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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조이 Apr 15. 2022

엄마의 첫 미술공부

난해한 미술의 숲을 거닐다


나는 그림이 좋았다.
그림 자체도 좋았지만
그림이 발산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수십 번 반복해
책을 읽다 보니 신기하게도
양식(style)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공부의 위로> 中 



사회과학을 주로, 경영학을 복수로 전공하고 단순한 관심으로 영어학을 부전공으로 삼았던 대학 시절 나의 배움이란 것은 늘 '실용' 그러니까 '쓸모 있음'에 맞닿아 있었다. 어떤 수업을 들어가도 그 강의실에서 언급되는 내용들은 어린 내가 언뜻 듣기에도 세상 살아가기에 꼭 필요한, 매우 실용적인 지식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성향은 지극히 자연계열(이과)이라 교양도 <수의 세계>, <통계학 입문> 같은 과목들을 즐겼다.


이성과 논리와 합리로 둘러싸인 그 학문들에 지적인 매혹을 느끼며 캠퍼스를 걷던, 15년 전 내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다. 말빨, 글빨로 대학 4년을 버티는 혁명 정치외교 학도들 사이에서 글 실력을 키웠다. (내향형 인간이라 토론 실력을 키우지 못했음이 못내 아쉽다) 매일 아침 경제신문을 함께 읽고 시사경제 리포트를 제출하는 경제경영과 학생들 틈에서 경제적 안목을 길렀다. (이 지식은 자산 0원부터 시작한 신혼부부 재테크에 크게 일조한다)   

 

정치경제와 개인의 삶, 국제정치와 힘의 논리, 숫자로 해석하는 사회현상, 경제 이해와 부의 상관관계 등을 읽고 쓰고 말하는 곳, 대학에서 본 세계는 대학 이전의 세계와 사뭇 다른, 그야말로 드넓고 광활한 세계였다.  


대학을 졸업하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정이 내게 남긴 쓴 맛 인생을 가볍게 뒤엎고도 남을 무언가를 만나지 않을까, 생각하며 살았다. (이 기대감에 부풀어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지난 날의 내게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다)    




예술과의 첫 만남, 그 따뜻한 회고


북서울시립미술관 <파도가 지나간 자리> 中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새내기를 맞이하는 OT 자리에서 내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낀다 고백 비스무리한 것을 했던 07학번 신입생 K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누나가 문학이랑 예술을 알면 정말 멋있는 여자가 될 것 같아요"


K의 이 말과 동시에 떠올랐던, 첫사랑 W. 그가 때마다 내 앞에 가져다준 선물들은 모두 문학책이거나 고전 음반, 취미로 출사 나가 찍어 온 경복궁과 북촌 사진이었다.   


날 좋아한 남자 둘이 열광하는 문학과 예술.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도 한 번 즈음은 관심가져도 되는 분야 아닐까. 그들과 연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이 진심 담아 내게 주는 말 한마디, 글귀, 예술과 연관된 선물들을 이해할 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들이 장 그르니에와 까뮈를 이야기하는데 반대편에서 내가 국제유가와 금리 상황을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이렇게 신청하게 된 교양과목이 있으니 <서양문학의 이해>와 <미학의 이해>였다. 시청각 자료를 동원해 서양 고전과 그리스 문화를 전하려 했던 열혈 교양 교수님들 덕분에 난 그 수업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정치학방법론 수업과 미디어 영어 수업 사이에 들었던 서양문학 강좌는 내게 여백이라든지, 쉼, 안정감, 사색, 여유 같은 말랑말랑함을 선물해 줬다. 시사경제분석 수업과 국제정치론 수업을 마치고 들어간 미학 강좌에서는 누구도 내게 던지지 않았던 질문들, 가령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아름답지 않고 추한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묵직한 이야기들에 대해 나의 내면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귀 기울여볼 수 있었다.  


07학번 신입생 K와 첫사랑 W와 교양 교수님들이 열어준 세계, 그러니까 내가 잠시나마 동경해 마지 않았던 정치경제 세계보다 더 깊고 심오해 깊숙이 흉져있던 내 상처를 적극적으로 만져주는 그 예술의 터에 이따금씩 놀러갔던 기억이 난다. 다정하고 너그러웠던 그들 덕분에 예술이 있는 곳은 따뜻한 동네라는 이미지를 품고 사회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대학원과 연구소 생활이 시작되면서 예술은 점차 멀어진 것 같았지만, 스물 아홉 플랜B 없이 퇴사를 감행하자 마자 등록한 곳이 인문학과 예술을 가르치는 고가의 아카데미였으니 내가 얼마나 그 세계를 그리워 하며 직장 생활을 했었는지 알 만하다.          




