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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Aug 24. 2024

매미여, 내 남편은 걱정 말아요.

나에게는 이 여름이 끝나기 전,  꼭 써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다.

얼마 전 남편은  '나이 오십에 소나기 주인공이 될 줄이야'라는 글에 대한 지분을 요구했다. 본인이 글감도 주고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이유이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고맙다'는 말을 한 두세 번쯤 했더니, 재미가 들린 모양이다. 마치 본인이 백일장 주최자인양, 내게 브런치에 쓸 시제 하나를 툭, 던져준다. 


이번 시제는 '매미'다.




때는 여름 초저녁 8시.

삐비비비 삑~ 퇴근한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텀블러를 건네고 거실 쪽으로 걸어간다.


구깃해진 남편의 등짝을 보는 순간

악!

나는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남편의 흰 와이셔츠에 엄지손가락만 한 매미가 껌딱지처럼 달라붙어있는 것이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도, 매미는 날아가기는커녕 6개의 다리를 더 움켜쥔다.

울지도 않는다. 떨어지지도 않는다.

차마 나는 손으로 잡지 못하고, 급한 대로 A4 용지로 살짝 떼어냈다.

매앰~ 하고 짧게 울더니 그냥 종이 위에 얌전히 앉아있다.

남편은 조심조심 거실창 쪽으로 걸어가 밖으로 내보냈다.

오래 이곳에 살았으나, 매미를 업고 들어오기는 처음이었다.


"신기하네. 매미가  당신 등판에 왜 붙었지?"

"현관 들어서는데 뭔가 탁 부딪히는 느낌은 났어"

"정말?"

"희한하네.... 내 전생에 애인이었나?"

뭐? 애인? 전생?

나도 모르게 남편을 흘겨봤다.

"당신, 지금 매미한테 질투하는 거야?"

질투?

어이없다는 내 표정이 질투로 보이는 건가? 질투를 바라는 것인가?

나는 남편이 바라는 대로 질투라고 해줬다.


늦은 밤이 되었다. 둘째 딸 학원 픽업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상하게 남편이 들어오지  않았다. 

"여보, 뭐 해? 안 들어오고"

"매미가 아직 창문에 붙어있네"

매미를 보고 있던 것이다.

"전생에 애인이 당신 못 잊나 보네"

"그런가? " 하하하

기분 좋은 웃음소리는 뭘까?

한참을 쳐다보더니 급기야 사진 한 장을 남긴다.

아직 남편 곁을 못떠나는 매미. 남편 등짝에 붙은 사진은 안타깝게 찍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일어나자마자 현관문을 박차고 나간다.

매미가 사라졌단다.

아쉽다는 표정을 한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장난이 아니었다.

감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어이없음'이라는 맹물 같은 감정에

'경계심'이라는 노란색 감정이 한 방울 똑 떨어진다.  


급기야  나는 그날 밤 급습을 시도했다.

나의 목적지는 남편의 블로그였다.

아니나 다를까 딱 걸렸다.

어느 틈에 썼는지, 블로그에 '전생의 연인 매미'라는 글이 떡 하니 올려져 있는 게 아닌가?


전생의 님 ~ㅇㅇㅇㅇ ㅇㅇㅇ

짧은 생이 ~ ㅇㅇㅇㅇ ㅇㅇㅇ

날 찾아와 ~ㅇㅇㅇㅇ ㅇㅇㅇ

님 그리워 쓴 황진이의 시조도,

죽은 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망매가도

이보다 애틋하고도 애처롭지 않을 것이다.

남편의 시에서 매미는 애벌레 굼벵이 고된 시절을 7년이나 견디고

단 며칠, 지상에 머무는 동안 전생의 애인을 찾아 헤매는

아주 숭고한 연인으로 그려져 있었다.


내 남편이 이상하다.

요즘 남편은 부쩍 감성적이 되어버렸다.

소나기를 맞으며 소나기 같은 영화를 찍었다며 좋아하지를 않나.

등짝에 붙은 매미가 전생의 애인이라고 하지 않나.

그걸 또 시로 쓰지 않나.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게 그 유명한 한 남자의 갱년기라고 하는 건가?

와이프를 향해 외롭다고 외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인가?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여보 당신 블로그에 매미로 시 썼더라 "

"봤어? 어때? 괜찮지?

"아주 절절하던데. 진짜 전생 애인 그리운 거 아냐?"

"왜 이래~ 내가 당신  브런치에 글 쓰라고 글감 만들어 준거지"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브런치 글감이라는 건 왠지 급조한 핑계 같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매미'는 나의 시제가 되었다.


전생의 남편 애인이 되어버린 '매미'로 글을 쓰려니

너무 유치하기도 하고, 어떻게 써야 하나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괜히 이런 말도 안 되는 글을 발행하여

공들여 모신 귀한 구독자가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매미'로 글을 쓰는 것은

한창 무르익은 남편의 몽글몽글한 감정의 흥을 깨뜨리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다.

또한 전생의 애인이었다는 '매미' 에게 

현생의 남편의 삶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지 보여줄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생의 애인 매미여~ 

이제 내 남편 걱정은 그만해도 좋다.



여름이 끝나간다.

매미 소리도, 남편의 전생 애인 타령도 며칠 잠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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