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너조이 Nov 27. 2021

미술하듯, 여행하듯

아이와 함께 춘천 이상원미술관



여행지의 미술관에서 꽤 오랜 시간 지체하는 건, 아이와 내가 여행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마음에 품기 위한 우리만의 여행 루틴이다. 생각하고 계획해둔 루틴이 아니었지만 아이가 태어나 약 4년을 함께 호흡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쌓아온 우리만의 여행 방식이 되었다. 


귀 아프도록 쨍쨍한 동요가 가득 울려퍼지는 키즈카페로부터 나를 구원해준 미술관 여행. 미술관을 따라 여행하는 건 내가 경험했던 공간 이동 방식 중 최고이자 최상이었다. 아니, 가장 나다웠다. 특별히 여행지의 미술관에는 늘 자연이 있었는데 자연을 애써 찾는 사람이 아닌지라 자연을 오래도록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점이, 그 점이 내게 또한 좋았다. 



산 속 미술관, 이상원미술관



그 중 유난히 추운 날에만 찾았던 미술관이 있는데 춘천의 한 사립미술관인 이상원미술관이 바로 그곳이다. 강원도 산자락에 위치한 곳이라서 늦가을에 가도, 따뜻한 겨울에 가도 산속 특유의 칼바람이 마주잡은 아이와 나의 두손을 사정없이 때렸다.


칼바람 맞으면서도 실실 웃는 우리 모녀, 

그리고 이상원미술관.



이상원미술관 본관 앞 최은경 작가의 대형 녹색 사과 



규모를 보면 강원도에서 여행객의 예술감상을 위해 작정하고 기획건축한 미술관인 듯보이지만, 사립미술관이다. 이상원 화백의 아드님이 지으셨단다. 화악산자락에 있어 차로 산을 오르는 기분으로 간다. 입구부터 티켓오피스, 뮤지엄스테이 몇 개 동과 산책로 그리고 아트스튜디오라고 불리는 공방 몇 개를 지나 언덕 끝까지 올라가면 도착하는 곳이 이상원미술관 본관 건물이다. 





아주 둥근 유리 건물이라 산 위에 인공 달이 두둥실- 떠올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건축물을 보면 건축의 의미 또한 느껴지는 바, 통유리의 큰 원형 미술관은 마치 자연의 기운을 온 몸으로 다 받으며 미술품을 선보이겠다는 듯 대자연을 향해 둥근 모양으로 우뚝 서있다. 만약 통유리 원형 건물이 아닌 대리석 직사각 건물이었다면 대단히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상원미술관의 묘미는 작품을 보다 문득 통유리로 고개를 들면 보이는 산속 경관, 그러니까 예술을 만들어낸 인간의 창의성과 자연을 만든 신의 창조를 온전히, 전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점이다. 어른보다 자연에 먼저 반응하는 아이, 작품을 재미있게 보다가 통유리를 향해 걸어가는 딸 아이를 보면서 자연과 예술 속에서 맘껏 자라는 어린이로, 어른이가 되길 기도했다.


      



춘천 출신의 독학 화가 이상원 화백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근대화를 오롯이 겪은 한국사의 낱낱 그 자체의 삶을 사신 분이다. 자본주의와 물질주의가 주는 편리함에 온몸을 적셔놓은 현대인들에게 이상원 화백의 작품은 '삶의 진실'에 관해 생각하도록 그 기회를 마련해 준다. 


이상원 화백의 작품은 산업화와 자본화의 화려함 이면에 놓인 삶의 진실을 밝히고 소외된 존재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빛바랜 노동자의 작업복을 닮은 작품은 빛나는 땀과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상원미술관 홈페이지 작가소개 中


아이가 네 살 때 찾았던 이상원미술관에서는 동해인들, 그러니까 바다의 노인들을 그린 수 개의 작품들이 있었다. 바다와 노인. 노인의 얼굴을 한땀 한땀 그려냈을 이상원 화백의 마음을 헤아리며 감상했다. 계속해서 주름살을 가리키며 이것이 무어냐며 묻는 아이에게 틈새 답변도 해주며. 그렇게 감상하다 인생의 진실을 다 깨달아 버린 거장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4세 때 찾은 이상원미술관



강원도에 사둔 땅을 오랜만에 살펴보고 근처 개발 프로젝트의 현황을 살펴보러 왔던 여행이었는데, 그 여행 중 만난 예술 앞에서 내 안의 부질없이 물질적인 생각들이 무너진 것이다.    



이정윤 개인전
정체하지 않고 명랑하게 여행하는
엄마 여자 사람이 되길



꼭 1년 만에 다시 찾은 이 곳에서 본 이정윤 개인전은 '엄마, 여자, 사람'을 주제로 한 콘텐츠들 중 내 마음을 가장 따뜻하고 유연하게 해주었기에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 전시 후기를 올렸는데 작가님께서 댓글도 남겨주시고 선팔도 해주셔서 더더욱)


나의 선인장들은 모두 땅에 뿌리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느 한 곳에 정주하고 싶지 않다. 최소한 내 생각과 내면은 늘 이동했으면 좋겠다. 

- 이정윤


이정윤 작가



분홍색 구두를 신고 쓰러져 있는 코끼리는 작가 자신을 투영하여 만든 결과물이다. 거대하고 둔탁한 몸집의 코끼리이지만 공기조형물로 이루어져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자 사회적인 규범을 상징하는 힐을 신고서 임신, 출산, 육아라는 거친 모험을 해내다 쓰러져 있는 건가? 좌절? No.


이정윤 작가가 사용한 색상 덕분에 절망적인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이 모습은 마치 '엄마'들 같다. '엄마'라는 모진 여정을 헤쳐 나감에도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점 때문에 다시금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인생이라는 여행을 즐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몇 년 남지 않은 40부터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이 가끔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꼭 저 코끼리처럼 선글라스로 내 눈을 덮어놓고 둔탁해진 몸을 옆으로 뉘여놓고 싶다. 하지만 그 마음은 정말 잠시뿐, 이정윤 작가의 <여행하는 선인장(위 사진 우측)>처럼 여행 가방을 챙겨 진정한 인생을 향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내가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남편 앞에서 주절주절 읊어대며 감동에 벅차하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아이는 어느새 저렇게 미술관 내 어딘가에 꼭 있는 '그리는 공간'에 가 자리잡고 있다. 책을 읽으면 글을 쓰고 싶은 것처럼, 미술품을 보면 미술놀이를 하고픈 겐가. 





어쩌다 보니 반년에 꼭 한번은 당일로든, 1박으로든 오게 되는 춘천에서 소중한 친구 하나를 둔 기분이다. 다음에는 봄, 여름에도 들러 온 산이 초록초록할 때 방문해 또 다른 느낌으로 친구를 만나야지 :)

매거진의 이전글 집 가꾸기로 상처를 치유한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