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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12. 2022

INFJ 엄마의 1박 2일 나 홀로 서울 여행(최종)

고독한 대식가 같았던 나 홀로 조식

당초 계획에는 조식은 없었다. 호텔을 예약할 때는 돈이 아까워 두 번 생각도 안 하고 조식 없이 결제했는데, 막상 아침이 되니 조식 패키지로 예약할 걸 그랬나 싶었다.


아침에 먹으려고 전날 컵 누룽지를 사 두었지만, 막상 먹으려고 하니 많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해장도 할 겸 근처에 어디 24시간 하는 국밥 집을 가야 하나 아니면 일찍 문 여는 카페에서 커피랑 샌드위치를 먹어야 하나 잠시 주변 검색에 열을 올렸다.


 검색을 하다 보니 뜨끈하게 국물도 있으면 좋겠고, 든든하게 고기도 조금 먹으면 좋겠고, 달달한 빵도 생각나고 커피도 한 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무엇보다 나는 항상 아침을 든든하게 먹기 때문에 누룽지 한 컵으로 시작하는 여행의 둘째 날이 막상 내키지 않았다.  


 조식을 먹기로 과감하게 결정하고는 7시 반쯤 홀로 내려갔다. 혼밥이 어려운 타입은 아니지만, 조식을 혼자 먹어보는 건 처음이다. 나는 약 한 시간 반 동안 천천히 음식을 즐겼다. 핸드폰을 쳐다보거나 하지 않고(기념 삼아 사진만 두 장 찍고 엎어둠), 오로지 음식과 나 자신에 집중했다.


  나 홀로 5만 5천 원짜리 조식이라니.. 이래도 되나 싶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뜨끈한 쌀국수를 호로록 마시고, 모닝 스테이크 몇 점을 먹고, 샐러드를 세 종류 정도 먹고, 뜨거운 커피와 따끈한 빵, 달달한 파이가 입에 들어가니 그 생각은 멀리 저 멀리…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괜찮았기 때문에 혼자 이것저것 즐기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너무나 오래간만에 고요하게 식사하는 시간이, 신경 쓸 사람 없이 나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된다는 것이 대단히 신나는 포인트였다. 나는 주로 와구와구 후루룩 쫩쫩 스타일이지만, 이날만큼은 고독한 미식가가 된 기분이었다. 정확하게는 대식가에 가깝겠지만. 일드 <고독한 미식가> 인트로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의식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고고한 행위가 현대인에게는 최고의 힐링"이라는 멘트에 찐으로 공감하는 순간이었다.


예전의 혼밥은 후딱 먹고 다음 일정을 소화하러 가기 위한 것이었기에 오롯이 그 시간에 집중하고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날의 혼밥은 오롯이 나와 음식에만 집중하는 흔치 않은 시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 중 하나가 바로 이 '나 홀로 조식 타임’이다.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마도 말없이 홀로 식사하는 이 시간이 온전히 만족스러웠던 건, 전날 S와 함께한 시간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일 테고.


  이제 다음 일정은 서울숲이었다. 시간이 좀 여유 있어서 잠시 조용히 빈둥빈둥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아이와 영상통화를 한 후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거의 7~8년 동안 보지 못한 K를 만난다. 궁금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지나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떨지.





K는 20대 후반에 만나게 된 교회 동생이다. 내 기억에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꼬인 구석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소위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인데, 그녀는 뭐든 혼자서도 척척, 기계도 척척 다루는 그런 이미지였다. 허세 없고 배려 있고 내게는 은근히 웃긴 그런 사람. 나는 K에게 애정 어린 갈굼을 꽤나 당했는데, 그녀가 질색팔색 하는 걸 보는 게 재미있어서 부러 더 K가 질색하는 행동들(귀여운 척 같은)을 했었다.


동생이지만 여러모로 나보다 참 낫다, 멋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직장 생활 초반까지는 그래도 봤던 것 같은데, 나의 직장생활과 멘탈이 동시에 극한에 처하면서 연락이 끊겼다. 그녀의 잘못은 없고 내가 여력이 없었다는 게 맞겠다.


꽤나 종종 K를 생각했다. 잘 지내고 있을까. 하지만 먼저 연락할 용기는 선뜻 나지 않았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나름 인생사의 큰 일들이 굵게 정신없이 지나가던 2020년 2월 어느 날,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언니 잘 지내요, 로 시작하는. 생각난 김에 연락한다는.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아마 K는 알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가 절로 튀어나왔다. 살면서 잃어버리게 되는 인연이 없지 않지만 하나님이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것 같았다. 몇 년 만의 연락이 쉽지 않았을 텐데 쿨한 그녀의 연락에 여전히 사람이 크네, 생각했다.


그날을 시작으로 약 2년 반 동안 카톡으로만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육아에 힘들고 지치는 날 내가 연락하기도 하고, 또 K가 답답한 날 연락이 오기도 하고.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나 다른 지역에서 보는 방안도 생각해 봤지만 일정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코시국에 가족들 만나는 것도 참 쉽지 않았어서. 그러다 드디어 서울에서 '둘이' 만나기로 한 것이다.


여름이 휴가철이기도 해서 일정이 안 맞을 것도 염두에 두고는 있었는데, 마침 그날이 가능하다고 하니, 얼마나 기뻤는지. 그렇게 우리는 서울숲에서 약 7~8년 만에 상봉했다. 처음에는 호텔이 있는 코엑스나 용산역에서 볼까했지만, K는 그래도 오랫만에 서울에 왔으니 요새 힙한 성수에서 보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했다. 아침에 든든한 조식빨로 체력이 충분히 보충된 나는 카카오택시에 그녀의 집 주소를 찍고 서울숲으로 향했다.


K가 데려가 준 서울숲 맛집. 육즙 팡팡 딤섬 + 따뜻한 면요리, 맛있게 먹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K는 여전히 건강했다. 아이 얘기부터 그간 살아온 얘기들을 속사포로 나누었다. 기차 타는 시간까지 여유가 많지는 않아서 더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K의 입에서 조금씩 튀어나오는 그 시절의 내 모습, 그러니까 20대 후반~30대 초반 시절의 내 생각이나 말들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아 내가 그런 말을 했겠구나, 싶은. 그 시절로부터 내가 얼마나 많이, 멀리 왔는지 새삼 선명하게 느껴졌다. 대비가 컸다고 해야 하나.


세월의 공백을 거쳐 만나게 된 그녀는 '다시 만나고픈 사람'이었다. 이제는 시간을 내기가 미혼 시절처럼 쉽지가 않다. 내가 정말 보고 싶은 사람, 꼭 봐야 하는 사람을 볼 시간마저도 넉넉하지가 않다. 그래서 지금 보게 되는 사람들은 다른 이유 없이, 내가 정말 좋아해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여전히 그녀는 내게, 만나면 재미있는 좋은 사람이다. K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면 좋겠고. 내 삶에 이런 관계도 있다는 것이, 그리고 한 때의 시절 인연으로 끝나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 글까지 작성하고 나니, 나 홀로 서울 여행도 벌써 두 달 전 일이 다 되어간다. 이제 나 홀로 서울 여행 2탄, 가을 여행 계획을 슬슬 세워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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