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 맑아 보여요.”
“네?”
“맑고 깨끗해 보이세요.”
“네?”
“혹시 도에 관심 있으세요?”
20대 초반, 거리를 걷다 보면 도에 심취한 사람들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곤 했다. 특히 2호선 삼성역 부근에 유독 도 닦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빠 약국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 삼성역에 있는 백화점 버스를 애용하던 시기였다. 백화점 지하 베이커리에서 빵 한 봉지를 사들고 버스에 오르곤 했는데 버스를 갈아타던 중간 길이 사람이 많은 듯 많지 않은 의외의 한적한 곳이었다. 그곳이 그들의 주 활동 무대인 듯했다.
그들에게 듣는 영이 맑아 보인다는 말이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두 번 정도는 예삿일로 넘겼지만 횟수가 반복되다 보니 조금 무섭기도 했다. 영이 맑다는 게 뭔 말일까. 내 영혼이 티 없이 맑고 깨끗해 보인다면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야, 그거 있잖아 그거. 도. 실제로 내 친구 동생이 그거 따라갔다가 옷 갈아입고 제사까지 지내고 돈 뜯겼데.”
어느 날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말은 잘 넘어가게 생겼다는 말이란 것을. 영이 맑다는 얘기는 결국 돈을 잘 내어줄 것 같다는 소리였다.
가로수길에서 맛집 취재를 마치고 신사역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2명의 여자가 말을 걸어온다.
“혹시 선생님이세요?”
“네?”
“가르치는 일 하시죠?”
“네?”
“맑아 보이세요.”
맑아 보이세요,를 듣는 순간 느낌이 왔다. 도 닦는 사람들, 거참 오랜만이다. 그런데 시대가 흘러 호객 행위 스타일을 살짝 바꾼 모양이다. 일대일에서 이인일조 시스템으로 버전을 바꾼 것 같다. 20년 전만 해도 나는 그저 영이 맑은 여자였는데 그 사이 선생님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네들의 영업 스타일이 바뀐 만큼 나 또한 맷집이 생겼다.
“선생님처럼 보여요?”
“네~ 누구를 가르치는 일을 할 것 같아요.”
“선생님 아닌데~~ 어떤 일 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나의 역질문에 그녀들은 올커니, 하고 내 발걸음과 속도를 맞춰 버스정류장까지 따라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떤 멘트로 고객을 제사 지내는 곳까지 인도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눈치 없이 버스가 온다. 그녀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신데렐라 입장인지라 버스에 올라타야 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그녀들만큼 아쉬웠다.
문화센터 발레수업을 개운하게 마친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려는 순간 누군가 경쾌하게 인사를 건네 온다.
“안녕하세요~”
더없이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인상 좋은 여인. 발레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에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뒷모습이 학생인 줄 알았어요~”
자연스럽게 에스컬레이터 옆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그녀와 함께 의자에 앉아있다. 갑자기 종이 한 장을 쓱 내민다.
“좋은 말씀 있는데 한번 들어보세요~”
아차, 이번엔 어느 교회에서 나온 전도활동이었다. 전도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구슬리면 잘 넘어올 것 같은 관상을 가진 사람인가 보다.
“성당 다녀요.”
냉담자로 지낸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성당 다니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그녀는 이내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홀연히 사라진다. 다음번에 또 기회가 생기면 성당 다닌다는 말 대신 이런 말을 건네볼까 생각 중이다.
“뒷모습은 학생 같은데 앞모습은 뭐 같아요? 예수님 믿을까요? 부처님 믿을까요? 알아맞혀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