있는 일이니까. 다른 길, 다른 것을 바라보며 지금의 것에 집중하지 못하기보다, 현재의 가치를 알고 온전히 집중하는 것, 그런 태도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무엇보다 이런저런 소리에 휘둘리기보다 오롯이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가지고 은은하게 꾸준히 나아가고 싶고.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아기가 하루하루 뒤집기 연습을 하고, 배밀이 연습을 하듯 나도 매일매일 '나다운' 엄마 되기 연습이 필요하다. 오늘도 좀 더 나은 나를 꿈꾸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