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고 싶은 것을 읽는다
‘내가 먹는 것이 나다’라는 의미의 문장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이 마치 혈관으로 수혈되는 피처럼 내 안에 들어와 흐른다. 내가 오늘 읽는 책이 미래의 나를 움직이고 나를 만들어나간다. 내가 읽는 것이 내가 된다.
이것이 내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나를 움직일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매번 파악할 수는 없다. 그 메커니즘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저 매 순간 나는 나대로 반응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뿐이다. 다만 그 기저에, 온몸에, 내가 읽어온 것들이 실시간으로 내게 영향을 준다. 좋은 책들을 읽으려고 한다. 나를 더 나아지게 만들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열려있어야 한다. 내가 닫혀 있는 상태로도 책은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책을 통해 내가 믿는 것을 더욱 공고히 할 근거만을 찾으려고 한다면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읽기를 통해 기꺼이 내가 변화되기를 원하여 활짝 열린 마음으로 그저 받아들인다면, 나 자신을 잠시 잊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 온통 그 세계에 흠뻑 빠져본다면,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쥐어지는 것이 없더라도 분명 지식 이상의 것을 얻게 된다. 감히 그것을 지혜라고 말해도 될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소화되고 필요한 영양분이 되어 나의 구석구석에 스며든다.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 더 나은 행동을 한다. 내가 성장하는 것이다.
읽는 모든 사람이 다 성장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제 아무리 건강하게 잘 만들어진 음식,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도 씹기만 하다가 뱉어버리면 그 어떤 영양분도 몸에 제대로 흡수되지 못할 테니까. 맛이 있는지 없는지, 내 취향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양도, 에너지도 없다. 당연히, 자라지 않는다. 읽고 읽어도 내 삶이 유의미하게 나아진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기꺼이 다른 세계를 음미하고 꼭꼭 씹어 오롯이 삼켜 그 이물의 세계를 내 몸에 받아들인다는 전제 하에, 분명 내가 읽는 것이 나를 만든다. 어쩌면 읽기보다 먼저인 건 ‘기꺼이 나 아닌 다른 세계에 빠져 볼 마음’이다. 읽기를 통해 잠시 나를 잊고 나의 세계가 자아를 넘어 확장되는 만큼, 나는 더 나다운 내가 된다. 나를 알게 된다. 하여 내게는 무엇보다 생산적인 일이고 건강해지는 일이다. 오늘 읽을 책을 고심해 고른다. 많이 고민한다기보다는 나를 당기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보기 위해 집중해서 마음을 쓰는 것이다. 내게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고른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을 읽는다. 그 책을 나만을 위해 차려진 훌륭한 밥상인 듯 부지런히 챙겨 읽는다. 매일매일.
"훌륭한 문학을 읽으면 나는 천의 인물이 되면서도 여전히 나로 남아 있다. 그리스 시에 나오는 밤하늘처럼 나도 무수한 눈으로 보지만, 보는 주체는 여전히 나다. 예배할 때나 사랑할 때, 또 도덕적 행위를 할 때나 지식을 얻는 순간처럼, 독서를 통해서도 나는 나를 초월하되 이때처럼 나다운 때는 없다" (C.S. 루이스, 책 읽는 삶, 22면)
(2023. 07. 16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