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모두 똑같지는 않습니다. 불안이 생겨나게 되는 기저가 저마다 다르고, 불안에 대해 보이는 반응 또한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이라는 책에서 불안이 생기는 원인을 총 6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애정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이 그것입니다.
심리학 전공자로서 이에 꽤나 동의하지만, 실제 경험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 6가지에 완전히 부합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경험에 근거한 불안 높은 사람들의 6가지 유형을 한 번 이야기해볼까 해요.
| 불안이 높은 사람들의 6가지 유형
1. 인간에 대한 신뢰가 낮은 사람
불안이 높은 사람들 중에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적은 사람이 많습니다. 위기상황이 닥치거나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느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여기는 것이죠. '아무리 힘들어도 나에게는 가족이 있잖아.' '일이 터지면 동료들이 도와줄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대신에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내 책임이야.' '나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해.'라는 신념이 강합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책임하고 의존적인 사람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매일 무거운 책임감과 압박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사람이 기생충처럼 누구보다 얄미워 보이는 것이죠.
이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면 '원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반문합니다. 인간은 원래 홀로 태어나 홀로 죽으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헤쳐나가는 것이 정석이고 옳은 것일진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또는 내 문제가 아니라 사회나 조직의 문제로 돌리기도 해요. '어떻게 이 회사는 믿을만한 인간 한 명이 없냐'라던지, '왜 윗사람은 열심히 하는 내가 아닌 징징대는 쟤를 더 예뻐하냐'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것은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나의 이 패턴이 어느 환경에서든지 반복되어 나타난다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수치심을 크게 느끼는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실패가 왜 두려운 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실패 그 자체보다 실패했을 때 사람들의 평가나 조롱을 더 두려워할 때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앞둔 사람이라면 시험 떨어지는 것보다 시험에 떨어진 자신을 똑똑하지 못하고 의지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할까 봐 불안한 것일 수 있습니다. 사업이 잘 안되어 불안한 사람이라면 경제적 손실보다 자신을 무능하고 무모한 사람이라 여겨지는 것이 두려운 것일 수도 있고요. 발표를 앞둔 사람이라면 발표를 망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것보다 앞에서 버벅대고 실수하는 자신이 찌질한 사람이라 비칠 것 같아 불안해하는 경우를 훨씬 많이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 중에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자존심이 세거나 쿨해 보이는 사람'도 상당수 차지합니다. 늘 성공하는 사람, 또는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욕구가 크게 때문이죠. 이 사람들에게 실패는 견디기 힘든 수치심을 줍니다. 아무도 지적하거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혼자 이불킥 차면서 고통스러워합니다. 때문에 이런 유형들은 자신의 단점이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숨기려 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특성을 보이는 이유는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어떤 실수나 외모 등의 이유로 놀림을 받거나 수치심을 크게 느낀 경험이 있는 경우입니다. 흔히 트라우마라고 하면 큰 사건이나 재난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린 시절 겪는 이러한 소소한 사건들도 하나의 작은 트라우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거 사건이 족쇄처럼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둘째는 어렸을 때 좌절의 경험이 별로 없이 칭찬과 사랑만 받고 자란 경우입니다. 인간이 성장하는 데에는 '적절한 좌절'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없고,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적절한 좌절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죠. 하지만 부족함 없이 칭찬만 먹고 자란 사람은 비판에 대한 항체가 없기 때문에, 별 거 아닌 지적에도 마음에 지진이 난 듯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실패에 대한 불안과 수치심 또한 크게 느끼는 것이죠.
