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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Aug 31. 2024

똥광 쏘나타와 달린 인생 4악장

똥광 쏘나타

이 무슨 B급 제목인가.

제목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겠다.


거룩한 이름에 똥광을 붙여

세계인의 성을 울리는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를, 대한민국 국민차 쏘나타를 모독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나에게 똥광은 영광 그 이상의 광이다.


화투판의 세계에 정식 입문한 적 없지만 오광 중 으뜸은 바로 똥광이라는 것은 안다.

우리 엄마만 봐도 그렇다. 손아귀에 똥광이 들어오는 순간 무조건 '고'였다. 게다가 똥쌍피까지 들어올 땐 '쓰리 고'는 당연지사, 평소의 엄마답지 않게 '갈 때까지 가보자'라는 인생관이 펼쳐졌다.


아빠는 또 어떠한가? 바닥패 중 똥이 나오면 식기도 전에 날름 가져갔는데, 얼마나 신이 나서 화투장을 패대기치시던지, 방바닥에 폭탄이 터지는 줄 알았다. 그러다 똥으로 쌀라 치면 진짜 배가 아픈 듯 데굴데굴 구르셨다.  똥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숫기 없는 아빠를 연기 배우로 만드는 마법의 화투장이었다.


따라서 다소 저급하게 들릴 수 있으나 '똥광 쏘나타'소나타의 곡해석을 더럽히지도,

한물 간 똥차라고 음해하지도 않는 글임을 다시 한번 밝혀둔다.




1악장.

결혼 이듬 해인 2000년 봄, 드디어 우리 집에도 첫 훼밀리카가 생겼다.  EF쏘나타였다. 결혼 전 친정집에는 영업용 차만 있었으니, 내 인생 통틀어 첫 자가용이었던 셈이다. 그 차는 시아버님이 100% 현금으로 사주셨다. 당시, 대한민국은 IMF라는 긴 터널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해 힘들었던 시기였다.


젊을 때부터 시아버지는 한쪽 귀가 잘 들리시지 않으셨다. 그래도 별 어려움 없이 살아오시다 그 해 겨울, 청각장애 4을 받았다. 어떻게 아셨는지 장애등록증이 있으면, LPG 가스차를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외아들  장가 기념으로 차 한 대를 뽑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시아버지가 주신 이천만으로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쏘나타를 '픽'했다. 당시 ‘네오 클래식’을 표방하며 등장한 EF쏘나타는 지금까지도 디자인적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 쏘나타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하니, 당시 20대 후반의 젊은 부부의 마음을 얼마나 흔들어놨을까.


그해 남편은 공채 신입사원으로 들어갔다. 민망하게도 저 높이 계신 부장님이  쏘나타를 타고 다니셨으니, 혹여 건방진 신입사원으로 비칠까 주차장 맨 구석에 몰래 주차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겹경사처럼 그해 우리는 첫 딸 별이를 잉태했다. 우리의 첫차였던 쏘나타에 첫 딸을 품에 안고 산부인과에서 퇴원하던 날은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2악장. 

2007년 가을, 중고차가 된 쏘나타에 쏠쏠하지 않게 비용이 들어갔다. 우리는 우리가 번 돈으로 두 번째 차를 뽑게 되었다. 역시 쏘나타였다. 이번에는 큰 딸까지 장애 등급을 받았다.  수능 등급도 아니면서 장애 등급까지 높게 받아 취등록세 면제 혜택까지 받았으니, 우리는 실리적으로 2000CC 미만의 LPG 차량을 구매해야 했다. 아무리 봐도 쏘나타만한 것이 없었다.

남편이 당시 대리 3년 차. 쏘나타도 사실 우리 상황에서는 분에 넘치는  차였다. 차종의 선택지는 없고, 색상과 옵션 정도만 고려했던 상황인지라, 첫 차를 고를 때와 다르게 설렘은 반으로 뚝 떨어졌다. 게다가 새 차를 뽑고 3일째 되는 날 보조석 문짝을 긁혔다. 그러나 그것은 액땜. 무려 10년 동안이나 무사고 장수차의 영광을 누렸다.


3악장.

2017년 겨울, 우리는 또다시 세 번째  쏘나타를 뽑았다. 남편은 어느새 차장으로 승진했다. 슬슬 외제차도 눈에 들어오고, 중형 SUV며, 그렌저급의 세단도 탈만한 나이와 지위가 되었다. 그러나 나라에서 주는 세금 혜택이며, 연료비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가성비로 치면 쏘나타만한 것이 없었다.

3번째 쏘나타를 뽑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부산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이뤄진다는 주말부부의 세계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이부자리 등 최소한의 살림살이를 쏘나타에 싣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으로 떠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아니 쏘나타의 뒤꽁무니를 글썽글썽한 눈으로 배웅했다. 남편은 그렇게 고향에서 가져간 쏘나타와 함께 3년을 부산에서 보냈다.


4악장.

다시 2024년 여름 다시 4번째 차를 사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시동 걸리는 소리도 신통치 않다는 게 남편의 투정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번만큼은 쏘나타가 아닌 다른 차를 타보고 싶다고 선전포고한 터였다.  24년이면 강산도 2번 넘게 변했으니 쏘나타의 명성과 지위가 어찌 24년 전과 같겠는가. 남편이 부장님 되는 사이, 쏘나타는 부장급이 타던 '아빠차'에서 젊은 사람들이 타는 '오빠차'가 되었다. 중년이 된 남편에게는 이제 어울리지 않는 차가 되었다.  몇 년 전에  안 사실이지만 LPG차량만 고집부리지 않으면 2000CC 미만의 차량은 가격과 상관없이 살 수 있다고 하니, 선택지가 넓어진 셈이다.




아버지의 장애로, 그다음은 딸의 장애로 숙명처럼 선택할 수 밖에 없던 나타

그 3대의 쏘나타를 타고 우리 부부는 24년의 생을 달려왔다. 

요란할 것이라는 태풍을 통과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고요했다.

흔들리는 난기류 만났으나 끝까지 핸들을 놓지 않았다

끝도 없는 긴 터널은 지루하기도 했다.

때론 감정을 토해내던 해우소였다.

그래도 덕분에 잘 나갔다.

잘 달렸다.  

고스톱판으로 치면 '쓰리 고'까지 한 셈이니 '쓰리 픽'이면

그래, 탈만큼 탔다.

24년을 쉼 없이 달려온 뜨끈뜨끈한 엔진처럼,

막 화투판 담요 아래에 힘껏 패대기친 뜨끈뜨끈한 똥광처럼

쏘나타는 우리에게 제법  뜨끈뜨끈한 인생을 선물해 줬다.


이제 쏘나타 인생 4악장이 끝났다.

쏘나타와의 이별은 시간문제다.

새 차 딜러의 순서 앞지르기, 밑장 빼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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