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너조이 Apr 01. 2022

아이의 언어가 날 치유한다

그림 앞에 선 아이의 말, 말, 말


아들과 전시를 보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다.
작품 앞에서
아이들이 보여주는 즉각적인 반응은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잃고 싶지 않았던 무엇이었다.
- <자아, 예술가, 엄마> 中



순수미술을 지향하는 한 예술가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듣고 축하 인사를 나누는 얼마 전의 통화에서 '정말 축하해. 임신, 출산, 육아, 모성이 여성 예술가의 여정에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너에게 훌륭한 영감이 되어 줄거야.' 라고 말하며 스스로 조금 놀랐다. 1~2년 전만 해도 임신 소식을 전해오는 이들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못해주던 나였기에. 무엇이 나를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


아이를 낳고서 한 1년 정도는 언어를 잃어버린 듯 살았다. 실어증 같은 것은 아니었다. 눈물, 콧물 없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고된 육아로, 이 때 난 해야할 말, 쓰고 싶은 글, 읽어야할 글 모두를 잃어 버렸던 것 같다.  


출산 전까지 사회과학과 인문학 텍스트를 읽고 쓰는 일이 나의 일이자 또 작은 기쁨이었는데. 연구소에서 보고서 쓰던 습관이 아직 몸에 배어 보고용 단어들이 눈앞에서 공중 부양하던 때였는데. 아침에 눈을 떠 마지막 수유를 마치고 잠들기까지 하루 종일 옹알이 하는 아이 앞에서 혀 짧은 소리로 베이비 토크를 하며 꺄르르 거리는 엄마가 된 내 모습이 믿겨지지 않았다. 


어른의 언어와 아기의 언어, 아니 몸짓 사이에서 일렁이는 거친 파도 위를 서핑하는 기분이랄까. 심지어 울림소리(ㄴ, ㄹ, ㅁ, ㅇ)나 된소리(ㄲ, ㄸ, ㅃ, ㅆ, ㅉ) 발음을 냈을 때 방긋 미소 짓는 아기가 너무 귀여워 그 단어들을 집중적으로 발사하는 내가 스스로 우습기도 했다. 


아이를 재우고 겨우 책을 펼치면 백지 위의 검은 잉크가 그림처럼 보여 멍하게 감상하다 잠든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육아일기라도 쓰면서 감정을 추스려보자 해 노트북을 열었지만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을 가득 쓰다가 결국 삭제 버튼을 누르고서 아이 기저귀를 갈러 일어서곤 했다.  


언어는 꼭 그 사람의 정신세계와 품격을 드러낸다고 했던가. 나의 빈약한 정신세계를 그렇게 수차례 확인하고나니 그래 다시는 말과 글에 관한 의미 있는 활동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당시 내 삶의 언어 영역은 꼭 이 정도 수준이었으니까.


(읽기) 전시회의 리플렛이나 캡션 읽기

(듣기) 아이의 옹알이 듣기 혹은 해석하기

(말하기) 아이 앞에서 그림책 소리내 읽어주기

(쓰기) 아이와 함께 갈 전시회 일정 포스트잇에 적기  


책장에 꽂혀 있는 무수히 많은 어른의 책들은 장식품이 되어가고 있었고 오래도록 글을 쓰지 않은 블로그는 저품질이 되어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곳이 되었다. 전시회의 리플렛에 빼곡히 적힌 아티스트의 언어들은 머리를 쥐어 짜가며 겨우 읽었다. 


이토록 어려운 글자 생활이라니.  




그림이 내게 준 선물



아픔이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의 굴레가 되지 않고 길이 될 수 있을까. 슬픔이 어찌 하면 어둠이 되지 않고 빛이 될 수 있을까. 상처는 어떻게 해야 회복의 길에 접어들 수 있으며, 내 인생에 지워진 한계는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을 생각하며 청춘을 보냈다. 이 질문을 붙들고 사유하는 건 내게 마치 청춘의 미션 같은 것이었다. 


