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집밥 같은 육아서
작년 초가을쯤이었나,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땐 이 정도로 와닿진 않았다. 양육을 흑백논리가 아닌 '스펙트럼'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개념이 꽤나 공감 간다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 3월에 다시 읽으면서는 보다 많은 내용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도 그렇지만 서술하는 '태도' 자체도 인상적이었다. 초보 부모(쓰고 보니 모든 부모는 초보 아닌가ㅎ)가 갖는 염려를 자극한다기보다는 심심한 집밥처럼, 별스럽지 않은 말투로 담백하게 정말 당연하게 중요한 것들만 짚어주는 느낌.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 그 당연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주 잊히고 있으며 실천은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 책은 쉽고 빠른 '정답'으로 불안감을 해소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큰 틀을 짚어줌으로써 그 불안감을 점차 줄여나갈 수 있다고, 부모 자신이 그걸 충분히 핸들링할 수 있다고 말하는 쪽에 가깝다. 해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줌으로써 더 많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그러니까 부모가 자신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쪽을 택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데, 저자의 말처럼 어찌 보면 교과서 중심의 수업 같기도 하다(부제가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는 아이를 이해하기 위한 발달이론 수업'이다). 담고 있는 방향 자체가 시원시원하고 사이다 같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난 읽고 나니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부모의 성향, 아이의 기질과 기분, 또 주변 환경과 그때그때의 상황 등 각각의 조합에 따른 경우의 수는 열 가지도 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맞닥뜨리는 모든 경우에 대해 일일이 정답을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비슷한 상황을 찾아 답을 찾아 헤매는 그 심정(ㅠㅠ), 이걸 겪어 본 건 나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작년에만 해도 내가 지금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이 책의 내용들이 성에 차게 맘에 들어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올해 들어서 보다 안정된 마음으로 책을 읽다 보니 책의 진가가 눈에 들어왔다. 소아정신과 교수인 저자는 '전문가로서' 많은 부모와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한다. 과정을 볼 수 있다면(이 상황이 왜 생겼는지, 이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이미 부모는 전문가라고.
"언제나 통하는 정해진 답은 없다.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 즉 부모다. 단, 양육 원칙을 안다면". 부모가 그 과정을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고 능동적으로 내 아이에게 맞는 답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저자는 기본적인 양육 원칙, 여러 이론들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이번에 읽을 땐 아래의 내용이 마음에 새겨졌다.
아이가 잘 자란다는 것을 정의할 때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은
아이가 가진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이마다 각기 다른 재능과 특색을 갖고 있기에 일률적으로 성적이 좋으면, 외모가 훤칠하면, 아프지 않고 건강하면, ‘아이가 잘 자란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아이 자신도 그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아이의 자존감이 높기를 바란다면,
아이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있는 그대로의 아이 모습을 존중해 주세요.
(...) 좋은 양육이란 아이를 잘 관찰해
아이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이를 최대한 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어떤 성향이든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하길 기다려 주세요. 부모가 아이에게 충분한 안정감과 위안을 줄 때 독립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 천천히 탐색할 기회를 주면
아이는 조금씩 용기를 냅니다.
나는 이렇게 아이를 키우고 싶어! 가 아닌
'우리 아이는 이런 성향의 아이니까 이렇게 키워야겠다'로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세요. 그래야 아이도, 부모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내 아이는 다른 아이와 다릅니다.
부모 역시 다른 부모와는 다르지요.
이런 특수성, 개별성이 있기에 양육에서 일률적인 방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정답이 없는 것이지요.
다만’ 상황과 시기에 맞게 반응해주세요’라는 원칙만 있습니다.
아마 이런 내용들 중심으로 밑줄이 쳐진 건, 내가 비슷한 시기에 겹쳐 읽은 다른 책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책 제목 클릭하면 해당 브런치 글 연결)의 영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두 책에서 말하고 있는 핵심 내용 중 일부가 공교롭게도 서로 통했기 때문이다.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스스로 개성화를 이루게 해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다.(..) 자식은 부모와 다르며 부모에게 어떤 의무도 지지 않은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 자식은 부모를 돌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 자식을 통제하거나, 자신이 못 이룬 삶을 자식이 대신 살게 하거나, 우리와 똑같은 가치체계를 자식에게 강요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자기도취에 불과하며 자식의 삶을 방해할 뿐이다. 개성화를 스스로 이루는 것만 해도 충분히 어려운데 왜 부모의 욕구까지 짊어져야 하는가?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제임스 홀리스, 김현철 옮김, 도서출판 길벗(2018), pp.138-139>
부모의 삶이 부모 자신의 공포로 가로막혔다면, 아이는 그 장벽을 넘어서는 데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부모의 발달 수준에 맞추려는 무의식적 욕구에 발이 묶여 더 나아가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부모가 스스로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면 무의식적으로 자식을 질투하지 않으며, 기대와 한계를 투사하지도 않는다. 부모가 개성화를 성취할수록 자식 또한 더 자유로워진다.
<같은 책, p.136>
<우리 아이 왜 그럴까>의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수차례 강조하는 메시지, 곧 "있는 그대로의 아이 모습", "아이의 성향과 자신만의 속도", "내 아이의 특수성&개별성"을 존중하는 태도는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에서 말하는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자식이 스스로 개성화를 이루게 해주는 것"이라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우리 아이 왜 그럴까>의 "부모 역시 다른 부모와 다르다"는 '부모'의 특수성과 개별성, 그리고 아이의 성향을 존중하며 양육해야 부모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는, "부모가 개성화를 성취할수록 자식 또한 더 자유로워진다"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여유까지를 논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적어도 조금 더 차분하고 침착한 육아를 해나가는 데 있어서 이 책은 오늘의 내게 분명한 도움을 준다. "괜찮은 부모는 아이와 함께 성장합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라는 문장이 충분한 격려가 된다. 앞으로도 수많은 시행착오가 예정되어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어쨌거나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분명 썩 괜찮은 부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