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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l 02. 2024

도서관 노동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일부는 맞고, 또 일부는 틀린 부분에 대한 속풀이 스토리

오래간만에 언니 동생 사이하는 옛 동료를 만났습니다. 근황이 오고 갑니다.  한때 디자이너였던 그 언니는 딸 대학 보내놓고 요즘은  알바를 하며 산다고 합니다. 저는 18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요즘은 도서관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언니의 첫마디는 이렇습니다.


"잘됐네. 책 읽는 거 좋아하니까, 도서관 조용하고 , 편하잖아."


십중팔구, 그 말을 할 줄 알았습니다. 도서관 근무자들에게 몇 가지 선입견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닌 가 싶습니다. 일일이 업무에 대한 고충을 말할 수도 없어서 '그렇지 뭐' 정도로 끝냈으나, 일부는 맞고, 또 일부는 틀린 부분이 있어, 이 자리를 빌려 속 좀 풀어볼까 합니다.


책을 좋아하니, 도서관에서 일해서 좋겠다는 말은 먹는 걸 좋아하니, 식당에서 일하니 좋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대부분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내용. 신박한 북디자인은  읽는 욕구에서 소장 욕구를 샘솟게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예쁜 책들도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활자 있는 벽돌입니다. 주말 어린이실에서 근무할 때 멀리서 '돌돌돌' 마트장바구니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올 것이 온 모양입니다. 그 안에는 수십 권의 양장본 동화책이 벽돌장처럼 쌓여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도의 벽돌 쌓기 기술이 필요하다면, 그건 반드시 청구기호별로 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컷 못 봅니다. 책 제목만 실컷 봅니다. 뉴스로 치면, 기사 헤드라인만 읽는 셈입니다.  안뜻 봐서는 읽은 책인 지, 책 제목만 읽은 건지 헷갈립니다. 이건 읽은 것도 아니고, 안 읽은 것도 아닙니다. 저희도 각 잡고 읽으려면 대출해서 집에 가서 봐야 합니다. 개그맨이 집에서는 웃길까요? 도서관 노동자가 집에서도 책을 볼까요? 대부분은 자기 전까지 핸드폰으로 숏폼을 감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베스트셀러는 저희도 줄 서서 봅니다.  맛집 사장님 지인이라고 줄 서 있는 식당에 눈치 없이 들어갈 수는 없는 법. 잘 나가는 책들은 저희도 차례가 되어야  읽습니다. 몇 년 전 한창 잘 나갔던,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예약자가 줄을 줄줄이 서는 바람에 작년 말에서나 읽을 수 있었습니다. 혹시 예약책을 빨리 읽고 싶은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큰글자책이나 전자도서관에서 보는 게 빠를 수 있습니다.


저도 조용한 곳을 좋아합니다.  문제는 도서관은 너무 조용한데 있습니다. 도서관 민원 중에는 노트북 키보드가 신경 쓰인다고 합니다. 노트북 키보드가 적막을 깨면, 누군가에게는 망치소리가 됩니다. 청각에 예민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동료와 재미있는 수다라도 떨고 싶은데, 차라리 수화라도 배울  그랬습니다.  '쌤, 오늘 점심 뭐 먹을까?' 분명히 데시벨을 낮춘 줄 알았는데 멀리 있는 이용자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김치찌개, 제육볶음으로 민원이라도 걸리면 무슨 망신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도서관 근무가 좋은 이유는 아주 사소한 데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저만의 뇌피셜입니다.


매일 똑같은 시간,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어르신들의 열정을 바라볼 때 도서관에서 일하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저런 열정을 갖고 계시는 분들과 같은 공간에서 머물며 제가 닮고 싶은 노년의 일기를 미리 써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명은 유모차에 끌고, 또 한 명은 손을 잡고 좋은 동화책을 골라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젊은 엄마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습니다. 지난날 내가 해주지 못했던 엄마로서의 일상을 대리만족하기 때문입니다. '흔한 남매' 어디 있나요? 데스크에 와서 또박또박 말하는 초등학생들의 입모양을 볼 때도 행복합니다. 비록 만화책이긴 하나, 읽고 싶은 책을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의지를 칭찬할만하니까요.  그리고 이건 진짜 개인적인 미적 취향인데, 책 읽는 이용자의 구부정한 어깨와 등의 각도가 참으로 안정적이고 편안한 것이, 아무튼 전 그게 아름답습니다.


어떻게 오해가 좀 풀리셨나요?


글을 맺어야 하는 데 미처 풀지 못한 얘기가 있습니다. 제 글에는 항상 뒤끝이 있습니다.

도서관에 일하면서 비염이 생겼습니다. 이비인후과 의사는 책먼지 때문이라고 합니다. 평소에도 kf94 마스크를 쓰라고 권합니다. 이명도 심해졌습니다.  이명환자에게 고요보다는 소음이 있는 편이 낫다고 하더군요.  오늘도 전 합법적 소음 발생을 위해 애꿎은 이용자에게 쓸데없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봅니다.


"어르신, 비도 많이 오시는데 어떻게 오셨어요.  주저리주저리, 어쩌고저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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