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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조이 Nov 16. 2020

집 가꾸기로 상처를 치유한 사람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를 읽고


행복은
가장 가까운 가족을
돌보는 데서 시작된다.



행복한 장면만 그리는 작가 칼 라르손에 대해 글쓴 저자 이소영. 그녀는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의 서문에서 이 책을 쓰는 동안 자아를 올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어두운 그림을 좋아하는 그녀가 칼 라르손의 한없이 행복한 그림들을 몇 년 동안 접하다 도달한 곳은 자아 성장. 늘 어두운 그림만 찾았던 내가 이 책을 펼쳐든 이유다.    


말하자면 나는 '행복한 그림'보다 '삶의 어두운 모습을 표현한 그림'에 더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중략) 암울한 그림을 사랑하는 내게 행복한 장면만 그리는 작가인 칼 라르손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시간은 동굴 속에 떨어진 반지를 찾는 과정 같았다. 결국 이 책은 나 스스로를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중략)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깨달았다. 사람들이 칼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는 '대신 행복해주기' 때문이었다. 35~36


철로 만든 대문에 잔뜩 난 깃스처럼 내 삶이 참 아팠을 때 운명처럼 만났던 그림들이 모두 '불안'과 '우울'을 그린 작품들이라, 나도 저자처럼 그런 그림들을 사랑하고 아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을 줄 알았다. 우울한 광기 속에 살다 간 화가들의 삶을 애써 찾으며, 역시 예술은 우울한 열정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라고 나만의 결론을 내리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내 삶에도 행복의 빛이 깃들고 내 집이,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 서재가 어여쁘게 가꾸어지고 있을 무렵 만난 그림들을 생각해 보니 모두 '행복'과 '평화', '가족', '순수'를 그린 목가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이었다. 그 때 알았다. 그림은 작가가 그리지만, 그림이 의미를 갖게 되는 건 감상자의 마음과 태도에 의한 것임을. 칼 라르손의 작품들이 꼭 그랬다. 내 마음에 빛들이 꿈틀대고 있을 때 만난 작품.


나의 그림은 나의 집과 같다. 어떤 호사스러운 가구도 어울리지 않는다. 단순하지만 조화로운, 그렇지만 질 좋은 것이 우리 집에 어울린다. 240




이케아의 모든 가구 디자인 영감은 칼 라르손이 부인과 함께 8명의 자녀를 키워낸 집 릴라 히트나스('작은 용광로'라는 뜻)에서 나왔단다. 가족이 함께 숨쉬는 공간에 놓을 가구를 제작할 영감이 사람. 어떤 그림들일까.  








칼 라르손의 삶과 작품들을 마주하며 내 삶과 연결된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어린 시절의 불우함과 상처가 배우자와의 만남과 집 가꾸기를 통해 치유되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일기 쓰는 삶이었다는 점. 



결혼생활을 통해 치유된 상처


빈민가에서 태어나 미술로 삶의 길을 선택하기까지 있었을 그의 고단한 삶은, 교양 있게 자라 내성적인 부잣집 딸 카린과 결혼하며 치유와 영감의 길로 접어 들었다. 책의 2장 전체가 칼과 카린 부부 슬하의 8명의 자녀 그리고 강아지에 대한 글과 그림일 만큼. 부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에 대한 애정이 넘쳤던 것 같다. 대가족이 평생 자연 속의 집을 무시로 가꾸고 개조해 가며 만드행복이 안에 온전히 담겨 있다.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제 인생을 이렇게 명확하게 느껴본 적이 없으며 그와 같은 의지를 지닌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칼은 성장 과정에서 많은 슬픔과 고통을 겪었고, 어느 시점에는 자신이 처한 불행에 굴복당했지만 결국 자신을 믿는 힘으로 스스로 일어섰습니다. 자신의 힘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 제 인생을 맡기는 것보다 더 좋은 미래가 있을까요? - 1883년 9월 13일 결혼에 반대하는 부모에게 카린이 쓴 편지


결혼 5년차. 나도 꼭 칼 라르손 같이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 상처로 범벅된 10, 20대의 기억들이 결혼생활을 통해 희미해지고 점차 뿌얘진다. 네 번의 이사를 통해 정착한 지금의 집을 리모델링 공사와 또 몇 차례의 가구 재배치 등을 거치면서 행복을 향해 묵묵히 걷는다. 결혼 후 성실하게 못질을 한 남편의 모습은 내가 지금 행복한 이유이기도 하다. 

★ 내가 이 남자와 결혼한 이유 (결혼 2주년) 읽기



책 읽기와 일기 쓰기


칼과 카린의 집은 자연친화적이고 자유분방하며 목가적인 분위기 속에서 독서와 일기 쓰기가 완전히 체화된 가정이었던 것 같다. 부부 모두 뛰어난 화가이면서도 대단한 독서가였던 것. 




부부는 자녀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에 대해, 또 아이들의 성장과 삶에 대해 계속 해서 읽고 썼다. 남기고 싶어하는 것들을 그림으로, 글로 기록하며 행복을 구체적이고 고유한 것으로 만들어 갔다. 


가장 행복한 독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책을 이해하는 것이다. 252  / 담백하게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은 일기를 쓰는 것이다. 259


사실 이 부부의 행복론은 독서와 일기 쓰기뿐만이 아니었다. 여행, 자수, 요리, 자연 감상 등 책에 소개된 그들의 삶은 피로에 지친 현대인들이 늘 꿈꾸는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부부의 읽기와 쓰기에 주목한 이유는, 그것이 모든 라이프스타일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지식 활동이었을 거라 추측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여행, 교육, 원예, 작품활동 등을 탄탄하게 지지해 주는 중심 활동.





책을 덮고 결혼 전후 극명히 달라진 내 삶을 회고했다. 일반 주부에 비해 유난히 가정경영에 에너지를 쏟는 남모를 나만의 이유를 생각해 보며. 한 많은 어린 시절을 보낸 칼 라르손에게 집 꾸미기가 참 중요했던 것처럼. 남편과 아이를 돌보고 집안을 가꾸며 수시로 환경을 정비하는 데 쏟는 에너지가 결코 소모적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가족의 동선을 이해하고 참작하여 가구의 배치를 고민하고, 필요한 가구를 꼼꼼하게 따져 구매하며, 계절마다 어울릴 꾸밈 요소들을 매만지는 일이 내 모든 치유의 한 과정임을. 





2020.11.16

서른 다섯부터 시작하는 심미안 공부.  


@innerjoy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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