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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15. 2022

30분 달리기, 1년 3개월 만에 완주!

완주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2021년 5월에 인생에서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난 웬만해서는 달리지 않는 사람이고 꼭 뛰어야만 한다면 아주 느리게 달리는 사람이다.


학창 시절 내내 100미터 달리기 기록은 23~24초였고 오래 달리기는 제대로 완주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물론 두어 번 완주를 한 적은 있는데, 반에서 당연히 꼴찌였고 그것도 다른 아이들이 모두 들어가고 한참을 뒤에서야 들어갔다. 특히 아주 어릴 때는 오래 달리기를 하면 숨이 너무 차고 얼굴이 시커메지면서 누가 봐도 쓰러질 것 같으니 선생님들이 먼저 그만 뛰고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스스로 마음먹고 '달려보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분명 처음 있는 일이니까. 그 결심과 처음 시작에 대해서는 브런치 다른 글에 언급되어 있다. <39세, 출산 후 첫 달리기 시작! >


<30분 달리기 도전>은 런데이(Runday) 어플에서 달리기 초보자에게 제공하고 있는 <처음 시작하는 플랜>이다. 작년 5월에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했고 가을 정도에 5월 3주 차까지 완료했었다. 나는 운동 텀(72시간 이상)이 벌어지면 다음 단계로 절대 넘어가지 않고 텀 정도에 따라 그 앞이나 그 앞앞, 많게는 2주 전 정도까지 계속 돌아가면서 진행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주차 진행 속도는 느렸다.


  워낙 체력이 없는 편이고, 특히 달리기에 관해서라면 늘 확신의 꼴찌였기 때문에 내 수준에 맞게 진도를 감각적으로 조정했다. 이건 사실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고, 내 수준에 필요한 속도를 스스로 아는 것이 어쩌면 결과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무리를 해서 부상을 입거나 중간에 나가떨어지는 것보다는 끝까지 오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쪽 발 뒤꿈치가 많이 불편해졌고(출산 이후에 양쪽 뒤꿈치가 늘 편하지는 않다), 잠시 쉬다 보니 겨울이 왔다. 나의 체력 수준으로 겨울 새벽에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해서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겨울과 봄에는 아이와 산책 및 걷기를 통해 최대한 많이 움직이려고 했다. 언제라도 다시 달릴 수 있도록 기본적인 체력은 유지해 놓자는 생각이었다. 달리기 좋은 계절이 왔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달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조급해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여지는 날을 기다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관련 글, 두 돌 임신 전 몸무게로 안착)  


 결국 올해 6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5주 1 회자 프로그램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 달리기 어플만 실행을 안 했을 뿐 그 이후에 꾸준히 체력을 유지했기 때문에(종종 내킬 땐 뛰기도 했고), 맨 처음으로 돌아가지는 않고 5월 1주 차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마지막 24회 차까지는 12회 차가 남은 셈이다.


   일주일에 세 번씩 달린다고 하면 한 달이면 완성할 수 있는 건데, 결과적으로 나는 꼭 두 배인 두 달이 걸렸다. 30분 달리기 프로그램을 빠르게 달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무리하지 않고 실제로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증진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기 때문에, 72시간 이상 운동 텀이 벌어지면 다음 회차로 넘어가지 않고 이전 회차부터 다시 시작했다.


  운동 텀은 내 의지만으로 일정 간격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날씨, 남편과 아이의 상황 등) 이는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아무튼 최종적으로 21회 차의 달리기를 하고 나서야 <30분 달리기 도전> 프로그램을 마침내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회차를 완료한 2022년 8월 15일 아침 달리기의 기분은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런데이, 30분 달리기를 가능하게 해준 고마운 기록들.

  사실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다. 런데이 어플은 달리는 동안 성우의 목소리로 계속 응원 및 격려를 해준다(달리기 자세, 운동화, 운동복 등에 대한 유용한 정보도 제공한다). 그런데 그중에 종종 그냥 흘려듣기에는 아까운 명언이 나온다. 조금 뻔할지 몰라도, 나름 고통스럽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듣게 돼서 그런지 더욱 마음에 콕콕 박힌다.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내용들이 있다.     


 완주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무리하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스쳐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마세요,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 자신의 페이스에 집중하세요.(..)
지금 달리는 속도가
걷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괜찮습니다.
 멈추지 말고 끝까지 달리세요   



흔히들 인생을 달리기나 마라톤에 비유하고는 하니까 위의 내용을 인생에 치환하여 생각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 확신에 찬 어조와 분명한 문장이라니, 이건 신선했다.