3.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
이들은 '변화하는 것 = 상실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것이 변화하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잃게 된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내가 만약에 이 유형에 속한다면 나는 무엇을 잃기를 두려워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돈처럼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랑이나 지위, 명예 같은 비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남자친구가 이직을 하는 게 불안해서 상담을 받으러 온 어떤 분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이직도 아닌데 뭐가 그리 불안할까 싶겠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니 남자 친구가 새로운 직장에서 다른 여자들이랑 눈이 맞아 자신을 버릴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결국 불안의 실체는 남자 친구의 이직이 아니라 '사랑의 상실'이었던 것이죠. 불안의 치유는 이 진짜 원인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익숙한 과거에 머물러야 안정된 삶이라고 믿지만 사실 아무런 변화 없는 삶이야 말로 위험한 것입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까요. 또한 대부분의 변화는 대부분 부지불식 간에 등장하기 때문에 거부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면 변화를 직면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변화에 대응해 본 경험치가 늘어날수록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죠.
4. 통제 욕구가 강한 사람
불안이 높은 사람이라고 하면 항상 안절부절못하고 전전긍긍해하는 사람을 떠올리겠지만, 엄격하고 철두철미한 사람들 중에도 불안이 높은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통제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에요.
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바로 '불확실성'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야 안심이 되기 때문에 늘 미리 준비하고 대비를 하려 합니다.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데 뛰어난 촉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 분야에서는 빛을 발하죠.
문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잘 맡기지 못하고, 맡긴다고 해도 하나하나 잔소리를 해대기 십상입니다. 내 마음대로 상대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요. 상황이 내 예측대로 굴러가야 하고, 상대도 내가 짜 놓은 시나리오대로 행동해야 되는데 자꾸 어긋나니까요.
그러다 보니 갈등이나 마찰이 일어나기도 쉽고, 주변에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사람들만 남게 되는 경우도 흔해요. 내가 사람들과 계속 부딪히고 있다면 불안으로 인한 통제 욕구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5. 권위자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
평소 동료들이나 후배들과 지낼 때는 편안해하면서도 유독 상급자나 윗사람과 함께 일을 할 때 불안을 과도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에요. 모든 권위자에게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상급자의 성별이나 성격에 따라서 불안을 다르게 느끼기도 합니다.
이 유형의 경우에도 다양한 원인들이 있을 수 있지만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에게서 자란 경우 그 아버지에 대한 상이 그대로 권위자에게 투영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아버지와의 심리적 거리가 멀 수록 상급자에게 두려움이 큰 것이죠.
그러다 보니 윗사람에게 보고를 할 때면 긴장감을 감출 수가 없고, 반박을 받으면 알던 것도 생각이 안 나 버벅거리는 탓에 혼이 나기도 합니다. 윗사람에게 살갑게 대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 자신도 그렇게 해볼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습니다.
권위자에 대한 불안이 유독 높다면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재정립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6. 완벽주의 기질이 강한 사람
완벽주의는 불안과 상관관계가 매우 높습니다. 완벽하지 못할까 불안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죠. 이 또한 모든 영역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특정 영역에서만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안일은 대충 하면서도 업무만큼은 완벽하게 하려고 집착한다거나, 업무는 설렁 설렁 하는데 자기를 꾸미는 데는 완벽을 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유형들이 완벽을 추구하는 이유는 모순적이게도 항상 '부족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건 실제 능력치와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평균보다 높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나는 부족하다'는 뿌리 깊은 신념이 불안을 만들어내고, 이 불안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노력과 시간을 계속 쏟아붓는 행동을 만들어냅니다.
'완벽하지 않은 것 = 망한 것'이라는 비합리적인 사고는 우리를 피폐하게 만듭니다. 이건 분명해요. 왜냐면 제가 과거에 이 유형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매일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은 것 같았어요.
그러다 깨달았죠. 완벽주의는 구원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나를 망치는 중이라는 것을요.
불안에 너무나 오래 익숙해지면 불안을 오히려 편안하게 느끼게 됩니다.
불안하지 않은 상황을 더 불안하게 느끼는 것이죠.
이건 마치 동물원에 갇혀 있던 호랑이가 야생의 세계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만성적인 불안의 울타리 밖에 얼마나 큰 자유로움이 있는지, 스스로 나오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