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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조이 Nov 30. 2021

맛있게 쓰는 미술 글

<미술 글쓰기 레시피>를 읽고



오랜만에 글쓰기 책을 집어 들었다. 


살다 보면 관심사가 하나 둘씩 늘어나는데 그 때마다 '그것'에 관해 어떻게 글을 쓸지 고민한다. 10대에는 나의 '일상'과 '공부법' 글쓰기를 좋아했고, 20대에는 '요가'와 '상처'와 관련된 글을 썼다. (물론, 전공논문 주제인 정치경제에 관한 글은 말할 것도 없고) 30대에 들어와서는 '음식'과 '미술'로 글을 쓰고 싶어진다. 정말 맛있게. 맛있게 쓰고 싶었다.


깊이는 없었지만 이 글 저 글 쓰다보니 결국 모든 글쓰기는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 같다. '나만의 이야기'로 '그것'을 풀어 쓰는 것. 이를테면 요가에 대해 장황하게 쓸 것이 아니라, 요가로 살고 요가를 살아내는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면 된다. 상처에 '관한' 정보성 글들은 정말 재미없어 못 읽는다. 글쓰기에 참고자료가 될 수는 있지만 상처를 품는 이의 진실한 이야기가 될 수는 없다. 상처를 살아내는 이야기, 그 자체를 적으면 된다. 


그러므로 최근 1년 동안 관심을 가져온 미술 글쓰기는 '미술로 살아내는 내 이야기', '미술 안에서 사는 나의 고백', '예술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 등을 적으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뭔가 더 뾰족해지길 원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난 미술인이 아니라 순수한 미술감상인이고 미술업계에 몸 담지 않은 비미술인이기에 더욱 컨셉과 메시지와 방향성이 필요했다.


그렇게 집어들게 된 정민영 저의 <미술 글쓰기 레시피>. 





서점에서 서문만 읽고 지나치려다 그 서문에서 건져올려진 단어와 문장들이 어쩜 최근의 내 생각과 꼭 같은지 놀란 마음에 샀다. 이런 책은 흔치 않은데.


제가 고민한 미술 글쓰기 책은 일단 일반 독자의 부담부터 덜어주는 방식이어야 했습니다. '미술에 대하 글쓰기'보다 '미술로 하는 글쓰기'에 방점이 찍혔으면 했습니다. 크게는 '생활 속의 미술 글쓰기'요, 작게는 '자신의 이야기로 하는 미술 글쓰기'입니다. '미술을 위한 글쓰기', 글쓴이가 쏙 빠진 '작가나 작품을 위한 글쓰기'에서 벗어나 미술로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글쓰기입니다.

<미술 글쓰기 레시피> 中



미술 글쓰기,
글로 그림을 번역하는 일



이 책은 '미술 감상'의 완성이 곧 '미술 글쓰기'임을 말하며 시작된다. 쉬운 이야기인 듯 들리지만 미술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나만의 감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미술계는 마치 일반인은 이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 이야기하는 것처럼 굉장히 어려운 미술용어로 전문적인 비평, 설명, 해석을 쏟아놓는다. 그 속에서 '그러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느꼈습니다.'라며 독자적인 글쓰기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이란 말인가!


저자는 미술 자체가 목적인 미술전문가들과 달리, 우리는 삶을 위한 재료로서 미술을 향유하는 일반인이기에 이성보다는 '감성'을 작동시켜 글을 써보라 권한다. 가슴을 따라가 써보라고. 


그림은 불립문자라 유일한 혹은 완전한 해석은 있을 수 없으며 시대마다 사람마다 갖는 개별적 감수성으로 감상할 때 더 의미있을 수 있다. 실제로 갤러리의 이모저모를 둘러보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갤러리 관계자들의 정보성 포스팅보다 일반인의 가슴 울리는 포스팅이 더 잘 읽힌다. 


그림을 단지 학술적인 분석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삶을 산 또 다른 누군가의 라이프스토리로 받아들일 때, 나와 전혀 무관해 보이던 그림이 갑자기 내 삶에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정육,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감상주권'을 언급하는데, 감상 주체인 감상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우선하자는 의미다. '아는 만큼 보인다'가 아니라 '느끼는 만큼 보인다'로 관점을 전환하는 탁월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주관적 감상이 글 안에서 온전히 흐르고 있을 때, 그 때가 바로 객관적 정보가 필요할 때이다. 책에서는 주관적 감상 위에 얹을 객관적 정보를 어떻게 서술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미술 글쓰기할 때
알면 좋은 것 혹은 알아야할 것



미술 관련 책을 사서 실용적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서 예술서는 소장용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 정민영의 <미술 글쓰기 레시피>는 미술 글쓰기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 무척 실용적이다. 1장을 제외한 2~5장의 내용이 모두 미술 글쓰기를 위한 실질적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한 기술들이기 때문이다.


2장.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3장. 어떻게 써야 할까 ★

4장. 무엇으로 쓸 것인가

5장. 이렇게 하자 


2, 4, 5장은 일반 글쓰기에서도 통용되는 이야기인데 특별히 3장은 정확히 '미술 글쓰기'에서만 통하는 일곱 가지 이야기가 있어 무척 흥미롭다. 


작품을 묘사하자 _ 소재/재료/기법/형식

작가 정보를 곁들이자 _성장배경/작품활동

시대를 눈여겨보자 _시대적배경

쓰기는 더하기다 _미술정보/작가정보

에피소드에 주목하자 _글쓰기의 감초

작품명을 거들떠보자 _감상의 단서

다른 분야를 더하자 _인용


물론 이 모든 건 앞서 언급했듯 '주관적 감상'에 잘 버무려질 때 글 안에서 빛을 발한다. 만약 주관적, 감성적 감상 없이 작품의 소재나 기법, 작가정보 등을 언급하면 아마 생명이 없는 글처럼 느껴질 것이다.


내가 그림을 볼 때 가장 관심있게 체크하는 부분이 바로 작가의 성장배경. 그렇다면 나의 미술 글쓰기는 대체로 나의 주관적 감상과 작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겠다. 삶에 관해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가 선택한 재료, 기법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겠고 말이다.

미술 글쓰기의 여러 팁 중 생각지 못한 두 가지가 있었는데 '미술용어 쓰는 법'과 '작품 캡션 상세히 적기'이다. 


독자가 계속해서 용어를 검색하고 찾아봐야 한다면 그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글쓴 이에게는 당연하고 지극한 상식일 수 있는데 독자에게는 어려운 용어라면?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용어 풀이를 상세히 해주어야 하므로 이럴 땐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인스타에 감상 후기를 올리다 보니 매번 잊게 되는 것이 캡션이다. 도판(그림)에 붙은 텍스트를 캡션이라 하는데 내 감상 후기를 읽는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행동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만약 감상 글을 출판하거나 다수가 보는 어딘가에 발행할 때는 도판(그림)과 캡션(텍스트)은 함께 더불어 제공해야겠다. 






글쓰기의 영역은 넓고 넓다. 그 중 미술이라는 분야에 몰입해 글을 쓰려면 미술을 알아야 했다. 내가 미술 행위를 직접 할 필요는 없었지만 미술의 일반 특성을 알아야 했다. 미술전문가가 아닌 비미술인의 감상 글이 생명력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알아야 했다.


이제 글을 쓰기 시작해야 할텐데 내 가슴과 머리에게 부탁할 일만 남았다. 뜨겁게 감상하고 즐겁게 앉아 쓰는 영혼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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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조이의 미술관 육아│미술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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