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너피스 Apr 20. 2020

불안을 이기기 위해 시도해 본 5가지 방법 후기

<불안 극복> 실험


불안은 3n년간 내 삶의 동반자였다. 뭐라도 좀 해볼라치면 불안은 귓가에서 '~하면 어쩌려고 그래'라며 걱정하는 투로 속삭인다. 물론 불안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까지 생존해있는 것이겠지만, 인생에서 걸림돌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심리학 책이나 연구들을 뒤적이며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았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었다 해도 나에게 입증되지 않으면 무쓸모한 것. 그래서 나를 피실험자로 설정하고 여러 방법들을 (야매로) 실험해보았고, 이 중에 효과가 있었던 것들을 골라 리뷰 형식으로 남겨볼까 한다.  



#1. 최악of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난이도 ★★★☆☆ 효과성 ★★★★☆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어떤 일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것 같아서이다. 일을 망치면 어쩌지? 관계가 깨지면 어쩌지? 상처 받으면 어쩌지? 코로나에 걸리면 어쩌지? 같은 것들이다. 그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모호한 형태로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며 우리를 괴롭힌다. 그럴 때 나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음먹고 그려본다.


(START) '내일 있을 제안 발표가 걱정이다'

→ 내가 준비한 내용이 별로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 그럼 부족한 구멍을 찾아 공격적인 질문을 하겠지.

→ 나는 머릿속이 하얘져 동문서답을 하거나 음 오 아 예 만 할 것 같아.

→ '이거 제대로 준비한 거 맞아요?'라고 혼이 날 수도 있어.

→ 내 능력과 자질에 다들 의심을 품고 분위기는 갑분싸 되겠지.

→ 나 때문에 우리 회사 이미지까지 안 좋아질 수도 있어.

→ 회사에는 다 소문이 나서 '쟤가 발표했다가 완전 망쳤다잖아'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겠지.

→ 난 결국 회사에서 잘리거나 퇴사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거야.

(END) 그럼 난 결국 백수 될 거야.


쓸 수 있는 이렇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끝까지 써내려 가다 보면 대개 2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첫째, '뇌내 망상이 심하군'. 내가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뒤로 가면 갈수록 대부분 터무니없고 얼토당토 하다. 흑백논리와 과장이 뒤범벅되어 있다.

둘째, '최악의 결과도 생각해보니 그리 나쁘지 않군'.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거나 백수가 되는 등의 최악의 결과도 생각해보면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상처는 받겠지만 사람은 저마다의 모지리 같은 부분이 있고, 행여 회사에서 잘려도 실업급여를 타 먹으며 이직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망하면 어때, 잘리기 밖에 더해?'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묘한 근자감이 생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기 때문에 난이도는 3점을 주었지만, 지금도 자주 활용할 정도로 도움이 된 방법이기에 효과성은 4점을 매겼다.



#2. 다른 사람에게 불안을 터놓아본다


난이도 ★★☆☆☆ 효과성 ★★★★☆


다른 사람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대부분은 '음.. 그래 긴장되겠다' 또는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와 같은 말을 (영혼 없이) 건넨다. 말에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지 않다고 상처 받을 필요는 없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진심 별일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걱정하는 것이 크나큰 일이라면 호들갑스럽게 '어머머머, 어떻게 너 진짜 큰일이다'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언어로 표현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정리가 된다. 덩어리로 뭉쳐져 있던 느낌들이 객관화되는 것이다. 여기에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공감해준다면 효과는 몇 배가 된다.


이 방법을 사용할 때는 예민한 사람보다는 덤덤한 성격의 사람을 택하는 것이 좋다. 예민한 사람들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까지 굳이(?) 찾아내 이야기해주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뭔가 공감받는 듯 느껴지지만 불안이 전염되어 서로가 힘들어질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약점을 털어놓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이 방법의 난이도가 많이 높을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억지로 시도할 필요는 없다. 다른 방법을 먼저 시도해보면 된다.

  


#3. 생각만으로 답이 안 나오면 일단 정면 돌파해본다.


