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스토리는황순원 작가님과 포도송이 브런치 작가의 콜라보, 아니 일방적으로 단편소설 '소나기'를 인용했습니다. 아래 *붉은색은 황순원 님의 '소나기'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소년 소녀의 풋풋한 이야기를 50대 아줌마 아저씨의 푹푹한 이야기에 부적절하게 인용한 점에 대해서는 미리 사과드립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수(水) 요일이었다. 그냥 늘어지고 싶은 여행다녀온다음 날이었다.
"여보, 산책이나 하고 올래?
남편은 소파에 널브러진 나를 굳이 깨워서 산책을 가자고 조른다.
는적는적 늘어진 몸을 일으킨다.
빈 옥수숫대만 남은 밭길을 걸었다. 군데군데 따지 않은 옥수수가 보였다.
"아직따지 않은 저 옥수수는 뭐지?"
"그거 알이 차지 않은 거야"
"서리할까?"
"야, 그거 그냥 줘도 못 먹는다."
말라비틀어져 옥수수털만 삐쭉 나온 게 참 안쓰럽다.
오이밭을 지난다. 아니 호박밭을 지난다.
호박 덩굴과 오이 덩굴이 뒤엉켜서 당최 구별이 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호박이 더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호박 덩굴의 기세가 더 센 거 같다.
"호박이 오이를 이겼나 보네"
"당연하지 오이는 오잉이고, 호박, 오~호, 대~박이다니깐 호박이 이기지"
역시 아재다. 아재개그를 맘대로 지껄이는데, 이상하게 그 모습이 너무 순수해서 하마터면 웃어줄 뻔했다.
산만한 아저씨 안에 빼빼 마른 소년이 들어있는 것 같다고 느낄 무렵.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진다.
금세 빗방울이 더 굵어진다.
*산을 내려오는데 떡갈나뭇잎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굵은 빗방울이었다.
목덜미가 선뜻선뜻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비 안갯속에 원두막이 보였다. 그리로 가 비를 잠시 피해 그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스토리 3개의 사진은 절대 우리 부부의 비주얼이 아닌 드라마 '너의 시간속으로' 한 장면임을 밝힙니다.
참나무 아래에 비를 피했다. 그러나 굵은 빗방울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속수무책이다.
"뛰자"
혼자 뛴다.
이럴 때 셔츠라도 벗어서 같이 뒤집어써야 하는 거 아닌가?
"빨리 와, 편의점 가서 우산이나 사자"
그래, 우산이다. 편의점만이 구원이다.
뛰면서 생각했다.
우산은 큰 거 하나? 작은 거 두 개?
*비에 젖은 소년의 몸 내음새가 확 코에 끼얹혀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소년의 몸기운으로 해서 떨리던 몸이 꽤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비에 젖은 우리의 몸 내음새가 서로에게 좋은 향기일리 없다.
무조건 두 개를 사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떨어져 있는 것이 더 애틋할 나이이지 않는가.
*엄청나게 물이 불어있었다. 빛마저 제법 흙탕물이었다. 뛰어 건널 수가 없었다. 소년이 등을 돌려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히었다.
산에서 내려온 물로, 온통 흙탕물 물줄기가 거세다. 저 물줄기를 거스르다가는 신발이 흙범벅이 될 판국이다.
그렇다고 남편 등에 업힐 수도 없지 않은가. 남편의 허리디스크라도터지면 남편도 나도 개고생.
그냥 조금 멀리 돌아가기로 했다.
*개울가에 다다르기 전에 가을 하늘이 언제 그랬는가 싶게 구름 한 점 없이 쪽빛으로 개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