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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02. 2022

글 쓸 때 마실 머그잔이 없네

아쉽네 너무 아쉬워..

토요일에 근교에 있는 프리미엄한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한다는 대형 쇼핑몰 지하에 있는 해외 그릇 편집샵에 가서 지난번에 가져오려다 만 머그잔을 살 계획이었다. 예전부터 눈 여겨 두고 있는 잔이었는데 마침 그곳에서 발견했고 당시에는 집에 컵이 여러 개 있는데 뭘 또 사냐라는 생각에 망설이다 그냥 돌아왔었다.


이번 주에 내가 살고 있는 남쪽 지역도 영하의 온도로 떨어졌다. 갑자기 쌀쌀해져서 그런지 몸은 더 추위를 느꼈다. 그래서 외출 후 미리 장만해둔 핫초코를 꺼냈는데, 원래 있던 잔에 핫초코를 먹으려니 썩 어울리지가 않았다. 크기나 모양이 핫초코용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진짜 겨울인데, 핫초코 한 상자 사둔 게 있으니 앞으로 최소 7번은 더 마실 텐데. 25년 지기 친구가 선물로 줘서 즐겨 사용하고 있는 이 커피잔 세트는 내가 최근 몇 년 간 줄기차게 좋아하는 스타일이고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고요한 커피 타임과 아주 잘 어울린다.


하지만 핫초코와는? 결코 아니었다. 책 읽거나 글을 쓰다가 목마를 때 가볍게 물 마시기 용으로도 절대 아니올시다다. 여기에는 그 머그잔이 필요하다. 두 개 정도는 쌓여 있어도 미관상 괜찮고, 따뜻하면서도 포근하고 캐주얼한 느낌을 품은 그런 거. 거기에 물론 커피를 내려 마셔도 어울릴 것이고. 내가 봐 둔 컵은 해당 브랜드의 빈티지 제품이었고, 지금은 안 팔면 어쩌나 혼자 조바심까지 내가며 토요일을 기다리던 차였는데, 아이가 어젯밤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처지거나 크게 아프진 않고 요 며칠 사이 갑자기 추워져서 열이 오른 모양인데 오늘 밤사이 혹시라도 심해지면 내일(토요일)에는 병원에 가봐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주말에 그곳에 가기는 틀린 것 같다.


세상에 뭘 하든 완벽한 상황은 없다. 머그잔만 있으면 보다 완벽한 기분을 느끼면서 평소보다 훨씬 더 잘 읽고 잘 쓰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오늘은 미리 아쉬운 마음을 안고 남편이 회사에서 기념품으로 받아온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하여 만든 업사이클 텀블러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다. 아쉬운 대로. 다음 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쉬운 대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할 일을 하면 되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속하는 법을 배우면 되지. 상황을 핑계삼아 미루지 않고. 내 인생에 완벽하지 않은 게 비단 머그잔만은 아니니까.


아이는 물수건을 해주니 열이 좀 내렸다. 지금은 단잠에 빠져 들어있다. 곧 일어나서 눈을 비비며 나를 찾아 안방으로 오겠지. 그럼 잠시 읽던, 잠시 쓰던 글을 멈추고 일어서면 된다. 누군가에게 눈 뜨자마자 생각나는 존재라는 게 좀, 기적 같은 일이다. 프리미엄은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완벽한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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