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오티움을 찾아가는 엄마 이야기
계룡산에서, 저는 먼저
'나'가 읽고 싶다는 책들을
읽어주었어요.
그렇게 3년을 읽으니 서가에
취향과 체계가 생기더군요.
- <엄마의 20년> 中
엄마가 된 꽤 거센 충격에 휩싸인 '나' 그리고 뱃속과 사뭇 다른 세상의 호흡에 적응해야 하는 '아기'. 우리는 '완전한 초보'라는 같은 선 위의 두 존재였다. 문제는 초보 엄마도 엄마는 엄마라서 본인을 살뜰히 돌보는 것과 동시에 아기 돌봄도 해내야 함이었다. 그것도 틈 없이 완벽하게. 하루 열 번 젖가슴을 찾는 '아기'와 30년차 극단적 개인주의자 '나'를 함께 보살피는 일상은 영육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20년 넘게 취미란에 독서를 적은 나였는데 아이가 곤히 잠들어있을 때조차 가만히 앉아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와 인사이트를 처리할 수 있는 자아가 내 안에서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와 단둘이 숨 쉬는 이 집에는 오로지 살림하고 육아하는 여자가 쉼 없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완모(이런 단어도 배웠다) 중이라 소확행이었던 아메리카노와 약간의 알코올도 마실 수 없었으니 나의 젊은 시절 몇 안 되던 취향들은 완전히 박살난 셈이었다.
여자 어른이 되어가는 건 이토록 힘든 일이라고.
이 이야기를 해주는 다정한 여자 어른이
왜 내게는 없었던 걸까.
임신 전에도 워낙 잠이 없어 하루 중 잠시 빌려 누워있던 침대, 아이와 침대에 누워있으면 온갖 사랑이 다 피어 오른다는 아름다운 엄마들과 달리, 반나절 가까이 아이와 침대에 있다 보면 우울해지고 좌절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답답해서 아이와 함께 나간 백화점. 수유와 기저귀 교환이 용이하다고 해서, 단지 그 이유때문에 갔다. 백화점 갈 일이 원체 없던 인생이라 인포에서 유모차를 대여해 아이를 누이고 반듯하고 정갈한 통로를 걷는 내 모습이 무척 어색했다. 수유 원피스를 입고서, 단정하고 절제된 유니폼의 백화점 직원들 사이를 걷는 건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유모차를 끌고 가니 엘리베이터에서는 아이의 개월수는 물론 모유인지 분유인지, 이는 얼마나 났는지, 아들인지 딸인지 등의 질문 세례를 붓는 어르신들이 계셨다. 수유실이 있는 유아층에는 영유아 도서전집 출판사가 있었다. 꼭 나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엄마가 된 이들에게 애착이론과 다중지능이론 같은 어마무시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들의 전집 시리즈를 소개하고 그 자리에서 구매계약을 쓰게 했다. (첫 전집을 이렇게 샀다)
윗층의 문화센터 수업이 끝나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식사하는 엄마들도 보였다. 물론 그들의 옆에는 짝꿍처럼 아기들이 쪽쪽이나 젖병을 물고 있었다. 문센에서 다양하게 오감을 자극 받고 두뇌를 쑥쑥 키운 그 아기들이 그렇게 평화를 찾아가는 동안 엄마들은 마치 입을 봉인해제한 것처럼 수다를 떨었다.
나도 저 무리에 껴서 신나게 이야기하고 카페의 아이스 음료도 벌컥 마시면 이 우울감이 사라지는 걸까, 내 삶이 조금 괜찮아질까, 우리 아이도 문센에서 놀면 총명하게 성장하는 걸까, 이렇게 어릴 적부터 문센 친구도 사귀면 사회성이 좋아질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쏟으며 여러 날을 보냈다.
내 마음의 대답.
No.
작은 거실에서 몸을 뒤집고, 배를 밀며 움직이고, 무릎으로 몸을 세워 기고, 몸을 일으켜 세우는 걸 가만히 볼 때마다 이 작은 아이를 미술관으로 데려가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그 곳에서 아이를 재우고 잠시 쉴 수 있을까, 아이가 낮잠에서 깨자마자 보이는 것이 엄마와 그림이라면 어떨까, 생각했다.
몇 차례 아기띠에 아이를 고정시키고 지하철과 버스를 환승하며 도착한 전시회. 전시회에 입장하기도 전에 체력은 완전히 소진되었지만 아이와 내 눈에 그림을 담을 생각에 다시금 온 몸에 힘이 채워졌다.
