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맞는 노트북

20년간 나의 노트북들과 불화했던 이유

by 윤슬

문득 <맥북>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2023년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그때까지 맥북은 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2015년에 구입한 맥북 프로를 시범적으로 써 보기로 했다. 배터리가 부풀어 올라 수평이 다소 안 맞았다. 스피커도 고장 나 있었지만 주로 글을 쓸 목적으로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맥북을 처음 사용해 본 그날, 난 깨달았다. 왜 그 오랜 시간 동안 내 노트북들과 불화했었는지를.


나는 소위 말하는 기계치다. 첫 노트북은 2002년 대학 입학 후에 샀던 <소니> 제품이다. 당시 하이마트에서 적당한 ‘가격’을 기준으로 구입했고 오로지 과제 작성용으로만 사용했다. 그마저도 도서관 컴퓨터를 쓰는 날들이 더 많았고, 내 물건이라는 애착은 없었다. 두 번째 노트북은 <넷북>이었다. 대학원생이었고 돈이 없을 땐 정말 천 원이 없는 날들이었다. 그 당시 가장 저렴한 축이었던 넷북을 구입하여 석사 논문을 완성했다. 그 이후에는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노트>와 <북>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 때문일까. <노트북>은 언젠가부터 ‘갖고 싶은’ 아이템이 되었다. 노트북을 세련되고 능숙하게 사용하는 지적인 어른이고 싶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키보드를 몇 번 갈아치운 나는 이제 제대로 된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프로일잘러가 될 것 같았다. 한글 문서 작업을 주로 하는 회사 환경을 고려하다 보니 맥북은 선택지에서 1순위로 제외되었다. 입사 후 처음 구입한 제품은 <LG 그램>. 출장 시에 주로 사용할 것 같아 ‘무게’를 우선순위로 두고 선택했다. 분명 가벼웠지만 손에 붙지는 않았다. 거의 새것인 상태로 마침 노트북이 필요했던 동서에게 넘겨주었다. 그다음에는 깔끔하고 샤프한 블랙과 빨콩 키보드가 포인트인 <레노버 씽크패드>가 눈에 띄었다. 클래식한 느낌이 좋고 키감도 마음에 들었다. 드디어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에 드는 ‘내’ 노트북을 발견했다는 확신으로 과감하게 질렀다. 본전 생각에 처음에는 여기저기 들고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를 잘 모르고 지내 온 직장 생활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씽크패드>도 <그램>과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되었다.


임신과 퇴사, 출산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결정적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크게는 유아차와 카시트, 자잘하게는 분유, 기저귀, 젖병, 아기 의자 등 생전 처음 사보는 물건들로 물품 구매 목록이 가득 찼다. 육아와 함께 극심한 정체성 혼란이 찾아왔다. 글이 쓰고 싶어졌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풀어내 정리하고 싶었다. 책장 한편에 처박혀 있던 씽크패드를 다시 꺼냈다. 어딘가 성에 차지 않는 상태로 3년 정도를 사용했다. 외벌이인 상태에서 육아 관련 용품이 아닌 내 것에 백만 원 이상의 돈을 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책상에 놓여 있던 맥북이 눈에 들어왔다. 퇴사를 했으므로 윈도우는 권장 사항이 아니었고 글을 쓸 때는 구글 독스를 사용하고 있기에 윈도우고 아니고는 더더욱 상관이 없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남편은 기계를 잘 다루고, 애플 제품을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맥북을 써보고 싶다고 하자 남편은 자신이 10년 정도 사용한 맥북을 흔쾌히 내주었다. 그는 어딘가 들뜬 목소리로 맥북의 세계는 윈도우와는 다르다며 열띤 설명을 이어갔다. 처음 사용할 때는 약간 불편할 수 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매력적이라면서.


맥북을 처음 제대로 써 본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맥북을 써야만 하는 이유를. 맥북은 과연 매력적이었다. ‘미학적으로’ 내 마음에 꼭 합했다. 폰트부터 전체적인 화면이 “보기에 예뻤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외관뿐만 아니라 내면의 결이 나와 맞았다. 구글 드라이브에 기록하고 있는 하찮은 글들이 폰트 버프 때문인지 평소보다 그럴싸해 보였다. 전체적인 마감이 깔끔해서 시각적 충족감이 상당했다. 노트북을 매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용을 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 없었다. 저절로 손이 갔다. 매일 독서 노트를 작성하고 매일 일기를 썼다. 하루에 단 한 줄을 쓰더라도, 뭐 때문에라도 맥북을 열었다. 나의 의지가 대단해서 읽고 쓰고를 열심히 한 게 아니라 맥북이 좋아서 자주 열어 보다 보니 뭐라도 더 쓰게 됐다. 예전부터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아이폰과 맥북으로 이어지는 세계관도 꽤나 편리했다. 문자도 맥북으로 더 쉽고 빠르게 보낼 수 있었고, 캘린더 사용도 용이했다. 어느새 노트북을 제법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제 윈도우의 세계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예감했다.


나에게는 세상 예쁜 것이 세상 좋은 거였다. 미감에 맞는 노트북을 찾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 세월 동안 취향이 뾰족하게 다듬어진 점, 가격과 소프트웨어와 같은 제약으로부터 예전보다 자유로워진 점이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 밀란 쿤데라의 책 <커튼>에는 ’ 미학과 삶’이라는 제목의 챕터가 있다. 이 글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호감을 품거나 혐오를 느끼고, 서로가 친구가 될 수 없고, 이렇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라는 물음과 함께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불화의 원인을 알아낼 수 없다면, 그것은 불화가 너무 깊게, 당사자들의 미학적 토대에까지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 내가 미학 개념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것들이 삶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깨닫고 나서다. 그러니까 미학 개념을 존재의 개념으로 이해했을 때다.”

* <커튼>, 밀란 쿤데라, 150면, 민음사(2021)


미학적인 것이 우리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생각보다 어떤 현상의 ‘근본’ 일 수 있다는 통찰에 눈이 번쩍 뜨였다. '관계' 문제에 이 관점을 적용해 보면 도저히 풀리지 않던 어떤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그간 지내온 노트북들과의 불화는 미학적 토대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2025년 초여름, 마침내 20년간의 노트북 유목민 생활을 청산하며 ‘내 첫 맥북에어(m4)’를 구입했다. 이제 육아 6년 차, 지난 5년 간 매일 읽고 쓰는 사람으로 시간을 보낸 나는 노트북을 새로 구입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맥북에어는 그간 노트북 구입 시 기준이 됐던 가격, 무게, 클래식한 요소들까지도 다른 노트북들과 비교했을 때 두루두루 충족했다. 컬러는 실버. 첫 구입이니만큼 가장 오리지널 한 느낌을 고르고 싶었다. 예쁘다. 겉도 속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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