해결의 실마리는 오랜 요가 수련과 인문학 독서, 신앙 생활 끝에 만난 예술, 특히 미술에 있었다. 요가 후 온 몸에 흐르던 땀 방울, 서양 인문학을 공부하다 만난 그리스의 작품들, 교회에서 만난 크리스천 아티스트들과의 대화가 날 계속 그림 앞에 서게 했다. (나의 젊은 날은 이렇게 요가, 인문학, 신앙으로 요약된다)


아직 말문이 트지 않은 딸 아이를 아기띠에, 유모차에 두고 전시회장에서 많은 그림을 만나면서 '언어 생활의 답답함을 해소함'과 동시에, 내 인생의 오랜 과제였던 '상처 치유'를 경험했다. 오직 언어로만 세상을 해석하고 자기 표현을 하던 내 삶에 그림이 들어와 나의 상처와 눈물을 씻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왜 인간이 미술과 함께 수천 년 역사의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하여 미술 안에 담긴 지혜와 감동과 교훈이 후대 혹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감과 메시지를 전해 왔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삶의 고비마다 왜 이토록 그림이 고픈 걸까, 스스로 던진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된 것.  


 


엄마, 눈물 모양이 예뻐서 그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런데 이보다 더 경이로운 사실이 있었으니, 내가 최근 지인들에게 '아이를 낳으니 너무 좋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33개월 즈음 말문이 트인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언어적 성장을 이루어 그야말로 수다쟁이 소녀가 되었는데, 미술관에서 아기띠나 유모차에서 눈만 꿈뻑이던 아이가 그림을 보며 종알종알 말할 때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 


엄마, 결혼은 춤 추는 거야. (아빠와 결혼한다고 말하며)

엄마, 눈물 모양이 예뻐서 계속 그려. (스케치북 한 권을 모두 눈물 그림으로 채우면서)

엄마, 왜 망치가 이 여자를 아프게 하지? (여성 억압을 표현한 그림 앞에서)

엄마, 한글 전시회 너무 좋았어. 한글 잘 할께. (44개월 무렵)

엄마, 이 그림은 너무 장난치는 것 같은데 예쁘다. 

엄마, 나비가 혼자 있는 것보다 여럿이 있는 게 더 좋아.

엄마, 조금만 뒤로 서. 몸 닿으면 안돼. (설치작품 앞에서)

엄마, 이건 바다일까? 하늘일까? 아! 바다다. 색이 진해. (청록색을 주로 쓴 추상화를 보며)

엄마, 나 이 그림 사줄래? (아트페어에서)

엄마, 하늘은 눈(eye)이 왜 하나야? (눈=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이 기분을 알 거라 믿는다. 3년 가까이 엄마의 말을 듣기만 하던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할 때 그야말로 언어의 향연, 찬란하고 향기로운 말 잔치에 초대된 기분. 딸 아이를 낳고 한동안 어두컴컴했던 나의 언어 생활에 빛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이의 언어가 그림 앞에서 더욱 다채로워지는 걸 보면서 지난 3년간 아이와 그림 앞에서 눈맞춤하며 놀았던 나 스스로가 대견하게 여겨졌다. 


특별히 42개월 무렵, 스케치북 한 권 전체를 '우는 여자', '눈물 모양 그림'으로 가득 채우고서 "엄마, 눈물이 너무 예뻐서 계속 그려. 많이 울어도 돼." 라고 할 때 15년 넘게 흘렸던 나의 눈물을 아이가 닦아주는 듯했다. 교회 건물 옆에 서서 우는 여자, 커피를 마시며 우는 여자, 어린이집에서 우는 친구 등 정말 다양한 '우는 사람'을 그렸는데 네 살 딸 아이의 눈물 그림을 보고 내 아픔이 씻겨 내려가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앞으로도 우리 집 꼬마 아티스트에게 자주 그림을 부탁하려 한다. 조그만 입술로 "I want to be an artist!" 라고 말하는 아이는 내가 그림을 그려달라 하면 사뭇 진지한 얼굴로 꽤 많은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42개월 무렵 그린 '우는 사람' 그림




2022.04.01

내 아이의 언어와 그림으로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이전 03화 미술관을 경유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