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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피스 Oct 15. 2019

미안, 난 엄마처럼 살 수 없었어.

나도 내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지.

낯선 사람과 쉽게 친해지고, 어떤 곳에서도 잘 적응하는 사람. 다수 앞에서 말해야 할 때면 크게 긴장하지 않고 곧잘 해내는 사람. 밝고 쾌활해 별 걱정 없이 사는 듯 보이는 사람. 즉, 지극히 외향적인 사람. 남들이 말하는 나의 성격이다. 그리고 나 또한 꽤나 오랫동안 ‘나는 외향인’이라는 사실에 큰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조금 불편했다. 그 불편감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확실했다. 중학교 시절, 학기를 신나게 보냈지만 방학이 시작되면 친구 한 명 만나지 않고 집에서 나올 생각 조차 안 했다. 갯벌 속 조개처럼 진흙에 파묻혀 문을 꾹 닫고 한두 달을 보내야 그다음 학기를 살아낼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분명 새로운 친구와 낯선 교실에 잘 적응할 것을 알면서도, 새 학년으로 올라가는 2월이 되면 매년 이유 없는 복통에 시달렸다.      


그렇다. 난 관계 속에서 소진된 것이었고, 낯선 환경에 적응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다. 또는 알았음에도 인정하기를 거부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인데, 그러한 감정들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느낄 법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감정 자체에 수치심을 느꼈다.

 

| 맞지도 않는 옷을 꽤 오래 입었더군


뭘 그런 것 같고 ‘수치심‘이라는 단어까지 거론하냐 싶겠지만, 그건 나의 열등한 무언가를 건드리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모든 불편함에는 역치가 있다. 불편한 감정을 오래, 또는 많이 참으면 무뎌지는 게 아니고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터진다. 나에게는 그 시점이 스물넷의 나이었던 것 같다.

      

특별한 계기 없이, 어떠한 촉발 사건 없이 내가 나인 게 어색해졌다.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끼워 입은 것 같았다. 사람을 만날 때도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누구에게나 살갑게 대했지만 사실 헤어지는 것도, 멀어지는 것도 크게 아쉬운 마음이 없다는 걸 자각했기 때문이다. 겉보기와 달리 실제  관계들은 참 피상적이었던 것이다. 돌아보니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는 했지만, 살면서 찾아오는 고민들과 내 안의 감정들을 나눌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든 사람과 친하면서, 누구와도 친밀하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자각하자 거대한 강물처럼 외로움이 밀려왔다. 사람들로 가득한 거대한 육지 옆에 완전히 동떨어진 섬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찾아와 주기를 바라면서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기를 바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시기는 취준생 시기와 겹쳤다. 그래서 취업준비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대부분의 모임들을 끊어냈다.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으나 한편으로는 나를 끊임없이 돌아볼 수밖에 없게 하는 나날이었다. 특히 성장과정을 쓰기 위해 나는 내 미취학 시절의 기억부터 끄집어내야 했다. 그때, 내가 아주 오래 잊고 있었던 내 안의 다른 단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아닌 '엄마가 원하는 나'로 살았구나

      

어린 시절 나는 사진을 찍어도 늘 가장자리를 택하고, 앞자리보다는 뒤에서 두 번째 줄 구석이 편한, 수줍음 많고 내향적인 아이였다. 활달하고 인기 많은 걸스카우트 아이들을 내심 부러워했지만 그런 ‘인싸’ 그룹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못한 아이였다. 보통 존재감을 가지고 그냥 ‘있는’ 아이 었다.     


그런 어린 나는 엄마를 굉장히 좋아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외향적인 성격을 좋아했다. 엄마는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쉽게 말을 트고 분위기를 휘어잡으며 사람들을 웃게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늘 엄마가 중심에 서있는 듯했다. 어색했던 모임도 엄마만 오면 밝아졌다. 그런 엄마를 사람들은 좋아했다.

     

외향적인 성격의 엄마는 나에게도 그러한 태도들을 뭐 어렵냐는 듯 요구했다. 사진을 찍겠다며 오늘 처음 만난, 어색하기 짝이 없는 엄마 친구 아들 볼에 뽀뽀를 하라고 한다던가, 두부를 잘못 사 왔을 땐 슈퍼 아줌마한테 얘기해서 다른 걸로 교환을 해오라던가. 치킨 배달이 왔을 때는 내가 나가서 받아오라던가,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내가 먼저 인사를 하라고 하는 등의 것들 말이다. 거부한다고 크게 혼이 난 것은 아니었으나,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고,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내가 못나보였다.

      

그런 나의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며 깨달았다. 나는 그런  내향적인 특성이 싫어 어느 순간부터 외향적인 사람의 탈을 시작했다는 걸. 나는 나로 산 게 아니었던 것이다.


되고 싶은 나, 즉 엄마 같은 사람으로 산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외향성’은 우월하고, 내향성은 열등한 것이라 여겨왔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모든 내향성을 무시하고 잘라내고 때로는 못 본 척했다. 정체를 알 수 없던 불편감과 관계에서 자꾸만 소진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는 너무 오래 ‘전형적인 외향인’라는 무거운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진짜 나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단정 지어버린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나는 엄마가 아니었고, 엄마처럼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순덩어리, 이게 그냥 저입니다.


가면을 벗고 보니 내 민낯은 저절로 드러났다. 나는 외부적 자극을 많이 받으면 에너지가 빨리 닳아버리는 사람이었다. 주 4일 사람을 만났다면 주 3일은 혼자 쉬어주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듣는 것은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1,2단계까지는 빨리 친해지지만, 3단계 이후부터는 친밀감이 꽤 더디게 진전되는 사람이었다. 혼자서 내면을 탐구하는 걸 좋아하지만, 그게 길어지면 답답함을 느껴 사람을 찾아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었다.      


외향성과 내향성이라는 정반대의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모순덩어리의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외향적인 척하며 사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자 묘한 해방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미 드러난 이상 더 이상 숨길 수도, 그럴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난 관계에서 '친밀감'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어떤 특정한 대상을 모델링, 즉 관찰하고 모방하며 사회화 되어나간다. 하지만 모델링을 넘어 그 대상과 나를 오랜 기간 동일시가 되어버리면 '진짜 나'는 사라지고, '그 사람을 닮은 나'만 남게 된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뼈대만 그럴 듯 하게 세워진 건물처럼, 늘 위태위태하고 이유없이 불안했다. 연극같은 삶, 그 무대 뒤에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남는다는 것을 오래 지나 알게되었다.


당신도 이러한 감정들을 오래 느껴왔다면 한 번 멈추고 들여다보라.

나도 모르게 내가 닮고 싶은 누군가의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엄마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냐 묻는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편안하고 자유로워진 것만으로 나는 이 자아찾기 여정에 만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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