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어떤 산에 대한 이야기다. 산을 쌓고, 산에 오르고, 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담은 글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산악에세이라고 해야 할지 푸드에세이라고 해야 할지 그 경계를 모르겠다.
나는 5시에 산에 올랐다. 그 산의 이름은 '김빱산'.
김밥 30줄이 쌓여 산을 이루었다 하여, 마치 그 검은 기세가 해발 300미터의 산을 닮았으니 나는 그 산의 이름을 그렇게 명명했다.마지막 한 줄을 꼭대기에 얹을 때 나의 기분은, 마치 헉헉대며 오른 산의 정상에 다다른 것처럼 벅찬 감동을 느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정녕, 이 산을 나 혼자 쌓았단 말인가.
나는 기념으로 사진 한 장을찍었다.(사진 상에는 김밥 몇 줄은 빠짐)
그리고 기왕이면 내가 왜 그 산을 쌓아야 했고, 그 산을 오르려고 했는지 글로 남기기로 했다.
바야흐로, 때는 추석 전 주말. 그 주말은 조상의 묘를 깎기 위해 전국 각지에 퍼져있는 자손들이 조상의 묘로 모인다. 바로 벌초날이다. 파묘와는 사뭇 다른 버전이니 아끼는 조상의 묘에 이발을 하는 날이다.우리 시아버지는 일찌감치 조상의 묘는 집과 가까운 곳이 좋다 하여, 조상의 묘를 우리 집 뒷산에 만드셨다. 졸지에 우리 남편은 조상의 묘지기가 되어, 세금만 내는 묘지등기를 넙죽 받아버렸고, 나는 새참과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 밥집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벌초의 벌은 벌일까? 칭찬일까?
어쨌거나, 20년 넘게 벌초날 밥집아줌마로 살다가 올해는 내가 출근을 해야 하는 관계로 아침 새참만 준비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김밥이었다.
나는 김밥이 인풋 대비 아웃풋이 좋은 음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준비하는 과정에 비해 결과물이 매우 훌륭하며, 이는 10줄보다는 20줄, 20줄보다는 30줄을 쌀 때 아웃풋에 대한 찬사가 극에 달한다. 물론, 준비하는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으므로 순전히 나만의 썰이라는 것을 밝혀둔다.
김밥은 미슐랭 김밥집보다 더 맛있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다.
돼지갈비는 돼지갈빗집이 젤 맛있다. 냉면도 냉면집에서 먹는 냉면이 더 맛있다. 떡볶이도 당연지사, 사 먹는 떡볶이가 더 맛있다.그러나제 아무리 미슐랭 김밥집이라도, 새벽에 싼 집김밥보다 맛있을 수는 없다. 물론 시간차를 둬야 한다. 미슐랭 김밥은 반드시 어제저녁에 사 온 김밥이어야 한다. 나는 김밥을 쌀 때마다 김밥 장인이라도 된 거처럼 어깨에 뽕을 잔뜩 넣고, 말한다.
"엄마 김밥 어때?"
"여보 김밥 맛있어?"
언제나 돌아오는 답변은 우리 엄마가, 우리 와이프가 싼 김밥이 젤 맛있다는 것이다.최근에는 김밥을 맛있게 하는 비법을 알아냈으니, 그것은 바로 햄을 굵게 썰어 넣는 것이다. 햄의 굵기에 따라 김밥맛이 달라진다는 것은 500원이나더 비싼 굵은 햄 김밥을 사먹었을 때 터득한 비법이다. 이후로 나는 김밥을 쌀 때 절대 얇은 김밥용 햄을 넣지 않는다.(정말 엄청난 비법이쥬?^^)
사실 김밥은 실패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김, 참기름, 햄, 맛살, 단무지, 오이, 당근 이 조합이니, 어찌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절대 실패하기 싫은 선택을 해야 할 때, 안전하게 김밥을 만다.이건 평소 도전정신이 투철하지 않은 내 인생관가 맞닿아 보인다.
김밥은 꼬리까지 맛있는 음식이다.
제 아무리 맛있는 새우튀김도 꼬리는 못 먹는다. 그러나 김밥은 꼬랑지까지 먹는다, 하물며 그게 더 맛있다.
김밥은 냉장고에 하루 들어갔다 와도 맛있다. 굳어버린 김밥을 계란물에 입수시켜 동그랑땡처럼 부치면 나면 기름기까지 더해져 맛과 풍미가 더해진 계란 김밥이 된다.
이것이 내가 벌초날 새참으로 김밥 30줄을 선택한 이유이자, 김밥예찬론자로서 가지고 있는 김밥에 대한 평소 생각이다.
그런데, 오늘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김밥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한 가지 더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김밥을 한 줄 두 줄 싸서 김빱산을 쌓는 과정이 요즘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과정과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요즘 나는 주로 낮과 밤에는 대충 글을 쓸 재료와 구성들을 잡아놓고 새벽에 일어나 글을 마무리한다. 글의 발행 시간을 대체로 6시 전후로 한다. 발행을 하고 나면 스마트폰을 진동에서 소리로 바꿔놓는다. 쫌 유치한 이야기만 '띵'하고 울리는 라이킷 알림 소리가 나는 너무너무 좋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준비할 때면 계란을 깨는 손목 스텝도 매우 가볍다. 어디 그뿐인가, 까탈스러운 둘째의 아침 투정도 정겹게 느껴진다. 굿모닝~ 인사처럼 들리는 브런치 이웃들의 아침 댓글은 아침밥 한 공기에 버금가는 에너지를 준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발견한 김밥과 글의 공통점이다. 남들이 억지라 해도 상관없다. 나에게는 무릎을 친 어마어마한 발견이기 때문이다.
김밥은 늘 나를 배부르게 한다. 글을 쓰고 글을발행하고 나면 나는 늘 배부르다.
김빱산은 몇 시에 오르는가.
브런치산은 몇 시에 오르는가.
새벽 5시 오른다.
이상하다. 산에 올라도몸무게가 1kg은 늘었다.
가을에는 진짜 산에 올라야겠다. 그때는 진짜 산악 에세이를 써야겠다.
김밥 VS 글쓰기 나만의 레시피 대공개!
미리 불린 쌀을 밥솥에 안친다. VS 마음의 쌀알들도 머리에 안친다.
밥이 익어간다. VS 생각이 익어간다.
뜸을 들인다. VS 생각의 뜸을 들인다.
흰밥을 참기름, 소금 한 스푼에 섞는다. VS 생각과 생각을 비벼본다.
김 위에 고슬고슬한 밥을 가지런히 편다. VS 가지런히 생각을 정리하고 노트북 화면위에 펼친다.
햄, 맛살, 계란, 단무지, 당근, 오이 다양한 빛깔의 재료를 올린다. VS 슬픔, 기쁨, 상실, 새침, 허탈, 감동, 우울, 만족 다양한 빛깔의 감정을 올린다.
열손가락으로 꼭꼭 눌러 조심조심 김을 만다. VS오만가지 생각을 10가지만 추려 자판에 꾹꾹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