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취향을 어떻게 지키나
엄마의 의미, 역할, 의무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보다,
엄마의 취향, 욕망, 이상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 <마음의 서재> 中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구나 자신의 취향을 즐겁게 소개하고 취미생활을 가꾸는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원한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제 자식의 이름보다 내 이름을 먼저 이야기하고, 제 자식의 미래보다 나의 현재를 더 의식하고, 돈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지금 내 영혼이 기뻐하는 것들에 에너지를 몰입하고, 어린이처럼 장래희망도 많이 가져보고, 욕망하는 것들에 대해 큰 소리로 수다 떨고, 모성의 기준 말고 나다운 모성에 대해 고민하기를.
기쁘게 상상한다.
엄마의 취향과 욕망과 이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별스럽지 않고 지극히 당연한 세상.
청춘을 기억하라 하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난 이십대를 떠올릴 때 전공이나 일, 만났던 사람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그 당시에도 나는 전공, 일, 인맥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나 보다. 전공 지식과 업무,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에 대한 기억 모두 희끗하다.
청춘의 요가와 독서, 그리고 내밀하게 쓰던 자기이해 에세이. 이 세 가지만 오롯이 기억난다. 아주 선명하고 정확하게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늘 내면 활동에 시간과 공간과 마음을 내어주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출근 전과 퇴근 후에 내 몸은 거의 항상 요가 스튜디오에 있었다. 반듯하고 기다란 직사각형의 요가매트 위에서 열 길, 백 길로 갈라져 지친 내 마음을 위로했다. 불완전하고 흔들리는 인생에 대해 서러운 생각이 들 때마다 완벽한 동작에 집착했다. 이마에서 시작된 땀방울이 몸을 타고서 마침내 발등에 도착했을 때 인생은 참을 만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선생들이 내게 요가하기에 적합한 몸과 근성을 가졌다고 이야기했을 때, 오랜 여행 끝에 찾은 숙소에 도착한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사방이 전면 벽거울이었던 요가 스튜디오의 정중앙에 앉아 스튜디오를 채우는 공기와 음악을 온전히 느꼈던 날, 아빠의 부재(不在)로 힘겨워 하고 자해했던 청소년 시절의 나와 화해했다.
독서와 글쓰기는 어떠했는가.
분노, 상처, 용서, 치유에 관해 쓰인 온갖 책들을 읽고 눈물을 쏟다가 결국 치유의 시작이 '자기이해'에서 비롯됨을 깨닫고 그로부터 7년 동안 나의 모든 것에 관한 글을 썼다. 카를 융의 <기억, 꿈, 사상>, 조지프 캠벨의 <블리스, 내 인생의 신화를 찾아서>,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 수전 손택의 <우울한 열정>, 장 그르니에의 <섬>, 알랭 드 보통의 <불안>, 파커 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황정은의 <百의 그림자>와 <야만적인 앨리스씨>가 나의 자기이해 글쓰기를 도왔던 자랑스러운 책들이다. 사랑과 눈물의 책들.
앞선 글 몇 편에서 한두 차례 언급했듯 이토록 단단하고 다정한(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나의 세계가 육아 여정과 함께 순식간에 막을 내렸다.
몇 차례 요가를 시도했지만 모유가 차오르는 가슴도 무겁게 느껴졌고(요가하다가 유축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던 요가 동료가 기억났다) 매트에 앉은 내 품으로 파고드는 아기를 감당하는 게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또 한동안은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다.
본캐보다 부캐가 중요한 사람, 일보다 취미가 더 중한 사람. 책임보다는 자유를 우선순위에 두며 살아 왔다보니 엄마가 되어서도 '어떻게 하면 경력을 이어나갈 job을 찾을 수 있을까'보다 '어떤 취미생활이 나다움을 더해주고 육아와 병행할 수 있을까'였다.(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오해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분들이 계셔 꼭 하고 싶었던 말, "저는 돈이 많지 않고요. 월급쟁이 남편과 빡세게 아끼고 저축하며 사는 전업주부입니다.")
그 생각 끝에 가닿은 것이 바로 미술이었고, 미술은 자고로 집에 앉아 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설치된 곳에 직접 가서 작품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에너지를 모아 봐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술 강사가 전수해 주는 지식이나 미술 평론가들이 말하는 비평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림 앞에서 진정성을 다해 서있는 나,
말 없이 내게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과 조각들.
고전 명화에서 근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평면회화에서 조각까지, 구상화에서 추상화까지, 특별히 설치미술의 입체적이고 개성적인 매력을 느끼면서 난 정말이지 이제 미술을 떠날 수 없겠구나 싶었다. 아이가 등원하면 삼청동으로, 한남동으로, 서촌으로, 강남의 미술관 혹은 갤러리로 달려가 픽업 시간이 되기 직전까지 전시회 이곳 저곳을 다녔다. 서너 개의 전시회를 본 날에는 다리가 퉁퉁 부어있었고 허리도 경직되어 있었고 끼니를 거르느라 배도 곯았다.
이렇게 나의 감상 이력을 쌓고 미적 DNA를 만드는 여정에 대단한 희열을 느꼈다. 전시회에 나가는 것만으로는 이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어 미술 애호가들의 전시모임커뮤니티에도 들어가 미술에 관한 다양한 취향을 나누고 전시회의 이모 저모에 대해 듣고 필기했다. 관심 있는 작가와 갤러리의 인스타 계정을 엿보고, 예대에 재학 중인 친구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했다.
