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글쎄 이게 이럴 일이냐 싶지만..
7월 중순, 약 3년 2개월 만에 서울을 ‘나 혼자’ 다녀왔다. 기차 타고, 백팩 메고, 1박 2일.
19년 5월 예술의전당에 갔던 걸 마지막으로 쭉 지금 머물고 있는 지역에서 지냈다. 물론 근교는 그동안 아주 많이 다녔다. 담양, 보성, 강진, 목포, 해남, 여수, 순천 등 근처에 좋은 곳들이 많다. 휴일에 아침부터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출발해도 갈 수 있는 멋진 곳이 많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계절마다 곳곳을 찾아 누린다.
나는 30년간 서울에서 살았다. 이후 5년 정도를 경기도에서 살다가 지금의 지역으로 내려왔다. 이후에도 서울은 업무 때문에 자주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임신, 출산, 육아가 이어지면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아이가 두 돌 반 정도가 된 지금까지 서울에 갈 일이 없게 되었다. 딱히 가고 싶은 마음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는 게 맞겠다.
임신 시기에는 초기에는 유산, 중기 이후에는 조산 가능성이 있어서(결국 조산..) 운신의 폭이 좁았고, 출산 이후에는 그야말로 가고 싶은 마음도, 여유도 없었고.
사실 출산 첫 해에 아이랑 첫 외출을 시작하고 나서는, 집 앞 공원만 가도 좋았다. 우리가 늘 다니던 곳에 이제 이 아이와 함께라는 것이, 이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기적 같았고, 그저 그것만으로 감사했다. 아이와 함께 다닐 수 있는 곳이 많아지면서 셋이 함께 같은 곳을 거닐고, 같은 음식을 맛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했다.
새로운 (작은)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니 늘 보던 곳, 다니던 곳들도 무척 새롭게 느껴졌다. 우리가 좋아하는 숲, 바다, 공원, 정원들을 두루두루 다니며 둘만 다닐 때는 보지 못하던 곳들도 발견하고, 카페, 마트, 백화점을 함께 다니며 아이와 함께하는 즐거움과 어려움(식은땀 동반)을 알아나가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물론 여전히 늘 가던 곳들을 함께 다니며, 또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찾아다니며 작은 추억들을 쌓아가는 것은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이다.
다만 그 시간 동안 혼자 다닌 시간은 거의 없고(길어야 2~3시간 정도, 동네 카페 정도에 머무는 시간), 남편과 단 둘이 외출한 적은 딱 두 번 있었다(친정 엄마 찬스). 물론 남편의 배려 덕분에 잠깐씩이라도 카페에 혼자 가는 것도 잠시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이젠 그 정도로는 해소될 수 없는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것 같다.
특히 여름이 되면서 아이와 함께 외출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가정보육 중이고, 시댁/친정은 모두 수도권, 우리는 지방에 산다), 아이가 낮잠을 잘 안 자기 시작하면서(이게 가장 큰 이유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이전보다 상당히 힘들어졌다. 가정보육을 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아이가 자야만 내가 잠시라도 온전히 '홀로'있을 수 있다. 브런치 다른 글에도 기록한 것처럼 커피를 내려 마시며 책을 읽는 30-40분의 그 시간이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이게 허락이 안 되니, 점점 감정조절이 어려워졌다. 사람이니까 화는 날 수 있고, 짜증도 날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게 쉽사리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정심을 되찾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30분 정도의 시간만 딱, 혼자, 조용히, 있어도 훨씬 괜찮아질 것 같은데, 아이는 그 짬을 허용하지 않으니 도저히 스스로 감정 회복을 할 에너지가 남지 않았다. 아이는 이제 29개월. 생각보다 많은 걸 기억하고 표현한다. 어느 날 화내는 내 모습을 따라하는 걸(물론 내가 전화받는 모습부터 아빠가 엄마한테 주로하는 말 등 요즘 다 카피한다ㅋ)보고 흠칫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서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도 몇 번 생각은 했지만 크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제법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생각났다. 남편이 요즘 하고 있는 전시 링크를 보내주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주니 더욱 가고 싶은 마음이 확고해졌다.
맞다, 나는 미술관을, 그림을 좋아한다. 스무 살 때부터(그게 벌써 20년 전..) 크고 작은 미술관을 많이 다녔다. 가게 된다면 예술의 전당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시회를 관람하고 모차르트에 앉아 음악분수를 보고 조금 거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예술의 전당을 가기도 했고, 커서는 여러 추억이 어우러져 더욱 좋아하는 곳이 되었다. 그곳에 가는 게 괴로운 시절도 잠시 있었으나 지금은 괜찮다.
무엇보다 서울에 사는 너무나 보고 싶은 친구들.. 몇 안 되는 내 소중한 친구들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만나 커피 한잔, 술 한잔하며 수다만 떨어도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남편이 1박 2일로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막상 좀 겁이 나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급히 예약하려다 보니 일요일에 내려오는 기차는 전부(!!) 매진이었다. 웃기지만 진심으로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호텔을 예약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막상 좀 두렵기도 하고,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나 혼자’ 어디를 다녀보는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기도 하고, 서울에 상경하려니 눈뜨고 코베이면 어쩌지 덜컥 겁이 났다. 나름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고, 체력을 많이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혼자 집중력을 잃지 않고 다닐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근 삼 년 웬만한 짐은 남편이 들고 다녔는데(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정말 고맙고맙), 어쨌거나 1/2일이니 아무리 짐을 간소화하더라도 내가 이고 지고 다녀야 하는데 그것도 자신이 없고, 특히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을 하니 더욱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날씨 어플을 체크하니 마침 기차 도착하는 시간에 비가 내릴 것 같은데, 집에는 장우산뿐이고, 짐은 하나라도 더 줄이고 싶고, 택시를 이용하자니 비용도 비용이지만 혼자 타는 것도 무섭고, 예술의 전당이 교통이 좋은 곳은 아니라 호텔까지 동선은 어떻게 짜는 것이 효율적 일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점심은 예당에서 먹는 것이 좋을지 용산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호텔 쪽으로 먼저 가서 짐을 풀고 그쪽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좋을지..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러니까 이게 겨우 1/2일 서울 여행을 가는 것인데 혼자 이렇게 진상을 떨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답답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는데, 서울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 S의 카톡이 왔다. 전화할 짬이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걸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고민들을 얘기했다. S는 듣다가 푸하하 웃으며 말했다 “야 너 어디 혼자 몇 박으로 외국 가냐 왜 진상이야~~~”. 아 정말 그 모든 디테일을 얘기하고 있자니, 내가 생각해도 참...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S는 나의 고민을 정리해줬다. 용산역에서 호텔을 들렀다가(짐을 두려는 목적) 예당으로 가기보다는, 예당으로 바로 가서 점심을 먹고 전시를 관람하고 호텔로 가는 것이 낫겠다는 것. 그리고 내가 체력도 약하고 오래간만에 서울 와서 즐기는 것이 몇 푼 아끼는 것보다는 택시를 타는 것이 낫겠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정해지고 나니, 나머지는 물 흐르듯 대략 정리가 됐다. 디테일은 상황에 맞게 하면 될 일이었다.
여기까지 정리되고 나니, 이제야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은 이미 반쯤 빠진 것 같았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니 그냥 애초에 서울 간다는 얘기 하지 말걸 그랬나, 가지 말아야 하나, 기차표를 취소해야 하나, 1박 2일이라니 일을 너무 키웠나 이런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와 나 진짜.. 진짜 이게 이럴 일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