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자민, 바실리아 칸딘스키, 켈리 비맨, 신미경, 강애란
미술은 어렵고 고상한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겪는 인간이라면
잠시 그림 앞에서 멍해질 필요가 있다.
- <휴식을 위한 지식> 中
그림이 좋은 친구가, 좋은 스승이 되고 삶의 동반자로 인식될 무렵부터 '글을 잘 쓰고 싶어 죽겠다.'는 열병 같은 마음과 '엄마가 되니 알 수 없이 미치겠다.'는 우울감이 조금씩 걷혔다.
글을 잘 쓰지 못해도, 앞으로 그저 쓰면서 살아가면 되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마음. 엄마로서의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주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구나 하는 희망적인 확신.
비를 잔뜩 쏟아내는 어두운 하늘의 심술궂은 구름이 사라지며 비로소 보이는 맑은 햇빛처럼, 분노와 자학과 냉소로 얼룩진 나의 암울한 서재에 명랑하고 산뜻한 기운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책장에 꽂혀있던 '부모로부터의 상처', '올바른 치유', '상처 받은 자의 왜곡된 심리' 같은 주제의 책들을 떠나보내고, 이제 책장에는 기쁨과 자기신뢰, 긍정육아와 관련된 책, 그리고 창조적 자아를 돌보기 위한 예술서들이 꽂혔다.
작심하고 서재를 정리하지 않았는데도 몇 달, 몇 년을 지나오며 나의 서재는 이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의 서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미술 작품 하나 하나를 보기 전과 후의 난, 이렇듯 달랐다.
그림을 몇 일 안 보고 있어 갑자기 생기를 잃고 있으면 남편이 먼저 알아보고 '내일 바로 전시회 보러 다녀와.' 라고 했다.
내 마음을,
내 시간을,
내 공간을,
내 생각을,
내 깊이를,
내 인식을, 바꿔준 수많은 예술들이 내 안에 오롯이 새겨져 있지만 아이에게 전해줄 이 글에 별도로 저장, 기록해 두고 싶었던 작품을 소개해 본다. 생계를 위한 발버둥과 단조롭기 그지없는 일상의 권태 속에서 '글쓰기'를 멀리했던 내 마음에 아주 뜨거운 열정을 지피워준 이들이다.
Introportrait en bleu (2005)
David Jamin (1970~, France)
Introportrait 내면 자화상
= Introspection 성찰 + Autoportrait 자화상
내면 자화상은 '내적 자기 성찰'과 '자화상'의 응축이고, 어느 한 시점의 영혼을 드러내어 표현하는 총체... by David Jamin
2021년 1월은 내가 'Introspection(내면자화상)'이라는 단어를 길어올린 아주 역사적인 날로 스스로 기억한다. 잊지 않을 참이다. 바로 데이비드 자민의 개인전 [New Journey 내면 세계로의 여행]에서였다. 단어 역시 그가 만든 단어다.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자기에 대해 글을 쓸 의지가 있고, 그림 그리는 사람은 한 번 즈음 거울 보듯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 작업을 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 안의 더 깊은 내적 세계, 내면의 감상, 내적 자아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게 무척 난해함에도, 자민은 이 작업을 내면자화상이라 명명하며 훌륭하게 해낸다. 자민 자신의 이상적 얼굴이라고 여긴다던 내면자화상, 그건 아마 내면의 표정, 영혼의 얼굴, 속사람의 체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면의 생김새는 자기 자신을 돌보고 내면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이들에게만 보인다. 작가가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많은 성찰과 회고를 쌓아 올린 후에야 내면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을지를 생각하니 작가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응원을 보내며 눈물이 울컥 났다. '내면 성찰'은 외부 세계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자신을 돌볼 시간이 현저히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주제다.
코로나로 인한 가정보육 1년차에 접어들었던 때, 아이만을 위해 살고 있는데 '내면 성찰'이 다 뭐냐며 자기 돌봄을 게을리 했던 어느 날 본 작품이다. 나의 정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있는가, 무엇에 얽매어 있고, 지적 체온과 밀도는 어떠한가.
