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 모기 암살자가 되었어요."
자랑스럽게 달려오는 큰 딸이 순간, 적의 우두머리라도 암살한 독립투사인 줄 알았다.
왼쪽 손바닥을 보니 모기는 압사당했고, 오른쪽 팔목은 새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옴팡지게 물렸다. 모기가 간호사로 태어났다면 혈관 하나는 잘 찾았겠다 싶다.
"진짜 대단해 대단해"
모기 하나 잡은 딸이 뭐 그리 대견하다 싶겠냐만
머리도, 마음도, 손도, 발도 모두 느린 아이인지라 이것은 김연아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의 기쁨과 맞먹는다. 초속 0.5m의 속도로 날아가는 모기를 그냥 잡았을 리 없다.
정신없이 신선한 피에 심취되어 있다가
파바바바바박~ 정도의 속도에 잡혀버린 거니, 이 날 모기는 제 명을 다할 팔자다.
그런데 아이의 기쁨도 잠시
"엄마, 어떻게요. 모기 어떻게요"
자기가 살생을 했다며 기가 팍 죽는다. 저 저, 착함을 어쩌면 좋으랴
"정당방위니까 괜찮아"
너의 팔을 먼저 문 건 모기라고 위로한다. 그럴 때는 죽이는 게 맞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부푼 팔목에 물파스를 발라준다.
잠자리에 들 무렵, 딸의 어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암살은 모기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뿌듯함, 살생은 모기에 대한 측은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지식의 어휘는 느리지만 감정 어휘만큼은 결코 느리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암살은 하였지만. 살생은 하지 않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의미이다.
* 앞으로 엄마로서 아이와의 감정 어휘들을 나누는 일상을 좀 더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