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아카이브가 공간으로 구현된 곳, 정약용도서관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인다.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인다.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인다.
가을이 되면 서쪽 연못에 연꽃을 구경하러 한 번 모인다.
국화꽃이 피면 한 번 모인다.
겨울이 되어 큰 눈이 내리면 한 번 모인다.
세모에 화분에 심은 매화가 꽃을 피우면 한 번 모인다.
모일 때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준비하여
술 마시며 시 읊는 데에 이바지한다.
김신지 작가의 <제철행복>을 읽으며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만든 문예 모임 ‘죽란시사’의 규약을 처음 알게 되었다. 산수유, 개나리 노란 꽃들이 한창 피어나더니, 어느덧 붉은빛을 띤 살구꽃과 벚꽃이 만발하는 계절이 왔다. 부끄럽게도 벚꽃이 '벗꽃'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옆 나무와 겹쳐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만 보면 어깨를 맞대고 함께 책을 읽던 벗들이 생각났다.
나에게도 책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이 있다. 책벗들이 있다. 요즘에는 사는 게 바빠서인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우정을 나눈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니 이참에 만날 핑계를 댔다. 정약용 선생님의 죽란시사 규약처럼 말이다. 2020년 문을 연 이곳은 개관 당시 경기 북부 최대 규모이자 전국 공공 도서관 중 6번째로 큰 도서관으로 알려졌다. 이미 도서관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꼭 가봐야 할 도서관 성지'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무엇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가 자리한 남양주시에 있었다.
도서관 여행을 하며 심장 박동수가 가장 가파르게 올라가는 순간이 있다. 묵직한 도서관 문이 열리고 로비와 첫 대면을 하는 찰나다. 도서관의 규모가 웅장할수록 그 박동의 진폭은 더욱 커진다. 드디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높은 층고를 가득 채운 책의 모형들이 시야를 압도한다. 책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메시지 같았다. 천장에는 책의 낱장 같기도, 혹은 투명한 기와 같기도 한 오브제들이 모빌처럼 매달려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 향기는 어디서 나는 거지?' 우리의 시각뿐 아니라 후각과 미각까지도 자극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빵과 커피였다. ‘베이커리씨어터’라는 카페가 책 보다 먼저 우리 ‘빵순이’들을 반기고 있었다. 요즘 도서관들이 카페 못지않은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췄지만, 실제 베이커리 카페까지 갖추고 있는 도서관은 처음 방문하는 듯 하다.
고소한 빵 냄새를 뒤로 하고, 1층 어린이실로 들어섰다. 이번엔 '키즈카페'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어린이실 한쪽에 마련된 유아실은 젊은 부모와 아이들이 열광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책만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시도다. 어린 시절 도서관을 '재미있는 곳', '자꾸 가고 싶은 곳'으로 기억하게 만든다는 차원에서는 다정한 접근이라 생각했다.
발길을 옮겨 2층으로 올라가니 계단 옆으로 잡지가 놓인 작은 응접실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 아늑한 공간을 지나면 비로소 3층까지 이어지는 도서관의 메인 공간이 펼쳐진다. 스웨덴 스톡홀름 중앙도서관을 모티브로 설계했다더니, 북유럽 특유의 개방적이고도 감각적인 구조가 돋보였다.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책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수많은 도서관을 다녀봤지만. 주말도, 방학도 아닌 평일 낮시간에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도서관에 있다는 것은 생경한 풍경이었다. 문득 학창 시절의 열람실이 머릿속을 스쳤다. 꽉 막힌 공간, 아무리 환기를 해도 가시지 않던 특유의 사람 냄새로 숨이 막혔다. 하지만 그 안에서 치열하게 버티다 보면 어느덧 나의 냄새도 그 공기의 일부가 되었다. 다행히 이곳은 층고가 높아서인지 답답함 없이 쾌적했다.
‘한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고, 현재를 보려면 시장에 가고,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라’는 오래된 잠언이 생각났다. 높게 치솟은 아파트, 넓게 뻗은 도로, 각종 편의시설이 도시의 인프라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도서관 안에 가득 찬 배움의 열정은 이 도시의 미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도서관에서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 공간은 단연 '정약용 아카이브'였다. 다산 정약용의 생애를 기록하고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지성의 끝을 목격할 수 있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해 평생 500여 권의 저술을 남긴 그는, 그 존재만으로 이미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었다. 그의 삶과 지식은 한국십진분류표(KDC)의 체계를 빌리자면, 총류(000)와 철학(100)을 넘어 사회과학(300), 문학(800), 역사(900)를 총망라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아카이브였다.
이 지식의 서고 안에서 내가 마주한 가장 운명적인 책은 정약용 시 선집인 <다산의 풍경>이었다. 정약용 선생의 인간미가 뚝뚝 묻어나는 시 한 편을 발견했다. 제목은 ‘8년 만에 아들을 만나’였다.
8년 만에 아들을 만나
생김새는 내 자식 같은데
수염이 나서 딴사람 같애.
집에서 보낸 편지를 갖고 오긴 했지만
틀림없는 진짜인진 의심스러워
딸이 지긋지긋하게 말 안 듣던 사춘기 시절, 나를 버티게 한 건 딸의 어릴 때 사진이었다. 그때의 추억이었다. 엄마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게 자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통통한 볼살은 사라지고, 갸름한 턱선은 정말 딴사람 같았다.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치킨을 좋아하던 식성과 딸 역시 기억하고 있는 엄마와의 추억이었다.
그래서일까. 긴 유배 생활 끝에 청년이 되어 나타난 아들을 마주했을 때, 정약용 선생님이 느꼈을 당혹감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아들의 얼굴이 얼마나 생경했을까. 진짜인지 의심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나왔지만, 웃음 뒤에 찾아오는 여운은 묵직했다. 자식의 가장 눈부신 성장기와 추억을 통째로 도둑맞은 채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절절한 회한이 서려 있었다. 여러 번 읽을수록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잠시 엉뚱한 상상에 잠겼다. 타임슬립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선생이 옛 기억을 간직한 채 시간을 건너 오신다면 어디로 가장 먼저 달려갈까. 그리운 생가를 둘러보고 나서 쏜살같이 향할 곳은 아마도 '정약용 도서관'이 아닐까 싶었다. 생전 방안을 책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였다. 수십만 권의 장서가 지혜의 지층을 이루어 서로에게 다정히 건네지는 도서관은 그가 꿈꾸던 실학의 새로운 형태일지도 모른다. 문득, 정약용 선생이 흐믓하게 웃고 계실 모습이 떠올랐다. 선생의 후손으로 알려진 배우 정해인의 맑은 미소가 겹쳐 보였다.
챗벗들과 함께한 하루가 어느덧 저물어 간다. 다음 모임은 또 언제가 될까. 옛 선비들의 ‘죽란시사’를 흉내 내어 본다면, 수박이 달콤하게 익어가는 계절에 다시 한번 모여야 할 것 같다. 모일 때마다 갓 볶은 원두와 달콤한 디저트를 준비하고, 서로가 권하는 책을 읽으며 지식의 깊이를 나눌 것이다. 벚꽃은 지지만, 벗꽃은 남는다. 우리는 그렇게, 계절을 핑계 삼아 벗을 만나는 기쁨을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