Thirty (30)
Wassily Kandinsky (1866~1944, Russia)
모든 것은 점으로부터 시작한다. by Wassily Kandinsky
점 : 화가의 감정, 생각 (모양 변형)
선 : 화가의 방향성, 힘 (직/곡선, 상승/하강)
면 : 화가의 정서, 무게 (형태, 색, 각도)
내가 감히 칸딘스키의 그림을 말할 자격이나 될까. 그런데 이 작품은 꼭 기록해 두고 싶었다. 칸딘스키의 밝고 명랑한 색채 가득 그림과는 다른 흑백의 그림이라 한 번 더 보게 되었던 그림. 연남동의 19.8도 미술관에서 [추상을 말해요, 칸딘스키]라는 도슨트 강의를 듣다가 알게 되었다. <Thirty(30)>.
점으로 시작해 직선과 곡선, 면만으로 캔버스를 채우고 형태를 단순화하는 작업으로 창조적 시도를 했던 칸딘스키. 점, 선, 면이 예술가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그가 이야기한 내용을 기억하며 <Thirty(30)>를 봤다. (칸딘스키의 책 Point and Line To Plane)
점, 선, 면만으로도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였기에 이 그림에는 메시지가 참 많은 듯 보였다. 30개로 이루어진 각 칸마다 마치 암호처럼 자기 삶의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닐까. 도슨트 분에게 여쭤봤더니 30개 중 일부는 생전의 칸딘스키 지인 그리고 이후의 학자들에 의해 해독되었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칸들이 있다고 했다.
이건 사랑, 이건 상처, 이건 음악, 이건 성취, 이건 지식, 이건 관계, 이건 욕구, 이건 반항, 이건 자유...
이 모든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삶을 이루고 작품을 이루고 예술이 된 것이다. 칸딘스키의 삶뿐이랴. 우리 모두에게도 마치 암호처럼 해석하기 힘든 삶의 희노애락, 언어로는 표현할 길 없는 감정과 사건들이 있어 왔다.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삶'이라는 작품의 재료인 셈이다.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그림을 보면서 내 삶의 랜드마크들을 떠올려 한 칸 한 칸 손가락으로 짚어봤다. 피아노와 첼로, 부모님과의 별거, 아버지의 부재, 아버지와의 대립, 분노와 슬픔을 키운 가난, 살뜰한 지성 돌봄,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대학의 제적통지, 섭식장애, 완전한 요가 몰입, 온화한 남편과의 결혼, 우리 딸 아이의 출생, 엄마됨, 미술의 위안..
언젠가 그림을 그리게 되면 나만의 Thirty 작업을 하게 되지 않을까. 나 자신에 대한 가장 훌륭한 연구자가 되고 싶다고 줄곧 생각해 온 것처럼, 나만의 Thirty는 그 연구의 결과물이 될 수도 있겠다.
Fishbowl (2022)
Kelly Beeman (America)
그들이 입는 옷은 작품의 무드에 이바지하는 중요한 레이어가 됩니다... (시간이나 장소, 상황, 인물의 성격 등) by Kelly Beeman
패션 분야 명품 브랜드는 거의 모르고 사는 사람이라 세계적인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인플루언서 켈리 비맨을 안지 얼마 되지 않았다.
깔끔하고 단순한 라인, 다채롭지만 과하지 않은 색채감, 배경의 간소함 등 켈리 비맨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요소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역시나 예술적인 가정에서 성장하며 부모님으로부터 풍성한 영감을 받은 듯하다. 그림 그리는 엄마와 스토리텔링에 능한 예술적인 아빠 밑에서 전공은 피아노, 직업은 패션일러스트레이터인 켈리 비맨.
배경이 간소하거나 생략되어 있고 헤어 스타일 역시 단순해 인물, 특히 표정과 의상에 집중하게 된다. 특별히 페로탕 서울의 켈리 비맨 개인전 [Wish]에서 만난 <Fishbowl>은 가만히 감상만 하던 내게 소장 욕구까지 불러 일으킨 작품이다.
옅은 미소를 띠며 나를 응시하는 것 같은 이 여인은 어항 속 물고기를 보살피는 따뜻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시선에는 강단이 느껴진다. 다정한 듯 시크하고, 따뜻하지만 경계를 긋는 여인. 나른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생명을 돌보는 따뜻함과 다부진 시선을 갖는 것은 참으로 근사한 모습이구나.
나의 글 쓰는 삶이 꼭 이러했으면 좋겠다.
약간의 여유로움과 태평함, 그리고 따뜻함과 다부짐을 동시에 갖는 삶이길.
