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더불어 생활 한지 1년이 다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한두 달이면 잡힐 줄 알았던 바이러스는 잡힐 듯 잡히지 않은 채로 우리네 삶과 밀접하게 마주하며 많은 부분에 변화를 주고 있었다.
나와 아들의 관계가 이토록 지지고 볶았던 시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녀석과 나는 코로나 덕분에 애증 하는 사이가 되었다. 집에서 붙어있을 때는 온갖 짜증을 서로에게 다 내다가도 급한 생필품을 사러 마트라도 나갈라 치면 아들은 엄마 조심해야 해, 라며 근심 가득한 얼굴로 배웅한다. 나 또한 운전대를 잡고 짜릿한 해방감을 만끽하다 이내 집에 있는 아들 생각에 허겁지겁 서둘러 장을 보고 들어가기 일쑤였다.
다른 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우리는 도통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십여 년 전, 한 몸으로 살았던 10개월 기간의 정 때문인지 끊임없이 신경 쓰고 챙겨주는 관계가 되었다. 그가 신생아 이후 이토록 붙어있던 시기가 있었던가. 지금은 좀 벅차도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이 시기가 그리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굳이 해가며 마음을 애써 다독거렸다.
강제적 집콕 생활은 극한 아이 돌봄과 더불어 다양한 취미 활동을 찾게 해 주었다. 마트나 백화점 지하를 걸어 다니며 직접 눈으로 재료를 확인하고 구매하던 장보기는 손가락으로 버튼 하나 탁탁 누르면 집 앞까지 배달되는 인터넷 장보기로 자리를 대체했다. 주부에게 장보기는 취미생활이 아닌 엄연한 일거리지만, 코로나로 인해 장보기, 쇼핑 패러다임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코로나 상황이 시작되고 몇 개월 동안은 기존에 했던 집안일을 좀 더 한다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갈수록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 시간을 의미 있고 알차게 활용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건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다. 몇 년 전부터 그냥 글만 쓰지 말고 브런치에 올리라는 후배의 조언을 코로나 덕에 몸소 실천하게 된 셈이다.
기사 쓰기와는 사뭇 다른 글쓰기 공간이 참 좋았다. 이 좋은걸 왜 이제야 시작했지,라는 생각에 내 안에 있던 무언가를 끄적일수록 마음도 정리가 되고 답답함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더라.
프리랜서로 혼자 외롭게 글 쓸 때와 달리 얼굴도 모르는 브런치 작가분들과 글을 공유할수록 끈끈한 동료애가 느껴졌다. 브런치에서 주최하는 공모전도 꾸준하게 응모하고 출판사에 메일도 보내보고 몇 개월 동안 활발하게 글을 쓰는 시기가 있었다.
무엇을 기대하고 글을 쓴 건 아니지만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닌 글쓰기는 차츰 시들해져 갔다. 그동안 써왔던 글쓰기와는 다른 매력의 글쓰기지만 눈에 보이는 무언가 없이 마냥 글만 쓰기에는 뭐랄까, 학교도 못 가고 학원도 못 가고 있는 아들이 엄마 손길을 너무나 필요로 했다.
글쓰기는 잠시 접고 육아와 집안일만 하기에도 하루는 금방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 책이며 자전거 등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요즘 핫하다는 중고거래 어플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분이 목적이라 묶음으로 몇 천 원에 물건을 올리니 반응이 꽤 괜찮았다. 중고거래가 엄마들 사이에서 그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이 물건으로 내다 팔기 시작한 중고거래는 어느덧 잠자고 있던 가방, 머플러, 액세서리로 눈을 돌렸다. 구매한 가격 때문에 버리기는 좀 아까운 거 같아 끼고만 있던 애물단지 물건이 누군가에게 쓰임새가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깨지지 않는 그릇으로 명성 높은 그릇이 있는데 무늬가 영 내 취향이 아니라 구석에 처박아놓은 그릇이 여러 벌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빈티지한 무늬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듯 보였다. 그릇 10개 이상을 묶어 1만 원 초반대 가격으로 올렸더니 여러 명의 구매자가 서로 사겠다며 줄을 서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빈티지 모델을 구하고 싶어도 파는 데가 없어 못 구하고 있었다는 어떤 분과 거래를 했다. 그분은 기분이 좋다며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나한테 구박받느라 빛도 보지 못한 찬장 속 그릇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애정템이었다는 사실에 덩달아 기분이 좋고 흐뭇해졌다.
하지만 중고 거래를 할수록 기분 좋은 거래가 있는 반면 황당한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약속을 잡고 이유 없이 잠수 타는 사람, 옷을 입어보고 단추가 마음에 안 든다며 그냥 가는 사람 등. 한두 번이야 그러려니 지나갔지만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그만할 때가 된듯한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 어플의 바통을 이어받은 중고거래 어플은 여러 가지 교훈을 주며 점점 손에서 멀어져 갔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코로나 집콕 생활을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노력하던 중 친구 한 명이 주식으로 재테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도 그녀도 나이에 비해 재테크에 큰 관심 없던 1인이었다. 그저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성실하게 살고 마음 맞는 친구 만나 맛난 거 먹고 맥주 한잔 하고, 여행 가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끼며 사는 스타일이었다.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던 그녀가 재테크로 꽤 많은 돈을 손에 쥔 모습을 보니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스치고 지나가 올해 초 주식 계좌부터 하나 만들었다. 주식에 주자도 모르는 주생아, 주린이지만 일단 계좌라도 만들어놔야 할 것 같았다.
첫날, 둘째 날은 나름 재미가 있었다. 시험 삼아 소액 매수한 주식이 다음날 10% 올라가는 기쁨을 맛보았다. 어라, 사람들이 이래서 다들 주식하는 거구나. 모든 뒷북 스타일인 나는 열심히 뒷북을 치며 다른 종목도 몇 개 사들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날이 갈수록 해야 할 일은 뒤로 미룬 채 주식 어플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글자만 보던 사람이 숫자만 보며 며칠을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고 하니 두통이 밀려왔다. 올라간 수익이 하루아침에 뚝 떨어지는 모습에 회의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워낙 소액 투자라 큰 타격은 없었지만 올라갔다 내려오는 거라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나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브런치, 중고거래, 주식으로 이어지는 취미생활이 코로나 이전의 취미였던 여행과 발레로 다시 채워지길 손꼽아 기다렸다. 물론 브런치 글쓰기는 잠깐은 쉬더라도 여행 발레와 함께 지속 가능한 취미생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