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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Jul 16. 2020

영이 맑아 보이는 관상


“영이 맑아 보여요.”   

“네?”    

“맑고 깨끗해 보이세요.”    

“네?”    

“혹시 도에 관심 있으세요?”    


20대 초반, 거리를 걷다 보면 도에 심취한 사람들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곤 했다. 특히 2호선 삼성역 부근에 유독 도 닦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빠 약국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 삼성역에 있는 백화점 버스를 애용하던 시기였다. 백화점 지하 베이커리에서 빵 한 봉지를 사들고 버스에 오르곤 했는데 버스를 갈아타던 중간 길이 사람이 많은 듯 많지 않은 의외의 한적한 곳이었다. 그곳이 그들의 주 활동 무대인 듯했다.      


그들에게 듣는 영이 맑아 보인다는 말이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두 번 정도는 예삿일로 넘겼지만 횟수가 반복되다 보니 조금 무섭기도 했다. 영이 맑다는 게 뭔 말일까. 내 영혼이 티 없이 맑고 깨끗해 보인다면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야, 그거 있잖아 그거. 도. 실제로 내 친구 동생이 그거 따라갔다가 옷 갈아입고 제사까지 지내고 돈 뜯겼데.”    


어느 날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말은 잘 넘어가게 생겼다는 말이란 것을. 영이 맑다는 얘기는 결국 돈을 잘 내어줄 것 같다는 소리였다.




가로수길에서 맛집 취재를 마치고 신사역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2명의 여자가 말을 걸어온다.    


“혹시 선생님이세요?”    

“네?”    

“가르치는 일 하시죠?”    

“네?”    

“맑아 보이세요.”    


맑아 보이세요,를 듣는 순간 느낌이 왔다. 도 닦는 사람들, 거참 오랜만이다. 그런데 시대가 흘러 호객 행위 스타일을 살짝 바꾼 모양이다. 일대일에서 이인일조 시스템으로 버전을 바꾼 것 같다. 20년 전만 해도 나는 그저 영이 맑은 여자였는데 그 사이 선생님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네들의 영업 스타일이 바뀐 만큼 나 또한 맷집이 생겼다.


“선생님처럼 보여요?”    

“네~ 누구를 가르치는 일을 할 것 같아요.”    

“선생님 아닌데~~ 어떤 일 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나의 역질문에 그녀들은 올커니, 하고 내 발걸음과 속도를 맞춰 버스정류장까지 따라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떤 멘트로 고객을 제사 지내는 곳까지 인도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눈치 없이 버스가 온다. 그녀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신데렐라 입장인지라 버스에 올라타야 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그녀들만큼 아쉬웠다.           




문화센터 발레수업을 개운하게 마친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려는 순간 누군가 경쾌하게 인사를 건네 온다.     


“안녕하세요~”    


더없이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인상 좋은 여인. 발레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에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뒷모습이 학생인 줄 알았어요~”    


자연스럽게 에스컬레이터 옆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그녀와 함께 의자에 앉아있다. 갑자기 종이 한 장을 쓱 내민다.    


“좋은 말씀 있는데 한번 들어보세요~”    


아차, 이번엔 어느 교회에서 나온 전도활동이었다. 전도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구슬리면 잘 넘어올 것 같은 관상을 가진 사람인가 보다.     


“성당 다녀요.”    


냉담자로 지낸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성당 다니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그녀는 이내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홀연히 사라진다. 다음번에 또 기회가 생기면 성당 다닌다는 말 대신 이런 말을 건네볼까 생각 중이다.      


“뒷모습은 학생 같은데 앞모습은 뭐 같아요? 예수님 믿을까요? 부처님 믿을까요? 알아맞혀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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