Abstract Matters
신미경 (1967~, 한국)
우리 모두 삶이 다르고 각자 놓인 환경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비슷한 작업을 한다는 것이 이상했던 그녀는 스스로에게 시차와 낙차가 없는 작업을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메종코리아 신미경 작가 인터뷰 기사 中 ('22.4.1)
코로나 2년 반, 이 시절은 각국의 작가들이 도시 봉쇄와 강도 높은 격리 기간 동안 작업실에 앉아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이전의 작업들을 정리하는 회고의 시간이기도 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비누 조각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신미경 작가가 연남동 CR콜렉티브에서 비누 조각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을 선보였던 전시 [Abstract Matters]의 작품. 무려 25년을 비누에 매달리다 잠시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인데 난 의외로 비누 조각보다 이 때 선보인 조각들에 깊이 감화되었다.
아주 오래된 도시의 잔재, 폐허가 연상된 전시였다. 쏜살 같이 흐르는 시간들 그리고 흔적의 깊이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시간'을 다루는 작품 앞에선 늘 마음이 낮아지고 목이 부드러워진다. 울퉁불퉁한 표면과 패인 자국, 두꺼운 널판지 종이를 구겨놓은 것 같은 형상.. 사람의 굳은 살과 주름, 손길을 받지 못한 오랜 물건, 발길이 없어 폐허가 된 땅이 떠올랐다.
대체 어떤 재료들로 만든 걸까?
폐 고무판, 스티로폼, 유리판, 돌 가루, 철 가루, 금박, 은박, 그리고 제스모나이트(Jesmonite).
건축과 환경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재료들을 새롭게 탐구하면서 작가가 거쳤을 수없는 노동과 실패. 실제 이 작업들을 하면서 작가는 재료들이 만들어 낸 우연성에 많이 기대었다고 인터뷰했단다. 우연에 기댄 작품들이 이토록 조각적이고 회화적일 수 있다니 놀라운 창작의 세계다.
비누 조각으로 이미 이름을 널리 알리고 조각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단단히 가진 작가도 이토록 참신하고 우연한 시도를 하는데 나는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신미경 작가의 작품 앞에서 부끄러운 심정을 감출 길 없어 멍하니 있던 CR콜렉티브에서의 내 모습을 기억한다.
숙고(熟考)의 서재 Room for Reflection
강애란 (1960~, 한국)
한 개인이 최소한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by Virginia Woolf
서재에서 빛이 난다!!
가까이 다가가 책장의 책들을 보니 모두 '여성'에 관한 책이었다. 라이팅 북(Lighting Book), 가상의 책, 날아다니는 책의 형태로 개화기 엘리트 여성, 일제강점기 유학파 신여성, 위안부 여성, 서구 여류 문인, 여성 예술가들을 서재 안으로 모두 불러 들였다.
아아! 결혼 전부터 지켜 온 나만의 서재 공간, 아이를 낳고 첫 1년간 공간 구분을 위해 잠시 서재를 없앴던 것이 큰 화근이 되어 몇날이고 우울증을 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성이, 아니 엄마가 생명력 넘치는 창작을 지속하기 위해 공간을 사수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울 줄 엄마 이전의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조명이 어두운 서재 공간 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책 작품을 통해 강애란 작가는 꾸준히 여성 이야기를 하겠다는 의지를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권리 신장과 환경 개선을 위해 끊임 없이 외쳐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듯한 라이팅 북들. 반짝반짝.
공간 자체가 작품이었고 곧 위안이었다.
친구의 서재를 구경하는 것처럼 천천히 공간을 걸으면서 떠오르는 책들도 있었다.
여성 예술가들의 리추얼을 다룬 <예술하는 습관>, 여자들의 책 읽기에 대해 말한 <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 읽기>, 내향인 작가의 치유 에세이 <명랑한 은둔자>,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 여성의 눈으로 본 세상을 전하는 계간지 <우먼카인드>.. 이외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글들은 지금도 쏟아진다.
작은 집에서 고집스럽게 내 서재를 주장하는 일이 방 하나 없는 남편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서재 공간을 지키기 위해 장난감을 안 사는 엄마가 되었는데 아이가 안쓰럽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작가도 아니고 기고가도 아니며 잘 나가는 블로거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고집할 일인가 싶어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에 흔들릴 때마다 강애란 작가의 숙고의 서재를 떠올리기로 한다. 그저 내겐 당연한 공간이 바로 이 곳이라고. 모든 인간에게 밥 먹을 식탁, 배변을 위한 변기가 필요한 것처럼 내겐 꼭 책상과 책장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 서재가 있어야 한다고.
2022.04.22
불안하고 어렵고 힘들 때마다
떠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