어렵다 여겨지면 함께 할 사람을 찾아


2020 가을 전시모임 커뮤니티 아이아트유 수업 중


인문학과 예술의 숲에서 넋을 놓고 이것 저것 바라보고 들여다 보다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분야가 미술이었다. 문학은 슬펐고 음악은 묘했고 철학은 졸렸다. 건축은 위압적으로 느껴져 부담스러웠고 사진은 찰나에 이루어진 결과라 생각하니 예술같지 않았다.


5년에 한 번 꼴로 '내 삶의 키워드 10' 목록을 수정 보완하는데 서른 무렵 '미술'이 이 목록 안으로 사뿐히 들어와 앉았다. 이 목록 안으로 들어온 친구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것이 내 삶, 내 공부의 사명. (인생은 실로 이터널러닝, Eternal Learning의 여정이다)


이렇게 나의 미술 공부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미술, 참 어렵더라. 화가가 캔버스 위에 발산해 놓은 그 세계를 나의 세계와 엮어 나만의 그림, 나만의 데이터로 저장해 놓는 공부는 매력적인 만큼 난해했다. 구상회화는 그렇다치고 추상회화에서 더 나아가 개념미술 작품 앞에 설 때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어느 길로 생각 걸음을 해야 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이렇게 부딪치다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 때면 억만장자가 된 것처럼 기뻤다)


자자, 어떻게 공부해 볼까. 공부할 과목이 생기면 서둘러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게 내 주특기 아닌가.


Step 01 미술사 속 명화
: 엄마 취향 커뮤니티, 청독 문화살롱


엄마가 되어 늦게라도 문화예술에 몸 담고 함께 공부할 이를 모집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아주 적은 인원이지만 예술을 공부할 수 있을 만큼 내면이 단단한 엄마들이 모여 3개월에 한 번씩 자기만의 주제 발표를 했다. 


누구는 로코코에 빠졌고 누구는 기독교 미술을 좋아했다. 어떤 엄마는 삶의 안정감이 필요할 때 고전주의 미술을 보니 좋더라고 했다. 고흐의 문장을 함께 읽으며 고흐 앓이를 했고, 밀레의 그림을 보며 지독하리만큼 반복되는 일상적 삶을 위로 받았다. 제멋대로 그린 듯한 마티스와 피카소의 그림에서 강렬함을 느꼈고, 동화적이고 장난기 많은 클레의 그림을 보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집에 걸어놓은 그림이나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명화를 공유하며 '우리 함께 그림 봐요' 라고 했다. 워낙 방대한 미술사 공부라, 중간에 클래식 공부도 짬내어 해야했고 그리스로마 신화나 문학 작품을 들여다 봐야했지만 모두가 진심으로 공부했다. 


주부도 부업과 재테크, 부동산 공부에 사활을 거는 이 시대에 이렇게 모여 미술 공부에 시간과 공을 들이는 그녀들의 맨 얼굴은 만날 때마다 빛났다. 시간과 거리가 적절히 맞은 이들은 전시회를 함께 가기도 했고, 그도 함께 하지 못한다면 블로그에 혼이 담긴 모임후기와 독후감을 올려 주었다.


이 때 만난 이들 중 일부가 지금도 나의 글 모임에, 책 모임에 발걸음해 주니 예술이 엮어준 이 인연은, 서로의 삶의 깊이와 성장을 응원해 주는 사이가 된 셈이다. 

  

Step 02 동시대 미술 읽기
: 도슨트가 운영하는 전시커뮤니티, 아이아트유


미술사적인 지식이 어느 정도 쌓이고 (그래도 머나먼 그대, 미술사) 명화가 내 삶의 중요한 이미지로 자리잡게 될 무렵 시선을 좌우로 돌리니 현대미술이 있었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표현주의와 추상표현주의를 거쳐 미술사 훑어보기를 마무리할 즈음, 팝아트와 포스트모더니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데 난해하기 짝이 없어 미술공부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친절한 미술 에세이도 많았지만 배움에 길을 잃은 이가 갈 곳은 전문가가 이끌어 주는 커뮤니티뿐, 그렇게 찾아간 곳이 아이아트유(I.ART.U)였다.