아이야, 집에서는 기운 없이 축 처진 엄마지만
이 곳은 엄마가 놀이터처럼 신나게 여기는 곳이란다.
엄마가 즐거워하는 걸 너도 함께 누려주길.
이건 조금 어둡게 느껴지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색이고, 이 작가는 인생이 참 슬펐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아픔을 잘 참았기에 우리가 이 그림을 보고 감동할 수 있는 거라고, 이 그림은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한 그림이라 뭔가 흥이 느껴진다고, 걸음마도 시작하지 않은 아이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할 때마다 왜인지 아이가 내 눈을 가만히 쳐다봤다.
집에서 젖 물리고 이유식 만들고 불안한 눈빛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와는 다른 모습, 진정한 오티움을 찾아 아이 앞에서 또 다른 아이처럼 놀고 있는 엄마를 본 것이다. 그림 앞에서 교환하는 우리의 시선이 꽤 근사하고 괜찮게 여겨졌다.
미술관의 모든 것이 우리 두 모녀에게 적정했다.
적정한 공간.
온도와 습도가 우리에게 좋았고, 적당히 개방되어 있으면서 또 부분적으로 폐쇄적인 공간감 역시 안정적이었다. 아기띠를 하고 있거나 유모차를 밀며 그림을 보는 엄마에게 어느 누구도 아이의 개월 수나 이빨 개수, 성별을 묻지 않았다. 정말이지 집에 있으면 그렇게 울던 아이가 미술관에서는 울지 않았다. 간식을 준 것도 아니고, 신나는 핑크퐁 동요를 틀어준 것도 아닌데, 단지 미술관에 왔을 뿐인데.
아이와의 미술관 산책을 루틴으로 만들기 위해 서둘러 운전을 배웠다. 장롱 속 면허증을 꺼낸 유일한 이유, 아이와 미술관에 가기 위해서. 서초동의 예술의전당,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은 물론, 삼청동이나 성수동의 갤러리에 마음 먹은대로 쉽게 가려면 운전이 필수였다.
기저귀, 이유식, 간식, 물티슈, 여벌 옷, 치발기, 딸랑이, 거즈수건, 가벼운 담요. 이 모든 것들을 큰 가방에 담고 서울 시내를 달려 온 전시회들을 다녔다.
아기띠에 매달려 있는 아기와 큰 가방을 내 몸에 걸어두고 그림을 보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침대에서 아이와 뒹구는 것보다 행복했다. 그것이 내게 옳았다.
아이와 함께 본 그림.
그림은 나를 둘러싼, 미치게 멀미나는 이 육아와 살림에 대해 거리를 두게 해줬다. 엄마로서의 정체성은 나의 '전부'가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일부'라는 사실도 일깨워줬다. '엄마됨', '엄마의 자격', '엄마의 책임', '엄마의 한계' 모성의 세계에 들어서면 지독하리만치 듣는 이야기들 속에 스스로를 파묻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해줬다. 시대가 요구하는 모성과 내 생각에 옳은 모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 않기로 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표현된 자유분방한 그림 앞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색채를 극도로 절제한 그림을 볼 때면 '알 수 없음' 상태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정돈되었다. 인물화를 볼 때는 내가 여태 수용하지 못하고 살았던 부류의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차가운 추상화 앞에서는 이성의 끈을 되찾기도 했고,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작품 너머에 있는 자녀들의 삶을 상상했다.
그림의 위대함은 아이가 여섯 살이 된 지금도 내게 유효하다.
아이는 한 달, 한 해가 달라 육아에는 익숙함이라는 것이 끼어들 틈이 없는데 그 때마다 그림이 날 가르친다. 아이에게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아이에게 가르칠 것, 아직은 가르치지 말 것 등 그 가르침이 하도 섬세하여 이루다 말할 수 없다. 좋은 선생이다.
그림이 내게 준 가르침 중 가장 크고 놀라운 선물은 아이를 고유하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바라보게 해줬다는 점이다. 나는 그림 덕분에, 여태 내 아이를 어느 집 자식과 비교한 적이 없다. 딸은 엄마인 나의 부속품 혹은 분신이 아니라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갈 인격체라는 점을 전시실을 걸으며 배웠다. 난 아이 삶의 지지자요, 응원객일 뿐, 그 뿐이라는 걸.
아이와 함께 보는 그림이 한 점, 두 점 늘어날 때마다 초보 엄마와 아기의 삶에 작은 빛들이 하나씩 들어왔다. 우리 모녀가 충만하게 성장한 이유. 그 충분한 이유.
2022.03.11
나의 육아가 견고한 배가 되도록 해준
수많은 그림들을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