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판단하는데 돈을 모르고, 악을 판단하는데 악을 모른다.”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대상이 된 사람들이 조사를 받는데 내가 직접 참여해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사건의 8-90%는 돈이 관련된 일이다. 돈의 원리 내지 돈의 흐름에 대해서 알아야 조사하고 판단이 가능하다. 그리고 누가 악인인지 가려내는 일을 하는 자리인데 아무리 봐도 그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검사가 가장 하기 싫은 업무가 형사부 업무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 검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업무가 금융, 조세 부서 사건이라고 한다. 그런데 형사부의 90%가 돈에 관한 고소, 고발사건이다. 금융, 조세 업무 역시 돈이 전부인 사건이다. 경찰에서도 가장 기피하는 곳이 경제조사팀이다. 경찰에서 선호되는 부서 중 하나가 금융범죄수사대이다. 모두 다 돈을 잘 알아야 하는 곳이다. 아이러니하다.
검사나 경찰이나 그 자리의 호불호를 정하는 기준은 자신만의 실적을 만들어 빠른 승진 또는 자신이 선호하는 부서로의 배치를 받을 수 있느냐 여부이다. 일을 더 많이 한다고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 공무원에게 승진과 선호부서 배치야 말로 정당하게 얻을 수 있는 성과급인 것이다.
최근에 검사실에 가서 가상화폐에 관련된 고소사건에 대해서 검사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검사는 자기는 가상화폐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서 가상화폐의 원리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속으로 ‘역시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결정을 못하고 있었구나’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뻤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검사는 잘 모르는 영역에 관련된 사건이라도 공부할 생각을 안 하고 기존 잣대로 판단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30분가량 질문을 받으면서 사건 설명을 했는데도, 역시 이해를 잘 못하는 눈치다. 하긴, 나도 가상화폐 상장을 옆에서 지켜보고, 실제로 가상화폐를 거래소에서 직접 거래해 보고, 가상화폐 다단계 사건들을 변론해 보기 전까지는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가상화폐에 다단계까지 합해지면, 그 복잡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장 무서운 검사, 경찰은 자신이 잘 모름에도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조사하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 그 사건 결정문을 받아 들고 어쩔 줄 몰라한다.
가상화폐 사건인데 다단계 또는 유사수신 사건으로서 수백 명이 관련되었다면, 그 속에 있는 돈이라는 욕망을 알아야 하고, 누가 어떤 욕망에 의해 그것을 설계했고, 그 주변인들이 각자의 욕망에 따라 어떤 역할을 했는지 파헤쳐야 한다. 그냥 두루뭉술수리하게 사건에서 돈을 챙긴 사람은 모두 악인이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는 곤란하다.
어떤 판사님은 수십 명의 가상화폐 사건 법정에서 아예 자신의 예단을 드러내 버린다. 억울함을 가진 피고인들 몇 명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여기에 있는 분들은 욕망이라는 열차에 탑승하셨던 분들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말씀을 안 해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데 변호인으로서 기분이 싸했다. 그러더니 대부분의 피고인들을 법정구속 해버렸다.
어떤 경우에는 ‘정의’라는 메스를 잡고 정교하게 수술을 해줘야 할 사건이 있다. 그러려면 환자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제대로 된 부위를 수술할 학식과 기술을 갖춰야 한다. 거기에 겸손한 인격까지 요구한다면 욕심이다. 병원에서 수술해서 낫게만 해줘도 거만했던 교수를 욕하지는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검사로서 그 많은 경제사건을 했음에도 돈을 제대로 모르면서 수많은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악을 처단한다면서 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사법시험 또는 법학전문대학원을 거쳐 검사로 임용된 이른바 ‘엘리트 검사’는 그냥 교육을 그렇게 받고 그게 전부인 것으로 자란 것이다. 누굴 탓하기 어렵다.
“악의 어머니는 지식일 수 없고, 정의는 무지함의 딸일 수 없다” (Agrippa d’ Aubigne, 아그리파 도비녜). 어려운 말이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더 알아서 악해지는 사람은 없고, 멍청하기 때문에 정의로운 사람은 없다.”선과 악을 모두 보는 눈을 가져야 세상 전체를 읽을 줄 알고, 전체를 읽을 줄 알아야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나쁜 것을 가려 못 보게 해야 그 사람이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선하게 꾸며지고 정제된 얘기도 좋지만, 그 뒤에 가려져 있는 추잡하고 지저분한 것까지 알아야 스토리 전체를 아는 것이다.
-유뷰브, 조승연의 탐구생활-
어렸을 때를 뒤돌아보자, 부모님은 아이들 앞에서 절대 돈 얘기를 하지 않으셨다. 가족 경제가 어려운지 좋은지 조차도 얘기하지 않으셨다. 너희는 그냥 공부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가족이나 나라에 나쁜 일이 일어나면, 너희는 저걸 알 필요도 없다고 하셨다. 돈과 선악 구별에 대한 공부를 원천 차단당했다.
변호사로서 6년 동안 범죄자, 범죄자로 의심받는 사람, 피해자,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사람 등등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로부터 직접 듣는 사건 스토리, 사건기록, 주변인의 말 등으로부터 사건을 종합적으로 보는 눈이 생겼다. 사건 너머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고, 사건 뒤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또 있음을 알게 됐다.
난 정말 그동안 순진하게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의뢰인에게 속아도 봤다. 사기도 맞아봤다.
아버지께 조금 아쉬운 생각도 해본다. 적어도 돈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 주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부동산에 관련된 일을 하셨다. 부동산 공부, 돈 공부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는데,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모두 지나버렸다. 아쉽다.
나는 엘리트 방식으로 길러진 검사였지만, 지금은 반대한다.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변호사로서 세상에 나와서 좀 굴러먹은 사람이 검사, 판사로 임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5년 정도 구르면, 세상을 어느 정도 알게 된다. 돈의 원리나 흐름에 대해서 알게 되고,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알아채는 혜안이 생긴다.
법리를 빠삭하게 잘 알고 세상을 모르는 순수한 사람이 내 사건을 판단하는 게 좋은가? 아니면, 돈 받고 일하는 변호사였지만 세상의 이런저런 일에서 굴러먹은 사람이 판사, 검사가 되어 내 사건을 판단하는 게 좋은가?
[금문교(그림판그림) by INNER S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