난이도 ★★★★★ 효과성 ★★★★☆


우리는 대개 경험한 것보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특히 불안이 높은 사람일수록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대해서 어떤 이는 기대감을 느끼지만, 불안이 높은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불안이 점차 줄어들었는데, 그건 단순히 물리적으로 노화되어서가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두려워하던 일에 부딪혀보면서 '오잉, 해보니까 별 거 아니네'라는 결론에 대부분 도달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멘탈이 강한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들은 '할까 말까' 고민될 때 대부분 '일단 해보기(Just Do it)'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워렌버핏은 '예측하지 말고 대응하라'라는 말을 남겼다. 선입견을 가지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백만 가지 결과를 예상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지 말고, 자신에게 닥쳐오는 여러 변수에 일단 대처해보라는 의미다. 나는 이것을 '돌파 경험'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것을 돌파해본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고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올라간다고 느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발자국 전진하는 것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해보니까 너무 무섭네.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깨달은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복싱에서 다른 사람과 스파링을 뜨는 그런 것. (맞는 것도 때리는 것도 너무 무서웠다 ㅎㄷㄷ). 나의 한계를 돌파해보겠다며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처음에는 낮은 난이도의 것들부터 시작해보자. 



#4. 멀리 도망가 본다.


난이도 ★★★☆☆ 효과성 ★★★★☆


우리는 문제를 회피하면 안 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하지만 나는 불안에 휩싸여있을 때, 멀리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법으로 꽤 효과를 보았다. 멀리 도망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문제가 있는 장소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보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여행이다.


나는 여행이 불안 해소에 도움이 되는 가장 큰 이유를 '환경의 전환'이라고 본다. 문제가 있는 그 장소에 있을 때는 그것이 한없이 크게 느껴지는데, 이로 부터 멀리 떨어져 완전히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 문제의 크기가 작아지는 느낌이다. 사람은 불안하면 할수록 시야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때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시야를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운이 좋으면 이전에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던 해결책이 저절로 생각나기도 한다.


당장의 여행을 갈 수 없다면 건물 밖이라도 나가 산책을 하는 것도 좋다. 문제에 지나치게 몰입되어 있으면 그곳에서 벗어나는 길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라도 문제와 나 사이에 거리를 잠시 두어 보는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너무 오래 도망가면 문제는 더 커져있을 가능성이 높고 불안은 더 높아진다. 그래서 멀리 도망가서 리프레시를 한 다음에는 반드시 돌아와서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불안을 피해 다녀야 하는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5. 롤모델을 세워놓고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지 떠올려본다.


난이도 ★★☆☆☆ 효과성 ★★★★☆


우리 주변에는 놀랍도록 멘탈이 강해 부러워지는 사람이 한 명씩은 있다. 나 또한 사회초년생 시절에 참 부럽고 닮고 싶은 성격을 지닌 상사가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일이 터져도 우왕좌왕하거나 이를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솔직하고 정확하게 보고한 후 당장의 닥친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필요하면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이나 자문을 구했고,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한 후에는 '진인사대천명(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림)'의 자세로 담담히 결과를 기다렸다.


당시 '내가 일을 잘못 망치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던 쫄보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그 상사가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거나 또는 문제가 생길까 겁이 날 때는 '그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떠올려보았다. 그러다 보면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 일도 있었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주변에서 슈퍼멘탈 보유자를 찾기 힘들다면 유명인 중에 한 명을 골라도 된다. 나는 종종 유튜브로 피겨여왕 김연아의 경기나 인터뷰를 돌려보며 용기를 얻는다. 온 국민의 기대와 점수에 대한 압박감, 경쟁자들의 치열한 견제를 모두 이겨내고 완벽한 경기를 치러내는 그녀의 모습은 봐도 봐도 자극이 된다.  




인지치료의 창시자인 미국 정신과 의사 아론 벡(Aaron Beck)은 과도한 불안이 '인지의 오류'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완전한 실패 또는 성공으로만 구분하는 흑백논리, 충분한 근거가 없는데도 부정적인 결론부터 내리는 자의적 추론. 전체적인 맥락은 보지 않고 일부만 보고 평가하는 선택적 추상화 등이 그것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누구나 어느 정도의 인지적 오류는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불안을 ZERO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이것이 좋은 것만도 아니다.


어차피 평생 안고 가야 할 불안이라면, 적어도 적정한 수준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어떤 이에게 효과적인 방법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뭐라도 해보자. 하다 보면 나에게 통하는 방법은 나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의 뱀파이어, 불안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