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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Jul 12. 2020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건


초록빛과 회색빛이 오묘하게 섞인 신비스러운 눈동자를 가진 외국인 친구가 한 명 있다. 그녀는 저 멀리 동유럽에서 온 친구다. 유럽 동부의 폴란드와 러시아 중간지점에 위치한 벨라루스. 구소련이 해체되며 독립한 나라 중 하나인 그곳이 그녀의 나라다.



     

친구는 벨라루스 국립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는데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오면서 본격적인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을 하고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그녀와 나는 키즈 카페에서 아가들 덕분에 만나면서 연이 깊어졌다. 아이들이 돌이 갓 지났을 때 만났으니 이제 10년은 넘은 듯하다.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 그녀와 유럽을 좋아하는 나는 더없이 잘 통하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게다가 아이들 나이도 몇 개월 차이가 나지 않아 어린이집 다니기 전까지 서로의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자주 만나던 시기가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캠핑을 갔다.     


“짜증 나. 외국인 처음 보나 봐. 저 사람들.”     


그러고 보니 계곡 물놀이를 할 때마다 시선이 모아지는 느낌이 들긴 했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금발머리 외국인 친구는 신경이 쓰였나 보다. 늘 밝고 긍정적인 그녀의 입에서 짜증이라는 단어가 나온 걸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내가 동물원 원숭이 같아.”    


그 말을 듣고 알게 되었다. 외국인이 타지에서 겪는 불편함을. 난 20대부터 언젠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 보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22살 처음 비행기를 타고 호주에 갔을 때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청명한 하늘과 비단처럼 넘실거리는 에메랄드 빛 바다에 반해버렸다. 거리를 걷기만 해도 모든 게 신기한 이국적인 정취는 내 눈을 홀딱 홀렸다.     


그때부터 기회만 되면 먼 나라든, 가까운 나라든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적 여유가 되면 한 달 정도 머물며 그 도시를 마음속에 품어오곤 했다. 그래서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과 정착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그들은 이국적인 문화를 경험하는 대신 이방인의 외로움과 불편함을 견뎌야 했다.           




아이 학부모 모임에 나갔다 기분이 상해 돌아온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내용도 기억 안 나는 사소한 일이지만 그 당시는 혼자 씩씩거리고 있었다. 친분이 있는 동네 엄마를 붙잡고 하소연하기에는 아직 우정이 두텁지 않았고, 친한 친구를 붙잡고 얘기하기에는 미혼이라  공감이 잘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청주로 이사 간 벨라루스 친구가 떠올랐다.     


“올가야, 안녕. 잘 지냈니?”    


나는 인사와 동시에 며칠 동안 어디다 풀지 못한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놓았다. 그녀는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내 얘기를 끝까지 차분하게 듣더니    


“나도 그래. 마음 안 맞는 엄마들 때문에 속상할 때가 있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같은 한국사람끼리도 마음이 맞지 않아 기분이 상하는데 그녀는 더 했겠지 싶다. 아이들이 껴 있는 문제는 회사에서 안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더 다각적으로 생각해보고 접근해야 한다.      


“올가야, 나 똑같이 받아쳐줄걸 그랬나 봐. 괜히 분위기 흐려질까 봐 그냥 넘겼거든. 그런데 너한테 이렇게 전화까지 걸어 하소연하는 걸 보니 아직도 마음이 안 풀린 것 같아.”


“너는 디그너티 있는 사람이야. 그 사람처럼 똑같이 하면 너도 결국 그 사람이랑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야. 가만히 있는 거 잘한 거야.”    


디그너티(dignity), 위엄. 그 단어를 듣고부터 신기하게 며칠 불편했던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그래, 나는 품위 있는 사람이지. 품위 있는 사람이 가벼운 사람 입에서 흘러나오는 무의미한 단어들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는 거야,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와의 통화로 어수선했던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통화 후 며칠 지나 그 친구를 만났다. 분주히 음식을 차려내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나, 사실 그동안 좀 우울했어. 벨라루스 가고 싶어.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이제 한국에 사는 것도 지겹고...”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한국에 대한 애정이 충만한 친구였다. 나도 모르는 한국 역사에 대해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김치찌개도 곧잘 먹는 그런 친구였다. 서울을 속속들이 구경하는 걸 즐기던 그녀였는데 몇 년 사이 육아에 지치고 사람에 치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오랜만에 그녀에게 메시지가 온다.    


“나 학교 가서 다시 공부하려고. 원서 내려면 자기소개서 써야 하거든. 내일까지 쓰고 메일 보낼게. 네가 한국말 좀 봐줘.”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던 그녀가 마음을 다시 먹은 모양이다. 내 마음을 차분하게 잡아주는 사려 깊은 외국인 친구. 그녀가 한다는 공부가 어쩌면 한국에 있어야 할 명분을 스스로 만들어 놓는 건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며 언제든 그 이야기를 솔솔 풀어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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