거기다가 나는 실제로 ‘달리는 속도가 걷는 것보다 느린' 순간이 많았다. 휘리릭 스쳐 지나가는, 시원시원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런데이님은 ‘절대 무리하지 말아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아라, 너의 페이스에 집중해라’고 반복적으로 얘기했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고,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계획이 있다’고 말이다.


대망의 마지막 24회 차 달리기는 5분 웜업 - 30분 쉬지 않고 달리기 - 5분 쿨다운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달리기 코스로 진입하여 달리는 데, 런데이가 '이제 5분이 지났습니다.'라고 알려줄 때는 한숨이 나왔다. 아직 25분이나 남았다니. 8월이라서 아무리 새벽이라고 해도 덥고 습하다. 그래도 나름의 어려운 문턱들을 넘어가며 드디어 30분 달리기를 마쳤다! 정말 걷는 것보다도 느린 구간도 있었다. 왼쪽 뒤꿈치가 다시 아팠기 때문이다. 그래도 심한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속도를 많이 늦춰서라도 완주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인생 최초로 '30분 달리기‘를 (1년 3개월만에 드디어) 완주하고 5분 쿨다운 코스를 걷는데 런데이님이 다시 웅변조로 장엄하게 명문장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지속 가능한 페이스가 중요합니다.

달리기 속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쉬지 않고 달렸다는 것입니다. (..)


속도와 기록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운동을 더 빨리, 더 멀리 달리는 것으로 여러분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달리는 그 순간의 경험입니다.


달릴 때 여러분이 느끼는 그 기분이 더 중요합니다. 달리면서 하는 수많은 생각들이 더 중요합니다. 두 발로 한 걸음씩 달려 나간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

즐기세요, 속도와 기록에 연연하지 마세요! 달리는 것 자체를 즐기면 됩니다!


이 문장들은 누가 이런 확신에 찬 어조로 썼을까. 듣다가 나도 모르게 울 뻔했다. 달리기 뿐만 아니라 지금 나의 일상도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보다 느리다. 나는 나의 속도가 아니라 아이의 속도로 걷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하루, 나의 일주일, 나의 1년이 그렇다. 다른 사람들을 보며 내가 뒤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면 거짓말 일 것이다.


 지금 내 삶의 속도와 기록은 정말 별 볼일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빨리, 더 멀리 달리는 것으로 내 존재를 증명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늘 되뇌고 있다. 달리기도 초보, 육아도 초보이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경험들 그 자체가 값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느린 일상 속에서 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내게는 매번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일까, 한치의 망설임 없이 확신에 찬 문장들에 몹시 울컥한 것이다.  


  내게는 나만의 계획과 삶이 있고 그러니 지금 내 페이스에 집중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속 가능한' 페이스. 런데이님은 그런 내게 느려도 괜찮으니 멈추지만 말고 끝까지 달리라고 말해준다. 속도와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그냥 즐기라고. 매일 느끼는 그 기분과 수많은 생각들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아니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느려도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라고 한 번쯤 물어는 보고 싶었는데, 런데이님은 이 질문에 마저 답을 주었다. 저 모든 문장이 끝나고 잠시의 정적 후에 '그런데 운동을 무리해서 하지는 않으셨군요, 보다 효율적인 칼로리 소모를 위해 다음번에는 조금 더 빠르게 뛰어보세요'가 요지인 문장이었다. 이게 사람마다 페이스가 다 다를 테니 나한테만 이렇게 말해주는 건지, 모두에게 같은 문장을 들려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게는 저 내용이 그의 마지막 전언이었다.


  나는 계획형 인간이다. 쿨다운 시간 동안 한 편으로는 감동하면서 한 편으로는 계획을 세웠다. 8주 차 마지막 코스까지 완주했으니, 이제 한창 달리기 좋은 계절의 3개월 동안은 7주 차와 8주 차 코스를 다시 반복하면서 한 달에 20초씩 페이스를 당겨보자고. 그러면 3개월 후에는 현재의 9분 30초에서 8분 30초대로 페이스를 좀 더 빠르게 가져갈 수 있겠다고. 물론 그 과정에서 결코 무리는 하지 않을 것이고. 어쨌거나 나의 목표는 달리기도, 인생도, '나의 속도로' 꾸준히 완주하는 것, 그것만 기억한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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