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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피스 Nov 02. 2019

뾰루지만 짜내면 완벽할 줄 알았지

나를 받아들이기


| 안녕하세요, 구멍 많은 분화구입니다.


20대 시절, 나는 고쳐야 할 단점으로 한 가득한 많은 인간이었다. 충동에 이끌려 뭘 시작하면 마무리를 짓는 법이 없었고, 성격은 또 얼마나 덜렁대는지 손에 두 개 이상을 들고 있으면 꼭 하나는 잃어버렸다. 감정표현도 잘 못해서 좋아도 싫은 척, 싫어도 좋은 척 하기 일쑤였다. 처음 보는 사람과는 쉽사리 친해졌으나 단 둘이 있는 건 잘 못 견딜 정도로 깊이 있는 친밀감은 잘 쌓지 못했다. 외모든 집안이든 능력이든 뭐라도 빼어난 게 없으니 남보다 손톱만큼 더 낫다 싶은 게 있으면 복어처럼 한껏 부풀리며 우월한 척 하느라 애썼다. 나름 애써서 두른 포장지 안의 초라하고 찌질하고 별 볼일 없는 ‘열등한 나’를 들킬까봐 늘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노력하면 단점은 하나 둘 고쳐지기는 했다. 내게서 그 고름 찬 뾰루지 같은 결함이 발견되면, 꾹꾹 짜내어 없애 버렸다. 그 못난 뾰루지를 없앨 방도가 없으면 그 위에 뭉개고 앉아 애초부터 그런 건 나에게 없었다는 듯이 태연한 척 가리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남들은 내 단점을 얼마나 알고 있는 지 궁금해졌다.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나는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지 않는가. 그 날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내 단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상처받지 않을 자신 있으니,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달라고. 내가 몰랐던 새로운 단점이 있었다면 난 또 그것을 고칠 준비가 되어있었으니까.


| 단점발굴프로젝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


거의 10년 가까이 함께 지난 친구들부터 이제 막 친분을 트게 된 모임 사람들까지 만나면 붙잡고 물어봤다. 20명 가까이 붙들고 물었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온 공통적인 말은 ‘단점? 음.. 없는 것 같은데’였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이게 뭔 뜬금없는 자기 자랑이야’하겠지만,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여전히 나에겐 고쳐야 할 단점이 57개쯤은 더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에게 ‘넌 단점이 별로 없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그 말이 ‘너는 특징도 개성도 매력도 없어’라는 의미로 들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나를 배려해주느라, 또는 관계를 해칠까봐 진짜 단점을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향도 색도 맛도 없는 노잼인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혼돈에 빠져들었으니까.


|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이게 그냥 너다

    

삶에서 뭔가를 더하는 것보다 힘든 건 이미 있는 것을 덜어내는 것이다. 나는 그로부터 몇 년 동안은 강박적으로 단점을 찾아내 어떻게든 고치려 했던 과거의 나를 버리는 어려운 시간을 거쳤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모자르면 모자른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결핍과 문제들을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말하고 밝히기도 했다. 과거의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면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싫어하게 되리라는 공포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고 포장하는데는 바로 이 '사랑받고 수용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공포가 주는 환상은 늘 실제와 다르다. 실수하고 나약하고 찌질하며 못난 나를 그대로 표현하는 순간 사람들은 나에게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꼈고, 그런 나에게 오히려 믿음을 보내왔다. 그걸 경험하니 수용받지 못하리라는 공포는 사라지고, 어느 새인가 그런 내 모자란 부분들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귀엽게보이기까지 했다. 별로 숨길만한 게 없으니 관계에서도 상대의 눈치를 살피지 않게 되어 낯선 이를 만나도 편안했다. 단점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서 나는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 했던 무의식적 행위들 또한 내려놓게 된 것이다.


| 뾰루지 좀 있으면 뭐 어때요.


있는 그대로 자신을 수용한다고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건 아니다. 사람들 중 일부는 당신을 싫어할 것이고, 무관심해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선물은 그러한 타인의 태도에 상관없이 내가 나로써도 충분하다는 그 자유로움과 충만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난 단점이라는 뾰루지만 짜내려 애쓰기보다는 그것을 나의 일부로 인정해보려는 노력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그럼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나만의 또 다른 매력을 또 하나 발견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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