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아들이 초등학생 때 자주 물어보던 질문 중 하나는 꿈에 관한 이야기였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에 대해 배우고 온 날, 그 질문을 유난히 더 많이 했다. 아들로부터 꿈이 뭐냐, 는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적잖은 당황을 했다. 꿈이란 것이 청소년기까지만 품을 수 있는 특권으로 여겼던 탓이다.
“엄마는 우리 아들의 엄마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
엄마가 되는 것 또한 꿈 많던 소녀 시절 생각해본 꿈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나의 대답이 탐탁지 않았는지 다음 날 또 물어본다.
“엄마, 꿈이 뭐였어?”
“응, 엄마”
“그런 거 말고”
“음... 여행 작가?”
늘 마음에 품고 있던 말을 아이 앞에서 고해성사하듯 내뱉은 순간부터 내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 맞다. 난 여행 작가가 되고 싶었다. 아니, 여전히 그 꿈을 꾸며 살고 있다. 특히 아이가 아가 시절 여행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구체적인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도서관에 가서 ‘여행 작가 되는 법’에 관련된 책들을 잔뜩 빌려오기도 하고 서점에 가서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이 담긴 여행 책을 사 모으곤 했다.
20대 초반 휴학을 하고 처음 배낭여행을 갔던 나라는 오스트레일리아, 호주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고 떠난 나만의 여행은 지금까지도 특별하게 각인되어 있다. 지금이야 1인 가구가 늘어 혼밥, 혼술 같은 혼자 노는 문화가 많이 발달했지만 그때만 해도 혼자 놀거나 혼자 여행을 가는 건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눈초리를 보내던 시절이었다.
“호주? 혼자? 왜?”
여행을 가기 전과 갔다 오고 난 후 가장 많이 듣던 질문이다. 호주라는 나라에 관한 질문이 아닌 왜, 혼자, 여행을, 갔다 온 건지, 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혼자 여행을 갈 만한 말 못 할 사연이 있었냐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받아보기도 했다.
브리즈번 인 멜버른 아웃으로 호주행 티켓을 끊고 호주의 동쪽 퀸즐랜즈 주에 위치한 브리즈번에 발을 내디뎠다. 초록 잔디가 깔린 광장 앞에 돗자리 깔고 일광욕을 즐기며 책을 읽는 사람들, 우연히 눈 마주친 꼬마와 그 엄마의 순수한 미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던 퀸즐랜드 대학생 등. 호주에서 만난 스치던 인연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속에 고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호주가 첫사랑처럼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브리즈번에서 시드니로 이동하던 중 만나게 된 골드코스트. 내가 알던 바다의 색이 저리 다채로웠던가. 모래와 가까운 바다는 에메랄드를 한 아름 품은 듯했고 시야를 넓힐수록 농도 짙은 코발트블루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비단으로 만든 계단 위에 반짝이는 별빛을 수놓은 것처럼 바닷물이 결대로 철썩철썩거렸다.
고 박완서 작가께서 20살에 겪은 전쟁 이야기로 평생을 우려먹었다고 고백하듯 상황은 다르지만 나 또한 20대 초반 배낭여행을 갔던 호주 이야기를 꽤 우려먹었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잡지사에 호주 여행 사진을 들고 가 여대생들이 즐겨보는 잡지에다 뽐내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취업의 문을 두드릴 때 자기소개서에 호주 여행기로 말문을 열어 면접관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호주에 갈 기회가 다시금 생긴다면 바삭하게 잘 구워진 밀푀유처럼 켜켜이 추억을 담아 호주 여행기를 써 보고 싶다. 여행 작가 김영주가 사랑스러운 형용사로 엮어낸 <이탈리아, 낭만 혹은 현실> 같은, 입에 착 감기는 봉골레 파스타 같기도 하고 후미진 골목 어귀서 부는 아련한 꽃샘추위가 전해지는 여행 책을 만들 것이다. 다녀온 이에게는 추억을 아직 못 가본 이에게는 작은 소망 하나를 건네고픈 마음이다.
언제 그 꿈을 이룰지 모르겠지만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내가 아는 단어들 중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단어들로 꽉 채워 여행 책을 출간해보는 것이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