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립해양박물관 도서자료실을 다녀와서
스무 살 무렵, 월미도를 찾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선명한 이유 없이도 아팠던 시절이었다. 월미도는 내가 스스로 찾아낸 가장 최적의 피난처였다.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바다이면서, 동시에 누구의 허락도 없이 도착할 수 있는 가장 먼 바다이기도 했다.
월미도에 도착하자,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 2층에 앉아 노트와 연필을 꺼냈다. 내가 가진 불안과 두려움을 글로 남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금 돌아보면 보잘것없는 슬픔이지만, 그때는 꽤 진지한 인생의 무게였다.
월미도를 찾는다
세상에 내가 지급해야 할 할부금에 시달릴 때면
밀린 이자 대신 질척한 갯벌 속 해삼, 멍게를 떠올린다.
가끔은 사랑도 월척 하여 회를 치고
우주가 지펴주는 슬픔의 힘으로
한 뚝배기 끓여내는 망망대해 위에서
섬들은 된장국 위 거품처럼 눌러앉았다.
그때, 남겼던 시의 한 구절이다. 그로부터 삼십 년이 흐른 뒤, 나는 다시 월미도를 찾았다. 지난 2월 13일 인천국립해양박물관 2층에 있는 도서 자료실을 방문했다. 최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도서관을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곳이었다. 마음은 3박 4일 제주도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하루를 비워내기도 빠듯했다. 하루 코스로 다녀올 수 있는 월미도는 중년의 나에게도 여전히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바다였던 셈이다.
샛노란 의자와의 만남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출과 반납 시스템이 이루어지는 공공도서관은 아니다. 정확한 명칭은 인천국립해양박물관의 도서자료실.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므로 명칭은 중요하지 않았다.
꼭 그곳에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오션뷰(바다 조망)'라는 것 말고도 한 가지 더 있었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본 샛노란 의자 4개에 앉아 통창 너머 붉게 물든 서해의 낙조 속으로 풍덩 빠져보고 싶었다.
드디어 당일이 되었으나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겼다.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흐릿함이 도시를 덮었다. 경기도 동쪽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동안 하늘은 좀처럼 맑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AI에게 날씨를 물었더니, 바람이 해무를 밀어내면 하늘 길이 열릴 수도 있다는 무책임한 희망을 속삭였다. 그런데 왜 그 말이 이리 달콤한 것인가. 나는 그 말을 믿고 낙조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끝까지 붙들어보기로 했다.
도서 자료실은 박물관의 웅장함에 비해 아담해 보였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해양 역사·과학·문화 등 다양한 주제의 도서들이 야무지게 채워져 있었다. 장서 수가 소박했으나, 오히려 치열하게 엄선된 책들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일단 목표 하나는 성공했다. 샛노란 의자 4개 중 하나를 차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늘이 흐려 푸른 오션뷰를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을 나만 몰랐던 모양인지 이용자는 많지 않았다.
인테리어만 보고 이곳을 신상 카페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일반 공공도서관보다 음식물 규정이 까다로워 음료를 담은 테이크아웃 컵도 반입할 수 없다. 아무리 이곳에 온 목적이 도서자료실이라 해도, 박물관 전시장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표류인 문순득' 테마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1801년, 흑산도 인근에서 표류하여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를 거쳐 3년 2개월 만에 귀환한 그의 기록은 픽션보다 더 위대한 생존 본능을 보여주었다. 그가 만일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를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오후 3시가 넘었지만, 안개는 걷힐 기미가 없었다. 도대체 하늘길은 언제 열리냐며 AI에게 현재 상태를 사진으로 보여주니, 아까의 장담은 어디 가고 이제는 낙조를 볼 수 없을 거라고 태연하게 말을 바꿨다. '에라, 에이아이(AI)'는 참 낯짝도 두껍다고 생각했다. 말 바꾸는 솜씨가 어찌나 얄미운지 뺨(스마트폰 액정)이라도 때려주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수평선, 중년이 되고 보니 알게된 것
'안개 멍'을 하고 있으니, 문순득의 표류기처럼 낯선 세계에 홀로 정박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스무 살 무렵의 나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바다의 수평선이 사회적 기준의 평균선이라면, 내가 가진 것들, 가령 부모의 재력, 나의 학력, 심지어 삐뚤어진 앞니까지 모두 평균 미달처럼 느껴졌던 시기였다.
살아내기도 전에 패배감이 먼저 자리를 잡았던, 떠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표류 했다고 믿어버린 시절이었다. 중년이 되고 보니 알겠다. 인생의 평균선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보이지 않는 수평선처럼 말이다.
박물관 마감 시간을 예고하는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감 예고편에도 이렇게 말 잘 듣는 이용자들이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만약 오늘 낙조가 황홀한 날이었다면 책 먼지처럼 붙어있으려는 나 때문에 직원들은 퇴근을 앞두고 애가 탔을지도 모르겠다.
사서 추천 도서는 해양생물학자 에디스 위더의 <아무도 본 적 없던 바다>였다. 심해의 세계에서 아무도 본 적 없던 빛을 발견해 낸 사람의 이야기다. 안개가 끼었어도 내가 바다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시야에 들어온 잔잔한 물결은 건강검진 때마다 숨죽이며 응시하던 초음파 화면과 닮았었다. 혹시나, 결절이나 혹 같은 슬픔이 발견되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했던 마음과 아무 일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던 마음이 그 위에 겹쳐 있었다. 다행히 침침한 내 눈에는 바다의 결절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스무살의 나에게 화답하는 중년의 메뉴 선택
마감 20분 전, 책을 덮고 미련 없이 일어났다. 바다는 끝내 선명해지지 않았다. 원색의 바다를 보지 못해 아쉽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선명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아릿했던 시절을 깊이 되돌아볼 수 있었다.
스무 살의 슬픔이 막연하고 흐릿한 것이었다면, 중년의 슬픔은 대개 선명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월급보다 더 나온 카드 명세서처럼 정확하고, 6개월 후에 재검을 권하는 의사의 진단명처럼 또렷했다. 그래서 나는 이 흐릿한 시간이 오히려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다음에 이곳에 올 때는 날씨를 굳이 AI에게 묻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예보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맑은 날에는 '바다 멍'을, 흐린 날에는 '안개 멍'을 즐기면 된다. 어느 쪽이든 표류한 것 같은 생을 잠시 멈추게 해 줄 테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잠시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 다시 스무 살 무렵에 썼던 시가 생각났다. 월미도 앞바다가 된장 뚝배기라니. 나의 스케일이 제법 범상치 않았음을 비로소 알았다. 슬픔만 과장된 게 아니었으니, 그때의 나를 이제라도 칭찬해줘야겠다. 중년의 내가 화답한다. 그때가 건더기 가득한 된장 뚝배기였다면, 오늘의 월미도 앞바다는 깊고 뽀얀 설렁탕이다.
<캐리어 끌고 도서관>이 프리미엄 연재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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