밤잠 들기 어려운 날에는 미술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운전 중에는 미술사를 요약해 주는 강의를 들으며 지루함을 달랬다. 아이를 데리고 아트페어에도 몇 차례 가서 가까운 미래에 미술품을 컬렉팅할 내 모습을 상상하며 아이쇼핑을 즐겼다.(아트페어에 다녀온 날은 아이가 저녁도 먹기 전에 잠에 곯아 떨어진다, 후후)
인스타그램에 3년 가까이 전시회 관람 후기를 꾸준히 기록한다. 공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라인 상에 나만의 전시회 관람 노트를 만들어 둔 것이다. 그래도 몇몇 분들이 공감을 해주시고 같은 전시를 관람한 분들과는 감상평을 댓글로 나누며 소통하는 계정으로 발전해 왔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관계를 가져온 지인들이 요새 특히 많이 묻는 질문이 있다.
(지속성) 어떻게 그렇게 꾸준하세요?
(몰입도) 취미에 몰입할 수 있는 비결은?
(단단함) 취향을 단단하게 가꾸시네요. 아이도 있는데..
사랑스럽고 따뜻한 그녀들을 위해 '엄마의 취향을 단단히 가꿀 수 있는 팁'을 정리해 봤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이기는 하지만)
첫째, 자기이해를 돕는 내면활동으로 '자기다움'을 탐구하자.
삶의 거의 모든 분야가 자기이해로부터 시작된다. 취향을 가꿀 때도 마찬가지다. 경험과 배움의 단계를 거칠 때 사소한 것이라도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자기에 대해 수없이 질문하고 탐색한다. 그래야 자기다운 모습을 설계할 수 있고 나만의 취향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취향 지도는 취향을 더욱 섬세하게 발전시킬 수 있게 한다. 단순히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와 근현대 한국 여성 아티스트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는 취향 탐색의 수준이 확연히 다른 것이다.
기업과 시장이 만들어 낸 트렌드나 타인의 취향에 휩쓸리지 말고 나의 내면과 꾸준히 대화해 보자. 이 대화를 돕는 활동은 창작, 감상, 운동 등 그 종류와 영역이 무궁무진하다. 내 경우 전시회를 다녀와 가볍게라도 감상 후기를 적어 두거나 관련 글쓰기를 하면서 나다움을 고민한다. 그리고 다음에 갈 전시회를 리스트업해 두면, 내 취향의 전시, 내가 선호하는 갤러리, 계속 탐구하고 싶은 아티스트 등이 생겨난다.
다음으로는, 지속적인 몰입이다.
아무리 재미있고 신나는 취미 활동도, 제 아무리 고상한 취향도 먹고사니즘이나 인간관계, 건강문제 등으로 힘들 때면 사소하거나 하찮게 여겨진다. 하지만 지속성만큼 취향을 단단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탁월함보다 꾸준함의 열매가 더 달다는 것을! 깊이를 다루지 못할 것이라면 얕게 오래도록 근성 있게 지속해 보자. 기쁠 때, 슬플 때, 우울할 때, 화날 때, 행복할 때, 감사할 때 시시때때로 몰입하면 그 사이 나의 취향이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 잡히지 않던 것이 잡히는 느낌이랄까.
마지막으로, 나의 취향이 가족과 조화롭도록 한다.
엄마이기 때문에 신경써야 하는 이야기. 우리가 고집스럽게 취향을 사수하고 취미 생활을 이어나갈 때 나의 가족도 함께 즐거울 수 있도록 애쓴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책감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오래도록 취향을 누리고 취미 생활도 꾸준히 할 수 있다.
주말이면 어김 없이 남편과 아이와 함께 전시회에 간다. 수도권이라면 거의 어디든 가는 것 같다. 먼 거리라도 꼭 가야한다는 나의 단호함에 따라와 주는 두 사람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미술관에 간다면 아이도 그 곳을 즐겁게 추억할 수 있도록 놀이 프로그램을 예약하기도 하고, 아이가 실컷 뛰어놀 수 있는 정원이 마련된 미술관에서 오후 한때를 보낸다. 아이가 평소에 좋아하는 화풍의 전시회에 데려가 관람 후 굿즈 쇼핑도 한다. 집으로 데려온 굿즈를 어디에 둘까 고민하는 아이가 무척 사랑스럽다.(인테리어에 부쩍 관심이 생긴 아이 덕분에 집안의 물건들 위치가 자주 바뀐다)
전시와 연계된 미술놀이도 집에서 한 번 즈음 해주고, 화가를 만나고 싶다고 하면 작품을 준비 중인 작가 친구도 만나 함께 그림도 그리고 사인도 받아보게 한다. 미술관을 소재로 한 그림책을 함께 보기도 하고 아이가 푹 빠져있는 명화 보드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메뉴개발자인 남편은 독특한 이슈의 식당을 늘 가보고 싶어한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예약을 할 때 근처에 푸드인사이트를 얻을 만한 장소를 미리 물색해 두고, 혹 남편에게 지루했을 수도 있는 전시를 다 보고 나면 그 장소로 이동해 식사시간을 보낸다.
3년 넘게 나와 함께 전시회를 다닌 남편은 이제 전시장에 입장하면 작품들을 죽- 둘러 보면서 '괜찮은 전시회'인지 '어려운 전시회'인지 먼저 가늠하고 (어렵다 느껴지면 '예술이라..'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리플렛을 훑어 보며 나름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듯하다.
엄마는 한 주간 보고 싶은 작품을 봤고,
아빠는 근사한 식사를 경험 했고,
아이는 일상 속 예술을 즐겼다.
위대하고 찬란한 라이프스타일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엄마인 나의 취향, 그 세계 안에서 가족 모두 함께 작은 행복들을 경험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렇게 쓰면서 이것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이제 아이가 먼저 물어본다.
"엄마, 오늘은 어떤 미술관에 가지?"
2022.04.08
도저히 엄마로서의 의무와 책임에만
몰입할 수 없었던 나의 지난 시간들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