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있는 공간과 사람
나는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 식당이나 카페에 활기가 있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생기, 살아있는 기운, 누군가가 세심하게 돌본 흔적이 있는. 활기 없이 방치된 느낌의 장소에 들어갈 때 나는 다소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건 그 장소가 낡은 것이냐 새것이냐와는 좀 다르다. 비교적 새것에 가까워도 방치된 경우가 있고, 오래되고 낡았어도 정성스레 잘 가꾸어진 것들이 있다.
나는 공간의 분위기를 스스로 끌어올릴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공간의 영향을 받는 사람에 가깝다. 오래 방치된 곳이 눈에 띄면 다소 기분이 가라앉는다. 시간과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경우 음식도 어딘가 아쉬울 확률이 높다. 소소해 보이는 부분에 작은 정성이 닿은 것을 볼 때 기분이 좋아진다.
메뉴판에도 어떤 지역에서 공수한 자료가 어떤 방식으로 들어갔는지, 커피는 중배전 원두인지 강배전 원두인지 등 소상하게 적어놓은 것들을 마주하면 고맙다는 마음이 든다. 나의 미각이 그것들을 대단히 세심하게 구분할 수 있어서는 아니다. 다만 미리 설명해 주는 마음, 그런 것을 꼼꼼히 기록해 두는 정성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 그렇게 작은 정성들로 꾸려지고 꾸준히 유지되는 공간에 와있다는 것 자체에 다른 특별한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도 대접받는 기분이다.
한 번은 동네 카페에 들러 커피를 주문하다가 핸드폰 배터리가 9% 수준인 걸 깨닫고 잠시 충전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는데 바로 보조배터리를 내어주셨다. 배터리 위에는 그 카페의 로고가 곱게 새겨져 있었다. 작은 디테일이었지만 공간에 대한 자부심과 준비성이 느껴져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웠던 거야 물론이고.
집의 어떤 한 구석도 방치되고 있기 마련인데 손 가는 일이 많은 식당이나 카페에서 세심한 손길로 공간을 돌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 귀하게 느껴진다. 굉장히 잘 꾸미거나 세련되고 화려해서가 아니라(물론 이런 분위기도 좋아한다) 소박하고 때로는 누추한 분위기이기까지 하더라도 오랜 소품 하나도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질 때, 세련된 화분은 아니지만 그 안에 작은 꽃들이 생생하게 피어있을 때, 앙상한 나뭇가지이지만 가지치기가 잘 되어있을 때,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식탁이지만 쌓인 먼지 없이 깔끔할 때, 누군가 돌본 흔적에 그 공간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현재 진행형으로 누군가 쓸고 닦는 곳이라는 게 나를 편안하게 한다. 들를 때마다 한결같으면서도 조금씩 새로워지는 느낌. 반면 아무리 세련되고 크고 멋지게 만들어 놓았어도 세부에는 방치된 흔적, 오래 방치된 것 같은 먼지나 곤충의 사체, 곳곳에 얼룩이나 끈적임이 보이거나 만져질 때는 소중하게 여겨지는 공간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싱그러운 생기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룬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당장 무언가를 이룬 상태가 아닌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이어도 조금씩 매일 자라고 있는 게 느껴지는 사람. 조용히 빛을 발하는 사람들. 내게는 그런 사람들이 매력적이다. 때로 두렵기도 하다. 언제가 분명히 피어날 그들을 보며, 나도 자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초경쟁주의 사회에서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려 꽤 오랜 시간 분투해 온 나의 DNA에는 모든 걸 경쟁으로 환원하는 습관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좋은 영향인 것은 맞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라는 공간을 잘 돌보는 사람들. 나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고 잘 돌보려고 한다. 나의 정신은 어쩌면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 기존에 쌓인 것과 새로운 것들이 결합되어 날마다 조금씩 변한다. 그렇게 변하는 내가 좋고, 그런 활기가 좋다. 활기는 과장된 어떤 몸짓이나 큰 목소리 같은 것이 아니다. 오늘의 나를 돌보는 것. 꾸준히 조금씩 성장하는 것. 마치 내가 정성스러운 돌봄이 들어간 공간에서 기분 좋은 마음을 전달받는 것처럼, 나라는 사람의 생기도 동심원을 그리듯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어떤 기운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작지만 받으면 기분 좋은, 그런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