도슨트 강사 분이 정돈된 언어로 난해한 미술에 대해 다양한 주제로 접근해 주니 답답함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추천해 주시는 전시회를 다녀와 함께 강의를 듣는 미술애호 수강생 분들과 감상을 나누었다. 


그 때 알았다. 미술사도 그랬지만, 고난이도 미로와 수수께끼처럼 어려운 현대미술은 누군가와 감상을 나누고 교류할 때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는 걸. 감상자의 몫이 큰 작품일수록 이렇게 감상의 밀도를 높이며 공부해 나가야 한다는 걸 말이다.


아이아트유에 등록한 기간 동안은 거의 의무적으로 미술을 감상했던 것 같다.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 경매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며 흥미를 느끼는 것도 스스로 놀라웠다. 커뮤니티에서 만난 수강생 분들은 네 살 딸 아이와 갤러리와 아트페어에 다니며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기록하는 나를 격려해 주었다. 미술로 따뜻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아트유 커뮤니티 수강생 분들 덕분에 아기 엄마의 취향 탐구 여정이 즐겁고 신나는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미술사 놀이


(좌) 어린이미술사에듀케이터 수업 (우) 수업 실기


Step 03 딸 아이와 함께 미술사 놀이
: 국제현대미술교육연구회의 어린이미술사에듀케이터


한 살부터 네 살까지 엄마와 줄기차게 전시회를 보러 다닌 아이, 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엄마인 나와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려면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생각했다. 


전시회 관람, 창의미술 활동 그 자체도 좋았지만 엄마인 나도, 다섯 살인 아이도 액티브하게 즐길 수 있는 놀이로 '미술사를 접목한 미술 놀이'를 떠올렸다. 취학 전 아이들을 위한 인문학 열풍, 명화로 배우는 아동 미술 트렌드에 휩쓸릴 것 없이 우리가 함께 관람한 전시회를 떠올리며 집에서 간단한 활동을 해보자는 의도였다. 네 살 즈음 에바 알머슨의 꽃 그림 놀이나 앙리 마티스의 컷 아웃을 너무나 재미있게 했던 기억 때문에.


아이가 좀더 자라면 미술놀이보다 미술사를 주제로 한 대화의 비중이 더 커지지 않겠는가. 이렇게 역사의 문을 열어주면 방대한 미술사 속에서 아이도 자신만의 관심사와 주제를 따라 지식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위해 재미있는 공부 한 번 더 해보자, 해서 듣게 된 수업이 국제현대미술교육연구회의 어린이미술사에듀케이터 자격과정이었다. 미술교육계와 미술 인플루언서계의(?) 의 다양한 분들이 듣는 수업에 비전공자, 다섯 살 엄마가 신청한 과정이기에 분명 공부할 것은 많았으나 빠르게 필요한 부분만 흡수하여 집에서 바로 아이와 놀이를 시작했다.  


줌zoom에서 실기를 할 때마다 내 옆에 와 조용히 앉아 구경하던 아이는 내가 미술재료를 꺼낼 때마다 환호했다. 내가 조금 앞서가 배운 걸 아이에게 즐겁게 전해주는 이 과정은 나의 육아를 좀더 창의적이고, 좀더 다정하게, 좀더 신나게 해줬다. (나와 아이 사이, 우리 사이, 그림이 있어 참 다행이다)    

    

꼼지락 꼼지락 읽어본 책들


지금도 누군가 내게 묻는다.

나중에도 누군가 내게 물어올 것 같다. 


"그림을 왜 보세요?"

"미술책을 왜 자꾸 읽으세요?"


미술은요, 나의 일상과 소박한 경험들이 아름다운 것들이라고 일러 주었어요. 부정적인 시대를 살면서도 희망이라는 것을 붙들고 살게 해줬어요. 상처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어요. 우로나 좌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갖고 설 수 있게 해줬어요. 아, 더 이야기할까요? 미술은 나약하지 않게 해줬고 내가 누구인지 꽤나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해줬고.......... 




2022.04.15

미술 앞에 부지런히 나아가게 해준

미술 애호가들에게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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